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세상에 내가 남아서 나를 구하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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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세상에 내가 남아서 나를 구하러 가
  • 승인 2021.12.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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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내가 죽던 날
감독 : 박지완출연 : 김혜수, 노정의, 이정은
감독 : 박지완
출연 : 김혜수, 노정의, 이정은

또 다시 벌써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코로나 극복에 대한 희망을 안고 2021년을 시작했었지만 결국 특별히 변한 것 없이 달력 한 장만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물론 위드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개인적으로는 거의 2년 만에 대학생들과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고 있지만 오히려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했다는 뉴스로 인해 2021년도도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다보니 예전처럼 사람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워지면서 점차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면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세진(노정의)이 사라진다.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김혜수)는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세진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세진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이정은)을 만나 세진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세진이 홀로 감내했을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 세진에게 점점 더 몰두하게 된 현수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 앞에 한걸음 다가서게 된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주로 남성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제작비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액션 연기가 중심이 되면서 여성보다는 남성 배우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내가 죽던 날>은 여성 감독이 연출을 하고, 여성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흔치 않은 영화이다. 요즘 같은 젠더 갈등 시대에 여성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중심으로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스릴러 장르를 가미하여 전개시키며 극적인 재미를 높이고 있다. 또한 김혜수와 이정은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극 중 캐릭터를 찰떡 같이 소화하고 있고, 여기에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거듭난 노정의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내가 죽던 날>이라는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솔직히 영화의 결말은 <내가 죽던 날>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반전으로 진행되지만 오히려 그 장면은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니가 남앗어. 아무도 안 구해줘. 니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이 생각보다 길어.’라는 영화 속 대사는 지금 현재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해 줄 것이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시나리오상, 청룡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내가 죽던 날>은 잔잔한 울림과 절제된 감성으로 한 달 밖에 안 남은 2021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아픔에 대한 치유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힘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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