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상태바
한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 승인 2021.05.20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규

박영규

mjmedi@mjmedi.com


박영규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연구교수, 교육학박사
박영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연구교수, 교육학박사

원시시대 사람들은 천둥과 번개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자연재해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들은 하늘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누군가가 있어 때론 화를 내고 때론 기뻐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그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초월자의 마음에 들게 되어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적활동과 종교생활의 시작이었으며, 이 후 철학으로 이어졌다.

철학은 우주질서의 궁금증에 대한 논리적 사고 활동이다. 사람들은 우주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관해 종교가 아닌 논리적 사고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즉, 우주공간은 어떤 질서와 힘(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는가? 인간은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철학은 경험적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에 직면한다. 철학의 대상은 인간의 이성과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늘의 끝은 있는가? 없는가? 이 같은 질문에 현대 인류의 진화된 상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분화하게 된다. 그것이 과학(science)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를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으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현대의 모든 학문의 본류는 철학이 되는 셈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인간의 이성, 합리성, 과학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신록이 짙어가던 오월 어느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나무는 심하게 흔들려 부러질 것 같았다. 바람을 피하려 건물로 들어가는데 출입구 문틈으로 바람 소리가 휭-휭- 스산하게 들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문틈을 만나 괴이한 소리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들은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람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감각적인 세계가 절대적 진리의 세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은 한계가 있다. 학문의 시작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이해한다. 정말 그럴까? 과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과학이 진리로 존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과학적 사실이란 현재의 잠정적 합의일 뿐이다.

최근 한의학교육은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해 다소 혼란을 겪는 듯하다. 학생들은 교육과정 상의 개별 교과목과 교수법 등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질문에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즉, 논쟁만 있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은 양방과목의 확대와 양방교육 시스템으로 교육 받길 원한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 이면에는 현재의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으로는 한의사로서의 역할이 미흡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즉, 양의사처럼 한의사도 서양의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진단하고 치료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엄격한 한·양방 의료분업으로 인해 학생들의 기대는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지점에서 한의과대학에서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즉, 한의학의 전통에 따라 기존에 해오던 교육을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시장 요구에 맞추어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교육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가? 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발달과정은 철학적 기반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서의학이 인간의 생명현상을 다루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공통점이 있지만, 생명관의 기초가 되는 이론 전개에 있어서는 맥락을 달리한다. 즉, 동양의학은 우주의 질서에 대한 시각이 일원론(一元論)인데 반해 서양의학은 이원론(二元論)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의학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즉 로컬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줄고, 한의사의 진단 및 치료 영역과 한의학 관련 산업 분야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의사협회 등에서는 한의사의 업무 영역 확대 등에 대한 입법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한의과대학에서는 교육과정 개선을 통한 유능한 한의사를 양성하는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능한 한의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한의학의 철학적 본질을 잘 이해하는 한의사, 둘째, 환자와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한의사, 셋째,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한 한의사, 넷째, 한의학의 우월성을 굳게 믿는 한의사이다.

세상 일은 믿는대로 이루어진다. 의학적 치료에는 ‘플래시보 효과’가 있고 교육학에서는 ‘피크말리온 효과’가 있다.

한의학의 학문적 본류가 형이상학적 측면이 강해 이에 대한 회의감을 갖을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환자의 질병 치료에는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한의학의 미래를 개척하는 길은 한의학계 구성원 모두가 한의학의 의학적 치료효과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한의학을 서양의학의 아류가 아닌 독창적인 학문과 의술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긍심과 실천의지를 가지는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