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암침법의 르네상스 이끈 금오 김홍경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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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사암침법의 르네상스 이끈 금오 김홍경을 추모하며
  • 승인 2022.01.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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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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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침법인 사암침법을 재발굴해 계승‧발전시킨 금오 김홍경 한의사가 지난달 23일 별세했다. 그는 사암침법을 발전시키고 개원가에 이를 보급하는데 이바지했으며, ‘사암침법으로 푼 경락의 신비’ 등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김홍경 한의사를 추모하기 위한 글을 모아보았다.

편집자 주

 

■한의학계의 큰 별 지다

한의학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하지만, 그 별은 우리 한의학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사암침법을 재발굴하여 부흥시키고 한의학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해오셨던 金烏 김홍경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항상 공적인 삶을 사는 한의사이자 교육자이자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학생들과 환자분들에게는 공적으로 한없이 베푸시면서 사적으로 개인에게는 최소한으로 아끼며 생활하셨습니다. 한의사로서 항상 겸손히 환자분에게 다가가고 임상에는 탁월한 실력에도 무단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아낌없이 베풀려고 하셨을 뿐 아니라 참된 한의사로서의 길을 알려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사암도인침술원리 40일 강좌 때마다 치아가 몇 개씩 빠져나갈 정도로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시던 참 교육자이셨습니다. 구도자로서 수덕사 혜암스님에게 인가받아 학생들과 한의사들에게 공안법(公案法)을 탁마해주시며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아마도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의대에 다닌 분들이라면 아주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선생님의 호탕한 강의를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이론은 임상가와 학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한의학에 대한 사랑과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시는 바 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보신 분들이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선생님께서는 학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의사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항상 더욱 강조하셨습니다. 동의보감의 팔의론(八醫論)에서 심의자생운동(心醫自生運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심의(心醫)라는 의사의 목표를 세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봉사현장에서 그런 마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사항이지만 실제로 어떤 선생님도 이런 마음과 태도를 알려주지 못했을 때 금오 선생님께 이런 교육을 받았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사의 마음과 태도, 환자분에 대한 사랑, 심의라는 목표를 교육받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의료인의 삶에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물론이고 의료의 방향성과 의료인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다시 이런 교육을 해주실 선생님이 또 계실까 싶고, 정말 중요한 이런 교육을 지금 젊은 한의대학생과 한의사들이 받아보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학문적으로는 오운육기(五運六氣)에 기반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경락론을 제시하고, 경락과 경혈의 활용을 구체화하고 확장하였습니다. 三陰三陽(六氣)를 중심으로 하는 경락의 유심적 해석과 생리적 욕구이론에 기반한 경락의 심리적 해석, 취상을 중심으로 하는 경락의 사용방법 확장 등으로 사암침법을 구사하셨으며, 오수혈을 천부(天符) 이부(二符) 삼부(三符)로 나누고 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새로운 침술을 개발하셨습니다. 이러한 연구와 임상들은 그것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학문적인 시각과는 별개로 연구자로서 임상가로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연구성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런 이론은 한의학계에 건강한 자극원이 되어서 한의학을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의학계가 한창 큰 어려움들에 처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시면서 전력을 다해서 음조(陰助)하셨던 노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한의학을 홍보하시고 각계각층으로 도움을 요청하시고 한의학계에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학생들을 방황하지 않게 추스르고 의료봉사를 통해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금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사암침법에 입문하여 참 많은 우여곡절을 함께 해왔습니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나는 내용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스스로 별명을 협태산(挾泰山)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것은 맹자에 나오는 구절로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건너는 정도가 되면 진실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먼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금오 선생님께서 몇일 밤을 꼬박새며 제가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셔서 이것이 인생 전체에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먼저 안 된다고 제한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항상 살펴보라고 스스로 이렇게 별명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는 의료봉사를 가면 항상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항상 하시던 말씀이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보다 더 좋아지게 만들어보자”고 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제 삶의 중요한 오뚝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학생과 환자분들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 환자분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선생님 앞에서 “환자”라고 말했다가 “네가 환자분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엄청나게 호된 꾸지람을 받고 앞으로 꼭 “환자분”이라고 하도록 교육받고 나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환자분”이라고 호칭을 하고 있습니다.

금오 선생님이라는 큰 별이 육신으로는 지셨지만, 그 정신과 학문은 절대 사라지지 말아야할 한의계의 소중한 보물로 남아 밝게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정환 / 사암침법학회

 

■김홍경 선생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김홍경 선생님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지난해 말 김홍경 선생님께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김홍경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한의대에 입학한 신입생시절 여름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의대 불교학생학생 모임인 선재회 회원이었던 친구 윤종성을 따라 가서 종로의 어느 한의원에 근무하고 계실 때 처음 뵙고 당신의 높은 식견과 한의학에 대한 열정에 놀랐었습니다. 한의대에 입학하고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주셨던 첫 선배님이셨기에 저의 한의사로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영적 스승님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80년대 중반부터 사암침법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방학기간 전국 한의대생들을 위한 40일 강좌를 만들어 열정적으로 강의하셨습니다. 열정적 에너지가 충만한 강의는 선생님의 저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저술들을 읽을 때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의 자부심이 커지곤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활동은 각종 방송에서의 강의와 봉사활동을 통해 빛났습니다. 사암침법에 관한한 선생님의 발굴과 보급을 위한 노력으로 이 침법이 한국을 대표하는 침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을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8년 사암침법학회가 창립되어 선생님의 사암침법 연구가 체계적으로 연구될 학회가 만들어졌음에서 병석에 누워계셔서 창립총회 자리에 오시지 못한 것이 매우 애석했었습니다. 지금 비록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후배들은 당신의 명저들을 통해 선생님의 높은 뜻을 계승 발전시킬 것입니다. 모쪼록 지하에서 보시고 후배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2년 1월 4일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교수

 

 

■金烏 神話

2021년 12월 23일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生이 있으면 死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아픕니다.

1998년 봄 저는 선생님을 초청강연회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예과 2학년으로 한의학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할 때였습니다. 감명 깊게 읽었던 『동의한마당』의 저자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루어진 강의였지만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해 여름에는 선생님의 40일 강좌를 신청하였습니다. 초청강연회와는 다른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댁인 철마산 기슭에서 이루어진 강좌에서 저는 선생님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암침법의 근간이 되는 불교 철학, 절대주의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의, 주역부터 물리학까지 넘나든 지식들...... 나를 찾아서 떠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접해봤던 선문답, 한 시간 넘게 진행된 명상의 시간. 아마추어지만 제법인 연극, 침치료 실습, 약재를 노루지에 싸는 연습 등 40일 동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선악과 같은 세상의 절대적인 기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신화를 읽어주시면서 신화를 창조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조교이고 학생들은 훈련생으로 이 자리를 나가서는 한의학을 빛내고 동양 철학을 세계에 펼칠 수 있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방의 한의학 말살에 대항하여 한의학이 바로 서기를 기대하셨습니다.

또한, 음양관을 통하여 상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길 바라셨습니다. 좋다 싫다 말하기보다는 생각해보자고 하셨고 약도 되고 독도 된다고 하시면서 절대적인 지식을 타파하고자 설파하셨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지금까지 저에게 인생에서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1998년도에는 비가 또 왜 이리 많이 왔는지...... 강좌 중에 비가 와서 수해로 피해를 본 지역이 생기자 바로 선발대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봉사활동 장소를 섭외하여 바로 훈련받은 봉사대를 한의사와 급파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재난의 상황에서 피해받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치료가 바로 한의학이라는 것을 저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매사 의료봉사와 같은 공적인 일을 할 때는 공사 구별을 중시하셨습니다. 본인이 항상 공적으로 사신 것처럼 일을 도모함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0426(공사뚜렷)을 전화번호로 만들어 유념하도록 하였습니다. 남녀유별, 공금의 투명한 집행, 개인적인 행동과 취식 금지 등 규율을 정하여 어기면 퇴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큰일을 하고 있을 때 효율성 있게 처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강좌가 끝나고 방학이 되자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방학만 되면 학생들과 전국 국토 종주 의료봉사를 다니셨습니다. 길을 가다가 봉사를 원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면 바로 마을회관과 같은 장소를 정해서 게릴라 봉사도 진행하였습니다. 항상 맥가이버 정신을 강조하여 그 자리에서 방법을 찾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저에게 삶에 있어서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의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전국에서 봉사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가능하면 거절하지 않고 지원하셨습니다. 2010년에는 제천 국제 한방엑스포에서 봉사 요청이 왔습니다. 우리 봉사단은 ‘침치료관’이란 장소를 받았습니다, 거의 40일간 열리는 대장정에 선생님께서는 혼자라도 봉사한다고 생각하시면서 한의사들과 학생들이 나누어서 참여할 것을 독려하셨습니다. 엑스포에 오신 방문객들이 한의학 제품 홍보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신비함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생님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는 현장을 진두지휘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셔서 직접 대기표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환자를 진맥하고 처방하셨습니다.

 

40일여 일간 약 3만여 명 가장 많이 오신 날에는 1515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무리하셨을까요? 선생님께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의학을 너무나도 사랑하셨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도 봉사도 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을 얻으셨습니다.

사랑으로 한의학의 참모습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선생님을 뵈면 항상 제자들에게 무언가 주려고 하셨습니다. 지혜를 나누고자 하셨고 지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학생들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강의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면서 학생들에게 베풀기만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한의사들이 40차에 걸쳐 5천여 명이나 됩니다.

학문적으로는 사암침법의 원리와 한의학을 바로 세우셨고, 방송 강좌를 통해 한의학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대중에게 지혜가 샘솟는 진리의 맛을 보여주셨습니다. 소외당하고 외로운 분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내어서 봉사활동을 하시고 학생들도 가르쳐주신 사랑의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사모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좋은 경치를 보시면 여기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시고, 맛있는 것을 드시면 학생들에게 사주자고 하셨고, 괜찮은 옷을 보시면 학생들에게 입히고자 하셨다고 합니다. 마치 제가 저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님께서 저희를 자식처럼 여겼다는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몇 번씩 고쳐보았지만, 지금 선생님에 대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과 가장 가까운 말, 선생님 살아생전에 제가 못 드린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정유옹 / 사암한방의료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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