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의사의 감정노동 문제, 간호사 연구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상태바
[기고] 한의사의 감정노동 문제, 간호사 연구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승인 2021.11.12 0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찬영

권찬영

mjmedi@mjmedi.com


권찬영
동의한의대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한의사는 의료현장에서 고강도의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즉, 침구실에서 허리를 굽혀 침치료를 하거나, 추나요법을 시행하는 신체노동, 그리고 진료실에 앉아 환자와 면담을 할 때는 환자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직, 특히 한의사의 감정노동과 관련하여 한의계에서 시행된 연구는 전무한 상황이다. 그나마 2013년에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발표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에서, 일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및 한약사, 간호사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 관련직이 감정노동을 많이 수행하는 직업군으로 분류된 정도다.

감정노동은 개인의 안녕과 정신건강은 물론, 환자의 만족도, 치료결과, 안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의료에 대한 대중의 인식(서비스의 질이 만족도와 재진에 큰 영향)이 점차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한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에게 있어 감정노동의 중요성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다. 즉, 향후 한의약의 대중화를 위해 한의계의 서비스질을 제고하고, 한의사의 정신건강과 안녕을 개선하며, 환자의 치료결과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의 인력의 감정노동 수준을 조사하고, 감정노동과 관련된 요인들을 분석하며, 감정노동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구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 동의대학교 인공지능그랜드ICT연구센터(지원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정보통신기획평가원) 과제로서, 한의학 전문가, 간호학 전문가, 심리학 전문가, 관련 기업과 함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직의 정신건강 개선을 위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간호계의 정신건강과 관련된 선행자료들을 조사하는 연구들을 시행해왔는데, 이 조사의 결과물이 지난 2021년 10월 21일, Sustainability지에 국내 간호사의 감정노동 수준을 분석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으로 발표되었다. (The Experience of Emotional Labor and Its Related Factors among Nurses in General Hospital Settings in Republic of Kor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https://www.mdpi.com/2071-1050/13/21/11634

 

이 체계적 문헌고찰은 국내외 여러 데이터베이스에서의 검색을 통해 2021년 1월까지 발표된 국내 횡단면 연구들을 수집하여 한국 내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을 메타분석한 연구로, 검색 및 선별 결과 총 131편의 연구가 포함되었다. 즉, 간호계에서는 간호사들의 감정노동을 중요하게 다뤄왔으며, 관련 연구가 다수 누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간호사 뿐 아니라 한의사의 감정노동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구결과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감정노동에 대한 1-5점 리커트 척도를 기준으로 메타분석을 시행한 결과, 전체적으로 한국 간호사들의 평균 감정노동 점수는 3.38 (95% 신뢰구간, 3.34~3.42)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감정노동 점수가 더 높은 것은 더 높은 수준의 소진(burnout), 이직의도(직장을 옮기고자 하는 의도), 직무 스트레스, 더 낮은 직업 만족도, 더 열악한 간호환경과 관련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감정노동을 나누는 유형에 따라 표면행위(surface acting)와 심층행위(deep acting)로 분류할 수 있는데, 표면행위는 간호사가 자신의 속마음과는 달리 직무에서 요구되는 감정표현을 겉으로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심층행위는 직무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감정들(환자에 대한 측은지심 포함)을 내면에서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결과, 표면행위는 간호사들의 우울 증상, 직무 스트레스, 소진, 심리적 스트레스 등과 정적 관련성이 있는 반면, 심층행위은 부정적인 건강 결과와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부적 관련성(분노, 소진)을 보이거나, 긍정적인 결과(직무 만족도, 즐거움, 자부심)와 정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즉, 똑같은 감정노동이라도 표면행위냐, 심층행위냐에 따라 관련 요인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전부터 연구되어 왔었는데, 스탠포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James Gross 교수는 1998년 발표한 그의 논문을 통해, 감정조절 전략을 크게 antecedent-focused 감정조절(그들의 경험을 재평가하여 감정을 조절하는 전략)과 response-focused 감정조절(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억누르며 감정을 조절하는 전략)로 분류한 뒤, 참가자들에게 혐오스러운 영상을 보여주고, 각 감정조절 전략과 관련된 개인의 경험, 행동, 생리적 반응을 조사했다. 그 결과, 2가지 감정조절 전략은 모두 감정표현 행동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전자의 경우 혐오스러운 경험 자체가 감소한 반면, 후자의 경우 교감신경계 활성화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J Pers Soc Psychol, 1998). 감정노동에서 표면행위와 심층행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표면행위는 자신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하기 때문에 억제 전략과 관련이 있고 (교감신경계 활성화), 심층행위는 자신의 감정을 수정하려는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상황을 재평가해서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등 재평가 전략과 관련이 있다 (혐오경험의 감소).

이것을 다시 한의사를 포함한 의료직에서의 감정노동으로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의료인은 직무의 특성 상 감정노동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노동 중에는 불가피한 것(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 돕고자 하는 마음, 친절한 태도 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환자 및 보호자와의 갈등이나 언어폭력, 신체적 폭력, 열악한 직무환경, 동료들과의 마찰 등,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한 감정노동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정노동이 의료인들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전략은 외부적(환경의 변화)인 측면과 내부적(내면의 변화)인 측면으로 검토될 수 있다. 환경적으로는 언어폭력, 신체적 폭력, 열악한 직무환경 등 감정노동을 가중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감정노동 경험과 소진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내부적으로는 필연적으로 노출되는 감정노동에 대해, 감정억제로 인한 교감신경계 활성 반응을 명상, 호흡법, 이완요법으로 감소시키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직무에서 요구되는 따뜻하고 친절하고 측은한 마음을 내면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재평가 감정조절을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한의계에서는 한의사의 감정노동이 중요한 연구주제로 여겨지지 않고 있지만, 이전 기고문을 통해 설명한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한의원을 만들고, 개인의 정신건강과 안녕을 증진시키며, 환자 만족도와 치료결과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의약의 대중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향후 한의사의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간호계에서 시행한 연구들도 귀중한 자료원으로 참고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