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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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
  • 승인 2021.09.10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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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어린이라는 세계

생일이면 잊지 않고 책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매해 친구가 권해주는 책들은 친구의 마음 한 켠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좋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 친구가 보내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말랑말랑 몽실몽실 해졌다. 어린이와 함께 독서교실을 하고 있는 저자의 생활 속 경험담과 생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맞다, 어린이는 이런 존재다.. 페이지를 넘기며 웃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 어린이라는 한 세계를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반성하기도 하였다. 내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어린이라는 이유로 너는 아직 몰라, 어른인 내 말을 따라야지, 하고 일방적으로 대하는 순간들이 많지는 않았는지...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책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술술 읽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김소영 지음, 사계절 출간
김소영 지음, 사계절 출간

다음 이야기는 책의 맨 처음에 나온 에피소드이다.

독서교실에 온 현성이가 신발 끈을 묶는 운동화를 신고 왔다. 현성이가 신발 끈을 묶는 것을 어려워하면서 천천히 묶기에, 마침 그날 읽었던 책에 시간이 흐르면 어려웠던 일이 쉬워져요 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선생님이 그 구절로 현성이를 위로하자 현성이가 말한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졌다고 하셨다. 맞다. 어린이들은 지금도 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시간이 걸리는 게 뭐가 나쁜가? 자꾸 어린이들에게 너는 지금은 못해도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너는 지금은 어리니까 모르지만 자라면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며 어린이들을 막고 가르치는 어른들이 많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세계가 있는 것인데.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데. 어린이는 어린이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어른의 삶을 살게 되는 것뿐인데. 우리는 자꾸 어린이들을,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 어른이 되어서 더 잘 살기 위해 어린이 시절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저절로 깨닫게 된다.

작가는 어린이들이 무슨 얘기를 할 때 너무 <귀엽다>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하고, 독서교실에 오는 어린이들의 외투를 정중히 벗겨준다고 하였다. 어린이 자체로 존중하려는 마음으로. 책의 곳곳에서 어린이를 한 존재로, 그의 마음을 오롯이 존중해주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것이 참 좋다. 종종 진료실에 오는 어린이들을 떠올린다. 진료실 의자에 앉는 어린이들에게 나는 눈을 맞추고 물어본다. 이름이 뭐야? 어디 초등학교 다녀? 그러면 엄마들은 내가 그쪽에 눈을 주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서둘러 하신다. 고등학생과 함께 와서도 화장실 가는 것도 엄마가 얘기 하는 경우는 참 안타깝다. 엄마를 잠시 나가 계시라고 하면 땅바닥만 보고 있던 아이들이 표정이 바뀐다.

책의 구절 중에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주제가 되는 표현인 것 같다. 책의 맨 뒷장에 작가의 말이 있다.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회속의 어린이에 대한 내용이 있다. 어린이라서 학대당하는 일, 어린이라서 고통 받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도 불쑥 불쑥 떠올랐다. 다섯 살 무렵 엘리베이터에 타면 위로 눈을 들어 사람들을 쓱 둘러보던 내 아이가 떠올랐다. 그때 아.. 이 아이의 눈높이에선 어른들의 다리만 보이겠구나 깨달았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주눅 들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어린이도 떠올랐다.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인데다가, 누구나 어린이의 세계 자체를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지.

어린이들과 작가의 일상과 대화를 아주 즐겁고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새삼 삶의 태도를 정돈하게 된다. 이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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