[모두의 주역] 지뢰복 - 때가 되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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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지뢰복 - 때가 되면 돌아온다
  • 승인 2022.01.2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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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겨울이 깊어지고 추위가 한창일 때면 항상 따뜻할 때가 그립다. 날이 추우면 사람 마음도 추워지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추운 날이 많은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우울하고 부정적인 경향을 갖는 반면, 따뜻한 나라 사람들이 게으를지언정 낙천적이고 유쾌한 기질을 갖는 것을 보면 사람이 온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동지가 지나면 다시 해가 조금씩 길어지듯, 음이 극에 달하면 다시 양이 고개를 드는 것이 세상 이치다. 주역에도 그런 모양의 괘가 있다. 지뢰복 괘다. 복괘는 가장 아래에 있는 양효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괘이다.

지뢰복 괘의 괘사는 이렇다.

 

復 亨 出入无疾 朋來 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彖曰 復亨剛反 動而以順行 是以出入无疾朋來无咎 反復其道七日來復 天行也 利有攸往 剛長也復其見天地之心乎

 

복괘의 모양은 마치 양효 하나가 위로 하나도 잠기지 않은 대문을 하나 하나 열고 갈 수 있을 듯한 모양새다. 그러니 드나드는 데 병이 없다, 즉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같다. 초구인 어린 양기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다른 괘였으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으나, 복괘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마치 아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노인만이 가득한 집에 기적적으로 탄생한 아이와 같은 초구이니 귀하지 않을 리가 없다. 7일이라는 시간을 말한 것은 양기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초구의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복괘의 흐름은 이 귀한 초구의 움직임이 주요 서사가 된다. 그러니 먼저 초구를 보자.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상전에는 不遠之復 以脩身也라 하였다. 멀리 가지 않아도 스스로의 귀중함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가끔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를 가진다. 특히 행위의 결과가 좋지 않거나 남들이 보는 기준에 맞추지 못했을 때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면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먼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초구는 멀리 가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챘다. 자기에게 적합한 자리도 어디인지 알았다. 집 안에서는 마음대로 다녀도 되는 귀한 아이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에서처럼 귀한 아이일 수가 없다. 그것을 빨리 알아채고 집 안에서 더욱 귀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락하고 편안할 것이다.

 

六二 休復 吉

 

상전에는 休復之吉 以下仁也라고 하였다. 아래를 어질게 함으로써 길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육이는 음이 음 자리에 바르게 있고 유일한 양인 초구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효이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귀한 독자 바로 위의 손윗누나와 같은 존재이다. 육이의 입장에서는 자기 할 일을 다 하면서 어른들의 뜻에도 따르는 자기보다 그저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귀여움을 받는 초구가 미울 법도 하다. 그러나 육이는 그 미운 마음을 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바꾸는 상황이다. 바로 위에 있는 육이가 초구의 드나듬을 막는다면 위의 다른 음효들은 초구를 만날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육이가 그것을 넓은 마음으로 허용함으로써 초구는 또 운신의 자유를 얻는다.

六三 頻復 厲 无咎

상전에는 頻復之厲 義无咎也라고 하였다. 자주 돌아옴이 위태롭지만 육삼이 의를 지키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육삼의 자리는 내괘에서 외괘로 건너가는 자리이다. 집안으로 따지면 문 밖을 나가기 직전의 현관 대문과 같다. 그 대문 앞을 귀한 독자가 수없이 들락거린다면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고 귀찮기 짝이 없을 것이다. 문 밖은 집 안과는 다르다. 차에 치일 위험도, 납치를 당할 위험도, 다치고 아파질 위험도 존재하는 바깥의 세계이다. 아이를 밖에 내놓지 않고 감금하며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에 놔둘 수도 없다. 초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육삼의 자리까지 오가게 되면 육삼의 입장에서는 불편해진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 義이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불평이 없기에 허물은 없는 것이다.

 

六四 中行 獨復

 

육사는 복괘에서 유일하게 초구와 짝을 지을 수 있는 효이다. 보통은 제 짝이라 하면 부부와 같은 것이지만 여기서는 저 귀한 초구를 낳은 어머니와 같다. 집안의 귀한 독자라 하면 정말 어머니조차 안아볼 시간이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너무 귀여워해서 어머니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데리고 나가거나 귀엽다고 과자나 사탕 등을 잔뜩 먹여 정작 밥 때에는 밥투정을 부리게 만들기가 일쑤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사는 중도를 지켜서 혼자 돌아온다. 다른 가족들을 믿고 귀한 아들을 맡기는 것이다. 상전에는 中行獨復 以從道也라 하였다. 그 올바른 길을 따르는 것으로써 혼자 돌아오는 것은 육사가 초구의 짝으로서 그를 독점하거나 다른 음효들의 접근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쟁을 막고 중심을 잡는다.

 

六五 敦復 无悔

 

상전에는 敦復无悔 中以自考也라 하였다. 돈독하게 돌아와 후회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깊이 생각함으로써 중도를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섯번째 효는 나라에서는 왕의 자리이고 집안에서는 가장 중심이 되는 어른의 자리이다. 지금은 육오가 권력을 쥐고 있지만 초구가 자라서 제 몫을 하게 되면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수도 있다. 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초구를 키우기보다는 밟아야 하고, 그의 자리를 넘보지 않도록 사전에 손을 써야 한다. 그러나 육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국 그의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올바른 흐름임을 알고 새기며, 가끔 스스로도 치솟는 욕심이나 억울한 마음을 깊이 살핌으로써 다시 중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후회가 없어진다.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상육은 아무래도 우리의 꼬마 초구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초구를 먼 곳까지 데리고 나가 잃어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초구가 앞으로 가지게 될 권력이나 집 안에서의 위치가 질투가 나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손으로 가문의 해체를 앞당기게 된 것이다. 의도가 악독하고 행동도 악독하니 법이나 힘으로 해결하려 한들 좋게 끝날 수가 없다. 만약 이것을 나라에 비유하자면 새로 자라나는 인재들을 자기 손으로 없앤 것이며,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비책들을 말하는 신하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자기 멋대로 하다가 궁지에 몰린 것이니 10년이 지나도 회복이 가능할 리 없다.

무언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있을 때가 좋았다는 사실을 그게 없는 상태에서나 깨달았기 때문이다. 떠나간 주체도 원래 있던 곳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게,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과 돌아가길 선택하는 사람이 만나야 가능하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는 가운데 풀어줬던 방역 조치가 다시 강화되었다. 하루 확진자가 만 명 가까이 치솟던 것은 거리두기를 다시 시행하면서 한 풀 꺾이기 시작했지만 자영업자들은 다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멍하니 문만 바라봐야 한다.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돌아가길 선택하는 사람들은 막혀 있으니 올 생각이 없다. ‘드나드는데 병이 없어서 벗이 오니 허물이 없다’는 말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나날들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오듯, 이 긴 고통 끝에 반드시 치유와 안정이 돌아올거라고 믿고 싶다. 다만 바랄 것이 있다면 그때까지 살아남고 싶다.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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