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변함없는 당신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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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변함없는 당신이 좋아요
  • 승인 2021.04.02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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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김영호
한의사

나는 변함없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다. 세상의 기준보다 자신의 중심이 더 확고한 사람들이다. 때로는 손해가 나고 조금 늦더라도, 자신이 정한 도리와 믿음을 지킨다. 그들은 화려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은 변화가 큰 존재들을 사랑한다. Money Market에서 1년에 고작 7~8% 상승하는 자산(Asset)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반면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 상승하고 다음날 다시 급락하면서 변동 폭이 큰 자산은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

남녀 사이에서도 변화무쌍한 사람들이 인기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 스타일이 매력적이라는 시대다. ‘한결같고 꾸준한 애인이 지루해져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단골 주제다. 인간은 이렇게 격렬한 변화에 매료된다.

세상은 변화에 올라타는 것이 능력이라지만 내 생각엔 ‘변화를 견디는 것도 능력’이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변하는 시세에 따라 매도 매수를 반복하는 것보다 변화를 인내하고 버티는 것이 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적 가격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잘못된’ 대응을 하고 만다. 지나간 후에 후회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황은 반복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똑같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성은 매력적이다. 온갖 애를 다 먹이다가도 잘해줄 때는 한없이 자상한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거나 이별을 고했다가 슬며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연인을 사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관계 유지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그 매력을 못 잊어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산시장에서 이런 변동성은 그 자체로 위험(Risk)이다. 변동성이 큰 자산은 안정적인 자산보다 시장에서 낮은 가치(가격)를 받는다. 변화가 적은 자산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가치를 받는다. 짧은 기간에 크게 상승하는 일도 적지만 급락하는 경우도 드물다. 조금 조금씩 가격이 오르다보면 급등락을 반복했던 주식보다 오히려 비싸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자산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버텨주는 힘이 있다. 남들이 모두 후퇴할 때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힘, 그 힘이 결국 가치를 끌어올린다.

가치 있는 존재들은 뽐내지 않는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쌀밥처럼 담백하고 심심하다. 자세히 살펴야 보이고 안목이 있어야 보인다. 변화의 폭과 움직임이 적어 소모되는 에너지도 적다.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거나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평소 언행을 조심하고 에너지를 아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변함없는 존재들의 이런 특징은 변화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역행한다. 그래서 지루함을 잘 견디는 유형의 사람들은 소외당하기 쉽지만 마지막에 웃는 것은 결국 그들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성과들은 대부분 이렇게 지루한 하루들이 모여 우리와 만났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잘 쌓아가야 한다. 보람된 하루를 망치는 소모적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자산 관리에도 리밸런싱이 필요하듯,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리밸런싱이 필요하다. 내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사람이 친구, 연인, 가족 그 누구라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서 사소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나를 끊임없이 소모시키는 관계는 정리하고, 조용히 우리를 지켜주고 지지해주던 존재를 찾아야 한다. 평소에 내 마음을 소모시키지 않던 그들이 진짜 귀인(貴人)이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고,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않으며 스스로를 뽐내지도 않는다. 재미도 없고 심심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귀인(貴人)은 그들이다.

변함없는 일상이 지루하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곳저곳에서 큰 일이 터지면 지루할 틈이 없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들과 걱정으로 하루가 지나간다. 일상이 지루하다는 건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다. 지루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지탱해주는 귀한 사람들과 지루함을 만끽하면 된다.

변함없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주어 참 고맙습니다. 변하지 않고 묵묵히 살다보면 기회가 다시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햄릿이 말했듯 말입니다. “All's Well That Ends Well.”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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