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으며 존재 자체로 환자 바라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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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으며 존재 자체로 환자 바라보게 돼”
  • 승인 2021.05.13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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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책, 사람을 잇다(13) 김지연 한그루한의원장

인생의 책, 동의보감-데미안-소유냐 존재냐…사고의 틀 깨는 인문학 흥미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김지연 한그루한의원장과의 인터뷰는 인문학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대학원에서 의사학 석사과정까지 밟았던 만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인문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김지연 원장은 원광한의대와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쭉 고향인 전주에서 진료활동을 해오던 중 지난해 서울에서 현재 한의원을 개원했다. 개원 이전의 그는 대학생활 막바지에 언니와 유럽여행을 다녀왔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강연석 교수의 지도를 받던 중 정부지원 대학원생 교류프로그램으로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의 Bharati Vidyapeeth Deemed University에서 인도 전통의학 중 하나인 아유르베다(Ayurveda)를 각 분과 교수들에게 직접 배웠다. 코로나19로 개원가의 어려움이 많은 시기에 개원을 한 것에 대해 그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현재까지 많이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다”며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듯이 한의원은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다만 학창시절 독서실에서 지루한 공부 중 틈틈이 읽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재밌게 읽었고,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 소설의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 진학 이후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컸다. 전북 익산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지방대라는 한계로 외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며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공공의료 관련 강의나 노자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고, 책을 통해서도 그런 갈증을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생각이나 주장을 나눌 수 있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사랑의 기술’,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과 ‘끝나지 않은 여행’ 등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인문학서적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김 원장에게 인문학의 매력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내 사고의 틀을 깨버리는 책에 흥미가 있다”며 “예를 들어 이전에는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순으로 진화하며 과거의 인류는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이 모든 인류가 시간의 축에 따라 변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인종으로 탄생하며 모두가 공존하던 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생각지 못했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 재밌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원래 인문학을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고전소설이나 스테디셀러도 많이 접하고 있다고 한다. 위화의 ‘허삼관매혈기’도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역사’를 주제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연속해서 읽었다고도 했다.

‘책, 사람을 잇다’ 인터뷰에서는 늘 ‘책이 당신의 인생에서 영향을 끼친 사례가 있는가’를 필수공통질문으로 던지곤 한다. 이전에 만나온 사람들이 그랬듯, 김지연 원장 역시 이 질문에 많이 고심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들이 ‘나눔’과 ‘평온한 삶’이라는 키워드로 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 때 이후로 경쟁보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고싶다는 가치관이 생긴 것 같다”며 “스콧 니어링의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다. 그 외에 무하마드 유누스와 알란 졸리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니어링 부부의 소박하고 조화로운 시골생활을 보면서 이를 바람직한 삶의 태도로서 어린 마음에 동경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었다”며 “또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시도하며 그라민뱅크를 설립한 무하마드 유누스의 이야기를 읽고, 작은 이윤을 추구하며 은행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문제해결을 위한 선순환’ 과정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김지연 원장은 그의 인생의 책으로 허준의 ‘동의보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았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이미 수많은 한의사들이 인생의 의서로 꼽은 바 있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해 대학원 시절, 동의보감 원전 읽기 스터디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한의대 재학시절에 동의보감은 교과서 안 곳곳에 스며들어있어 질환별로 변증을 외워 답을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시험에 나오니 외우기는 하지만 환자를 볼 때 실제로 도움이 될지 막연하게 의문을 갖기도 했다”며 “그러나 임상을 하면서 ‘동의보감’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익숙한 서적인 이유도 있지만,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따라 원인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환자가 다른 증상 없이 손과 발바닥에서만 열이 난다고 하는 경우 ‘수족번열’을 키워드로 동의보감 잡병편 화(火)문에 ‘오심열’에서, 자다가 땀이 많이 나는 경우 ‘도한’을 키워드로 ‘내경편 진액(津液)문에 ’도한‘에서 원인을 찾아보게 된다”며 “주소증을 중심으로 환자가 호소하는 다른 증상을 함께 고려하여 변증하는 것에 더해 동의보감에서 각 증상에 대해 어떤 원인을 제시했는지 펼쳐보면 놓칠 수 있었던 부분까지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이전 방대한 의서들을 집대성하여 목차별로 분류해놓은 '동의보감'의 체계에 다시금 감탄하곤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책으로 언급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열 살 소년 싱클레어가 스무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고독하고 힘든 성장을 다룬 고전소설이다. 이 책은 ‘일단 시작해보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좋아한다’는 김지연 원장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책이었다. 그는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을 언급하며 “알을 깨고 나오는 경험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겁고 짜릿한 일이기도 하다. 진정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존 사고의 틀이 깨지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탐험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고백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적 인간’과 ‘존재적 인간’에 대해 말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소유와 대비시켜 서술했다. 김 원장은 “책의 서론에서 상징적인 시 두 편이 나온다. 꽃에 대한 테니슨과 바쇼의 시”라며 “테니슨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꽃을 ‘뿌리째 뽑음’으로서 소유하며 생명을 파괴한다. 반면 바쇼는 그저 ‘바라보기’를 원한다. 꽃과 일체가 되기를, 꽃과 결합하기를 원하면서도 꽃의 생명을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 중 일부에는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역시 바쇼와 일맥상통한다. 소유하려는 마음보다는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것, 더 나아가 그 존재의 생명을 일깨우는 데까지 나아가는 마음씀씀이가 드러나는 내용”이라며 “이처럼 개인적인 삶에서도, 한의원에서 환자를 보는 치료자의 입장에서도 삶의 방향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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