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청음 – 출혈 처방에서 만성염증 처방으로 발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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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청음 – 출혈 처방에서 만성염증 처방으로 발전!①
  • 승인 2021.04.09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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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원

권승원

mjmedi@mjmedi.com


일본 CPG 속 한방약 엿보기 (34)
경희대학교한방병원순환신경내과 부교수 권승원
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부교수

<전형증례>

57세 남성.

뇌출혈 후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만성신부전으로 5년째 주3회 투석 중이며, 투석 시행 이래 지속적인 전신 가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피부과에서 관련 약 처방을 받아보았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해 현재는 복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뇌출혈 재활도 재활이지만, 이 가려움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했다.

체형은 매우 마른 편이며, 피부색은 짙은 흑색이다. 피부는 매우 거칠하고, 각질이 일어난 부분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동반 증상과 질환, 체형, 피부색을 고려하여 A 엑스제를 통상 용량(1포)의 2배로 사용하여 1일 3회 투약하기로 했다. 복약 7일차부터 전신가려움의 강도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14일차가 경과하자 주간시간의 증상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에도 야간에는 증상은 지속되었으나, 강도가 매우 경미하게 호전되었다. 이후, 야간 취침 전 2포 복용으로 복약법을 변경하였으며, 이후에도 3개월간 증상의 악화 없이 경미한 정도의 가려움을 야간에만 느끼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A는 바로 온청음(溫淸飮)이다. 온청음은 황련해독탕(黃連解毒湯)과 사물탕(四物湯)의 합방으로, 중국 명대(明代) 『만병회춘(萬病回春)』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여성의 부정성기출혈에 대한 치료처방으로 제안되었다. 이후 비교적 현대에 이르러 만성염증에 활용할 수 있는 처방으로 그 활용범위를 넓혀 갔으며, 최근에는 주로 만성가려움과 같은 난치성 피부질환을 위주로 임상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온청음 개요

구성약물: 당귀, 작약, 지황, 천궁, 황련, 황금, 황백, 산치자 (황련해독탕 합 사물탕)

효능효과: 체력이 중간 정도, 피부는 거칠하며 색이 좋지 않고, 상열감이 있는 다음 증상: 월경불순, 월경곤란, 혈도증(血道症), 갱년기장애, 신경증, 습진 및 피부염 (일본 내 허가사항)

 

온청음 활용의 발전사

온청음은 앞서 언급하였듯 황련해독탕 합 사물탕 (1:1의 비율)에 해당하는 처방이며, 공정현(龔廷賢)의『만병회춘(1587년)』권지육(卷之六) 혈붕문(血崩門)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붕루(崩漏)라 불렸던 여성의 부정성기출혈 치료처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공정현은 부정성기출혈 치료 시 신구(新舊, 병기)와 허실(虛實)에 따라 치료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약간 오래되어 허열(虛熱)에 속한 경우, 마땅히 양혈(養血)하며 청화(淸火)해야만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여기에 쓸 수 있는 처방으로 제시한 것이 온청음이다. 구체적인 적응증은 “하혈이 멈추지 않으며, 혹은 두즙(豆汁) 같은 색을 보이고, 안색은 위황(痿黃)하며 복부가 찌르듯 아프고, 한열왕래(寒熱往來)하며 붕루가 멈추지 않는 경우”로 되어 있다. 참고로 온청음의 대조처방으로 “오래되어 허한(虛寒)에 속한 경우, 마땅히 온보(溫補)해야만 한다”면서 제시한 처방은 익모탕(益母湯)이었고, 익모탕은 사물탕 가 황금 진피 향부자 아교 익모초 백출 현삼 포황 감초로 구성된 처방이었다.

온청음이라는 처방명 세 글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만병회춘』임에 틀림없으나, 사물탕과 황련해독탕을 합방하여 사용하는 방법의 흔적은 그 이전의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조선시대 세종대(世宗代)에 당시 각종 의방(醫方)을 총망라하여 출간한『의방유취(醫方類聚, 1445년)』이다. 『의방유취』권지일백오십칠(卷之一百五十七) 적열문(積熱門) 어약원방(御藥院方) 중 황련해독탕의 소자주문(小字註文) 에는 원대(元代)의 의가인 왕호고(王好古)의 처방방법임을 밝히면서 (해장(海藏)이라는 왕호고의 호가 등장) 사물탕과 각각 1:1로 합방하여 사용하면 부인조열(婦人潮熱)을 치료할 수 있다고 언급한 구절이 등장한다. 바로 황련해독탕과 사물탕을 1:1로 합방하여 사용하는 온청음의 형태이다. 그런데, 정작 왕호고의 저서인『의루원융(醫壘元戎)』에는 판본에 따라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지 않기도 한데, 보다 후대인 1593년 중간(重刊)된 판본에는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내용이 유실되지 않고 온전한 형태였던 왕호고의 저서에 수록되어 있던 내용을 조선시대 학자들이『의방유취』에 기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만병회춘』이전의 기록에서는 온청음을 ‘부인조열’이라는 별개의 적응증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적응증이 현대에는 갱년기여성의 상열감 등에 온청음을 활용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이제 활용의 역사로 넘어가겠다. 『만병회춘』이후, 몇몇 서적에서 온청음을 다루기는 했는데, 모두 첫 적응증이었던 여성 부정성기출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일본의 몇몇 의학자를 통해 그 활용범위가 확대되어 간다. 『오죽루방함구결(梧竹樓方函口訣)』에서 처음으로 소화관출혈에도 온청음을 응용할 수 있음이 제안되었는데, 음주를 과도하게 하여 장위(腸胃)에 축열(蓄熱)하여 하혈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다고 하였으며, 꼭 음주를 과도하게 하지 않았더라도 장위의 열로 인한 증상이 있을 경우 사용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소화기출혈에 사용할 경우, 대부분 대황을 추가하여 사용할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까지도 온청음은 출혈에 대한 처방 그 이상의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했다.

온청음의 활용범위가 확장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체질의학 일관당의학(一貫堂醫學)의 창시자 모리 도하쿠(森道伯, 1967-1931)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 저술을 남긴 적이 없는데, 그의 제자 야가즈 카쿠(矢數格)가 1933년 『모리 도하쿠 선생전』을 출간함으로써 그 내용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일관당의학에서는 체질을 크게 어혈증(瘀血證), 장독증(臟毒證), 해독증(解毒證)으로 나누어 3대 체질분류를 제시했다. 이중 해독증 체질은 당시 결핵성 체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결핵에 대한 이환율이 높고, 면역능 저하 양상을 보여 어려서 부터 편도염, 중이염, 비염, 기관지염 등에 잘 이환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뇨생식기 질환에도 잘 걸리는 것으로 해설했다. 주로 외형적으로 피부색이 검은 편이며, 야윈 경향을 보인다고도 했다. 바로 이 해독증 체질에 제시된 3대 처방이 시호청간산(柴胡淸肝散), 형개연교탕(荊芥連翹湯), 용담사간탕(龍膽瀉肝湯)이었는데, 모두 온청음을 기본처방으로 하면서 상황에 따라 몇몇 약재를 가감한 온청음 가감방에 해당하는 처방들이었다. 세 처방 모두 동일한 처방명을 가진 유사처방이 있으나, 그 구성은 꽤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면역력에 초점을 둔 의견이 제시된 이래 온청음의 활용범위는 한층 넓어지게 되었다.

일관당의학 이후, 온청음은 출혈성 질환에서 벗어나 여성질환 중에는 월경과 관련된 제반문제, 갱년기 장애 신경증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게 되었으며, 피부과질환 중에서도 면역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특발성 색소자반, 피부가려움, 손발바닥 농포증, 아토피피부염, 베체트병, 재발성 아프타, 피지결핍증 등과 같은 다수의 난치성 피부질환에 널리 활용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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