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74> - 『纂圖萬論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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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74> - 『纂圖萬論書』② 
  • 승인 2021.08.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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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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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千家萬論, 제가맥설과 방론을 한자리에

  사실 오래 전 대학원 학연과정에서 연구생 가운데 하나가 許浚(1539~1615)과 그의 업적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왔고 필자는 여러 저작 가운데서 가장 먼저 편찬한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의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책 『纂圖方論脈訣集成』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계획을 세워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본 연구를 위한 예비조사에서 전구작인 목판본『纂圖脈訣』을 제공받아 선후판본 비교를 시행할 수 있었고 논문도 발표하였다.

 ◇ 『찬도만론서』
 ◇ 『찬도만론서』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2013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여 ‘허준의학전서’ 발행계획을 기획하고 『동의보감』이외 허준이 펴낸 각종 의학저술과 방역의서, 언해의서 등을 망라하여 전집으로 발행하고자 관련 자료를 섭렵하던 중, 이 책의 전범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圖註王叔和脈訣』을 발견해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하고 전문을 영인해 ‘의성허준저작집’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허준이 남긴 여러 저작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손을 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비록 여기 소개하는 이 사본이 전서 내용 가운데 절반가량만 남은 欠本이라 하지만 허준이 처음 펴낸 맥결서로 『왕숙화맥결』과 함께 조선후기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실증자료라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등사자가 원서명과 함께 ‘찬도만론서’라 적어놓은 자작서명을 통해 복잡다기한 諸家脈說과 方論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보려 노력했던 허준을 비롯한 조선의학자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진단학발전사에 빠트릴 수 없는 자료이다.

  사본의 권수제 아래 ‘高陽生 編輯, □□ 校正’으로 되어있는데, 현전 판본에도 교정자의 이름자가 빠진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허준이 직접 쓴 발문에 의하면, 高陽生은 六朝때 사람으로 왕숙화의 『맥경』을 토대로 歌訣을 지어 읽기 쉽고 외우기 편하게 편집했다고 하였다. 이와 아울러 성상(선조)께서 허준에게 명하여 ‘찬도맥결’의 본문과 주석이 섞이거나 잘못된 곳이 많으니 이를 교정하고 직접 발문을 지어 후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작자를 표시하는 ‘高陽生 編輯’ 다음 행에 ‘(許浚) 校正’이라고 새겨져 있어야 맞는 듯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명이 들어가야 할 부분을 빈칸으로 남겨둔 채 인쇄되어 있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교정자의 성명이 밝혀져 있는 또 다른 전본이나 간행사실 밝혀질 때까지 잠시 즉답을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내에는 다수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대부분 목판본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 버클리대학과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갑진활자본이 소장되어 있으나 허준 교정 이전의 간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유구가 정리한『鏤板考』에서는 혜민서에 이 책의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으며, 서지목록류에 국내 여러 대학과 도서관에 목판본이 다수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이 책이 醫科取才 考講書로 쓰였기 때문에, 교정본은  필요에 따라 여러 차례 중간되어 널리 유포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1612년 허준이 편집 교정하여 내의원에서 펴낸 개간본을 저본으로 삼아 얼마 지나지 않아 혜민서에서 목판에 판각하여 인출한 다음, 조선 팔도 각 지방에 보내 유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는 활자로 인출한 권1과 권3, 영본 2책만이 보물 제1111호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조선시대 진단학 교과서로 간행되어 널리 유포되었던 책임에도 오늘날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마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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