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13) 슬기로운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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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13) 슬기로운 이기심
  • 승인 2022.01.0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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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력 중독 사회다. 소질과는 무관하게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 거라는 믿음에 빠져있다. 일, 재테크, 가정 모든 분야에서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슈퍼맨이 보통사람인 듯 살고 있다. “당신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인정과 격려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늘 부족한 부분 앞에 고개 숙인다. 그러다 ‘여긴 어디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과 갑작스레 만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슈퍼맨들이 흔히 겪는 과정이다. 이때 나를 위한 이기심이 필요하다.

이기심(利己心)은 억울한 단어다. 한자 뜻으로만 보면 ‘나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인데 부정적 의미로만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나를 이롭게 하는 이기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심과 구분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지속적인 자극을 받으면 모습과 성격이 바뀐다. 상처가 난 후 흉터가 생기듯 흡연이나 약물, 스트레스나 술 등의 자극이 장기간 가해지면 세포가 영구적으로 변하고 암세포로 변하기도 한다. 몸의 주인이 몸을 아끼지 않으니 세포들이 변심(變心)한 셈이다. 우리 마음도 몸속 세포들과 다르지 않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를 위해 슬기롭게 쓰기만 한다면, 이기심은 몸과 마음의 영구적 변성(變性)을 막아주는 최고의 약이다.

슬기로운 이기심의 활용 그 첫 번째, 마음의 고생과 몸의 고생을 구분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나 회사에 몸을 담게 되면 참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순간을 지날 때가 있다. 만약 마음이 괴로운 것보다 몸이 더 힘든 것이라면 계속 머무는 것이 좋다. 내 몸이 힘든 만큼 숙련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고생은 나를 한 단계 이상 성장시켜주며 그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주고 있는 과정이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의 괴로움이 훨씬 크다면 즉시 그 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다. 마음이 고생스럽다는 건 나쁜 경험과 그로 인한 감정들이 내 영혼에 기억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기억은 대체로 오래간다. 이렇게 각인된 기억과 감정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인생의 방향까지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 마냥 견뎌서는 안 된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평판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슬기로운 이기심이 발동할 때다.

슬기로운 이기심의 활용 두 번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기준은 명확하다. 나에게 불쾌한 경험을 주었던 사람들과는 깨끗이 인연을 정리하면 된다. 명주(名酒)는 숙취가 없듯, 좋은 사람과의 만남 후에는 뒤끝이 없다. 하지만 만나고 대화를 나눌 때 마다 마음이 찝찝하고 불쾌•불편한 뒤끝이 남는 사람이라면 즉시 정리가 필요하다. 삶을 괴롭게 만드는 대부분의 큰 사건은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꼬이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알고 지낸 시간과 추억에 얽매이지 말자.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관계가 나빠지기 전에 조용히 정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슬기로운 이기심의 활용 세 번째, 자책(自責)하지 말기다. 후회스러운 일들도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단지 나의 지혜와 지식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 부족함은 교훈으로 삼되 나를 향해 스스로 만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힘든 순간과 맞닥뜨리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말자.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자.’며 마무리가 이뤄지는 사람과 ‘왜 그랬을까? 내가 바보지.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지.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인 가봐. 앞으로도 나는 안 될 거야. 이번 인생은 망했어.’ 같은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람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진다. <아포페니아:Apophenia>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찾으려하는 인간의 심리를 뜻하는 용어다. 자책의 마음이 심해져 미래까지 어둡게 연관 지으려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아포페니아’현상이 아닌지 조금 떨어져 생각해 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인생이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은 대부분 우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성공은 우연을 잘 다루는 자에게 돌아간다. 우연한 기회와 행운은 노력한다고 더 빨리 만날 수 없다. 노력이 과해서 지쳐있을 땐, 눈앞에 나타난 기회도 귀찮기만 할 뿐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기회를 알아채고 잡을 수 있다. 몸이 약해지면 허열(虛熱)이 떠오르듯 자존감이 약해지면 자존심만 강해진다. 눈에 거슬리는 일이 많아지고, 짜증이 부쩍 늘어 예민해졌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아무런 이득도 없는 곳에 마음 쓰고 있는 곳은 없는지.

‘나 자신’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곳에 소중한 마음을 왕창 쓰고 있다면 스스로 한번 물어보자.

“뭣이 중헌디?”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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