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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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헛꿈
  • 승인 2021.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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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39

계속 헛꿈을 갖고 살았다. 내 것이 아닌데, 이미 임자가 있는데 내 것이 될 거라고 덤볐다. 내 자리가 아닌데, 미리 바닥을 덥혀놓은 사람이 있는데 내게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다. 지나고 보면 그런 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헛꿈에 빠진 당시에는 결코 알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꼭 지나고서야 알게 되고 그러다가 또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저 운이 닿지 않았을 뿐이라고 되뇌며 자위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헛꿈이었던 것을 모르고 얼마나 좌절했던가. 그 많았던 마음의 상처는 제대로 치유되었을까. 혹시라도 내 마음의 구석구석에 옹이가 되어 박혀있는 건 아닐까. 60줄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제야 되어서 깨닫는다. 깊이 반성한다.

 

체질식

체질식 열심히 한다고 병이 생기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쓰면,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떠들어오지 않았느냐며, 당장 나를 욕하고 나설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을 것이다. 물론 8체질의학 치료법의 기본은 체질식 즉 체질영양법이다. 체질식을 제대로 하려면 무척 어렵다. 내가 20년 넘게 해보니 거의 종교적인 수행 수준이다.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지인 동네방네 적극적으로 소문을 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데 도리어 점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적어지고 줄어들게 된다. 생활과 활동의 범위가 더 제한되는 것이다. 몸이 점점 깨끗해지니 맞지 않은 음식은 금방 나쁜 반응이 나오고, 그렇게 되니 만나서 같은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이 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체를 열면 온갖 악인들의 소식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몹시 꺼림칙하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악인도, 체질식 열심히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좀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런 인간들은 욕을 많이 들어먹을 테니 속설대로 더 오래 살기도 할 것인지 모르겠다.

근래에 든 생각이다. 저 어려운 체질식도 체질치료 방법에서는 초급이다. 체질식이란 가려 먹기이다. 가려 먹기가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는 적게 먹기로 넘어 간다. 이건 중급 정도 되겠다. 이 단계는 절제하는 방식이 나에게 맞도록 익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욕이라는 강력한 본능을 혼자서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고급 즉 심화(深化)는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이다. 동무 공은 〈수세보원〉의 첫 편인 「성명론」에서 불쑥 이런 고급단계를 바로 말해버렸다. 존기심(存其心), 책기심(責其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후세인들이 사상의학을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낄 수밖에는 없다. 권도원 선생은 〈수세보원〉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한 분이다. 권도원 선생은 자신의 체질의학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도구 말고 환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동무유고》에 실린 동무 공의 ‘사상인식물류(四象人食物類)’를 빌어 왔다. 그리고 자신의 개념과 체계에 맞게 여덟 가지로 새로 조직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병을 고치는 길

T세포림프종으로 이젠 거의 터미널에 몰린 환자분이 오신다. 일흔 셋이다. 나와 만난 지 두 달이 좀 넘었다. 처음에는 건강검진에서 비장이 종대된 것을 알게 되었고, 작년 5월에 암진단을 받았다. 화학요법을 시행했고, 구충제도 먹어 봤고,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는다. 올해 초부터는 병원의 주치의에게서 달리 처치해 줄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암인 것을 안 후에 그간에 써놓은 글을 모아서 수필집을 꾸렸다면서, 지난주에 들고 오셨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막다른 길에 몰릴수록 살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책 속에, 모든 병은 고치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면서 ‘병을 떨쳐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분을 생각하면서 아래의 글을 썼다.

 

사단론

「四端論」 2-2

人趍心慾 有四不同

棄禮而放縱者 名曰鄙人 棄義而偸逸者 名曰懦人

棄智而飾私者 名曰薄人 棄仁而極慾者 名曰貪人

「四端論」 2-3

五臟之心中央之太極也 五臟之肺脾肝腎四維之四象也

「四端論」 2-18

太陽人 有暴怒深哀 不可不戒

少陽人 有暴哀深怒 不可不戒

太陰人 有浪樂深喜 不可不戒

少陰人 有浪喜深樂 不可不戒

동무 공은 〈수세보원〉에서 계속 사상인의 취약한 요소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성명론」에는 사심(邪心)과 태심(怠心)이 나오고, 존기심하고 책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단론」에서는 심욕(心慾)에 의해 비박탐나인(鄙薄貪懦人)으로 나누었고, 애노희락(哀怒喜樂)의 폭랑(暴浪)에 대해 말했다. 즉 건강을 유지하는 길은 욕심을 절제하고 애노희락의 중절(中節)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암은 손인가

암(癌)은 손님인가. 아주 질 나쁜 손님인가. 그래서 막고 쫓아내고 혼내고 욕하고 윽박지르고 그러다가 안 되면 도려내 버릴 수 있는가. 그러면 성공인가. 암이 생기도록 만든다는 온갖 발암물질이 거론되고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모든 생명체는 결국 죽는다는 것은 인지가 생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면서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암은 죽음의 전령(傳令)이며 집행관이다.

그런데 암은 손(客)이 아니다. 또 다른 나(我)다. 나의 다른 모습이다. 온갖 욕심의 덩어리(趨心慾)요, 내 감정을 함부로 쓴(哀怒喜樂의 暴浪) 결과물이다. 암은 이제 죽음과 친해진 내 몸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생명과 좀 더 친해 보려는 내가 있다. 죽음과 친해진 몸이 더 우세해지면 죽고, 생명 쪽으로 더 기울면 더 버틸 수 있다. 생명 쪽으로 더 버티고 싶다면 그럴 여지와 희망이 있다면, 결국 내 욕심과 애노희락이 바로 보이는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먹고 죽은 놈이 때깔도 좋다고 했어. 기생충약 빨리 구해와. 그거 먹고 나았다고 유튜브에 나오잖아. 보험 혜택도 없는 그 항암제 너무 비싸, 우리 집 기둥뿌리 흔들려. 나는 지금 몹시 아프고 괴로워. 항암치료 얼마나 힘든지 너희는 알기나 해. 머리털도 다 빠지잖아. 이거 봐. 그러니 내가 너희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풀이를 할 수밖에는 없어. 이게 사는 거야 이렇게 살아서 뭐 해.

 

몸 안의 태양

암 선고를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암을 떨쳐버렸다는 사람이 있다. 그가 산에 들어가, 산에서 나는 온갖 약초와, 산에서 나온 음식 재료와, 산에서 발효된 것들을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가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그 자신도 그의 책 ‘산야초로 암을 이기다’를 펴낸 출판사도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태양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지닌 생명의 원천은 태양이다. 그리고 마음(心)은 내 몸 안의 태양이다.(五臟之心 中央之太極也)

저명한 의사, 탁월한 처치, 정교한 수술법, 유효한 항암성분, 비싼 약제로 버티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내가 그동안 일으켜온 헛된 망상과 끝없는 욕심과 남을 향한 시기와 질투와 분노를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정녕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비로소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마음의 씀씀이와 태도와 방식을 전환시킬 수 있다. 사실 그 순간이 오면 그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면 생명 쪽으로 기운 그곳에 내 몸 안의 태양이 비추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향한 엄지

환자분을 만나는 십여 분 동안 이것을 자세하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핵심만 얘기했다. 환자분을 살려드릴 수 있는지 없는지 나는 지금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남은 생명이 죽음 쪽으로 더 치우치지 않고 생명 쪽에서 더 버틸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한 가지 숙제가 있다. 가족과 친지 주변 분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려고 노력하시라. 음식표 알려드린 대로 잘 챙겨 드시라. 잘 드시고 소화 잘 시키고 오줌똥 잘 누면 안 죽는다. 괜히 지난번처럼 힘 나게 고기국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일랑 하지를 마시라. 이렇게 말씀드렸다.

미국에 사는 작은 딸이 첫돌을 맞은 아이와 함께 와서 돌잔치를 치렀다. 그리고 작은 딸은 언제 출국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태란다. 체질침을 놓고 전동베드를 내리면서 환자분께, 주위에 남을 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남기고 가시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강조하여 말했더니 나를 향해 엄지를 세우셨다. 내년에도 아니면 더 후에라도 환자분이 자신을 향해 세운 엄지를 내가 볼 수 있기를 빈다. 그것이 헛꿈이라도 그렇다.

 

욕심

인간은 욕심에 따라서 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식욕(生存)과 성욕(繁殖)은 본능의 영역이다. 그리고 성취욕이다. 이것이 인류사를 이룬다. 욕심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사람이라면 욕심이 없이 살 수는 없다.

인류가 아닌 다른 생명체의 삶은 무조건 본능을 따른다. 그들에게는 욕심이 없다. 그래서 지질하거나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동무 공은 욕심에 따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버린 지질한 삶에 대해서 규정했다. 바로 비박탐나인이다. 동무 공은 〈수세보원〉에서 사람의 욕심, 그것의 나쁜 점을 부각시켜서 강조하고 경계했다.

30년 이상의 임상경험을 가진 가정의학 전문의인 웨인 조나스(Wayne Jonas)는,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의사의 치료가 아니라 환자 자신, 특히 마음가짐에 의해 낫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 깨달음이 이미 늦었다는 것 또한 함께 알게 된다.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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