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성능 향상 중시하는 ‘미병’…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수집한 데이터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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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성능 향상 중시하는 ‘미병’…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수집한 데이터 연구 필요”
  • 승인 2021.03.1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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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인터뷰: 정회원학회 인준 받은 미병의학회 박영배 회장

의사-간호사-영양사 등 다양한 직군 소속…향후 국제 미병 컨퍼런스 개최하고파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대한한의학회는 지난 6일 개최한 평의회에서 대한미병의학회를 새로운 정회원학회로 인준했다. 건강도 질병도 아닌 중간상태를 일컫는 ‘미병’에 관해 한의사 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학술논의를 하고 있다는 미병의학회의 박영배 회장을 만나 미병에 대한 그의 관점을 들어봤다.

 

▶정회원학회로 인준 받은 소감은 어떠한가.

정회원학회가 되었다고 해서 무언가를 달성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 앞으로가 시작이다. 꾸준한 학술활동을 통해 학회를 키워나가고 미병연구의 기반을 만들고 싶다.

 

▶미병의학회는 어떻게 창립되었고 그동안 어떤 학술활동을 해왔는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미병은 한의사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국제 학술적으로 논의된 것은 20세기 중반 러시아학자가 개념을 제안한 것이 최초다. 그는 임상현장에서 질병은 아니지만 건강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환자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아건강(sub-health), 반건강 등의 용어를 제안했다. 이후 일본에서 미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미병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06년 일본에서 미병의학회가 열렸는데 그 때 나도 학회에 참석하면서 미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2008년에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의 김영설교수와 함께 ‘미병의 동서의학’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했고, 경희대한방병원에서 ‘미병클리닉’을 운영하며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다른 교수들에게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아건강’이라는 단어를 듣자 ‘소아건강’이냐고 물었던 일화가 있다.

그렇게 미병클리닉을 운영하고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지난 2018년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누베베 미병연구소를 설립해 새로운 출발을 했다. 누베베 한의원은 비만진료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데, 비만은 생활습관과 연관성이 많은 대표적인 미병의 일환이기 때문에 미병연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누베베의 제안으로 미병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학술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미병의학회’를 설립했다. 학회는 현재 약 57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편집위원회와 생명연구윤리위원회도 설립해 지난해 학회지를 처음 발간했다. 이외에도 학술대회를 통해 학술논의를 하고 있다.

 

▶학회에서는 ‘미병’이라는 개념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앞서 말했듯 미병은 흔히 건강과 질병의 중간단계, 즉,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그런데 ‘건강’의 기준을 정의하는 일은 굉장히 모호하다. 서양의학에서의 미병은 검사상으로는 질병이 아니지만 환자의 고통은 존재하는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의 전통의학에서는 질병보다 건강한 상태, 불편함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며 몸을 관리의 대상으로 봤다. 이 관점에서 미병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서양의학에서 질병의 전단계로 인식하는 미병은 사실 대부분 ICD-11에 의해 질병으로 규정되어 있다. 건강이 아니라고 정의를 내리자면 건강이 아니라는 기준이 모호하다. 그래서 미병의학회에서는 미병의학을 성능중심의학으로 규정한다. 차를 새로샀을 때, 엔진이 10마력이 나오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10마력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의학적으로 볼 때 질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성능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학회는 이러한 관점에서 몸의 성능을 관리해주는 것을 미병의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몸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성능을 측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측정방법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 학회의 연구는 우리 몸의 성능을 측정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을 주제로 많이 진행할 것이다. 몸의 성능은 실상 생활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러한 생활습관을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식 중 하나가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s)다. 앞으로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몸의 상태를 측정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잘 수집해 인공지능을 통해 관리하는 시대가 와야 할 것이다.

 

▶이 학회는 다른 대다수의 한의학회 소속 학회와 달리 한의사 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보건의료계의 다양한 직군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학회를 구상한 이유가 있나.

나는 한의학이 배타적이지 않고, 한의사는 한의학에서 독점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사의 의료행위와 한의학은 다르다. 한의사는 한의학을 기반으로 한 의료영역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한의학에 독점적인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양방병원에서 진료는 양의사의 권한이지만 보조적인 실무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담당한다. 제약회사의 약은 대부분 약사나 생물학 등을 전공한 과학자가 개발하고, 의료기기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한다. 양의학 역시 양의사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나는 학문은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직역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의계는 아직까지 그런 부분에서 보수적인 측면이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아직 창립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규모도 크지 않은 학회인 만큼 이에 따른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학회지 발간부터가 난관이다. 일반 개원가 뿐 아니라 교수들도 바쁘다보니 논문 투고율이 떨어져서 논문모집부터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의계 뿐 아니라 대학에서 전반적으로 국내학술지보다는 해외학술지 게재 논문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국내학술지의 선호도가 많이 떨어진다. 만약 행정적인 업무를 진행할만한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학회라면 이 또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회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학회지가 한국연구재단의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 인준을 받는 것이 1차 목표다. 이를 위해 학회 회칙이나 학술지 투고규정 등을 모두 기준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연구자들과 함께 논의하는 국제 미병 컨퍼런스를 개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국제적인 학술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우선은 차분하게 미병 연구의 기반을 다져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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