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수뢰둔 - 産苦 끝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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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수뢰둔 - 産苦 끝의 새로운 시작
  • 승인 2021.03.1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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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요즘 지인들의 아가들과 새로 태어날 아가들 소식을 보는 것이 내 지친 하루의 위안이다. 뱃속에 있을 때도 힘들지만 낳아 놓으면 더 힘들다는 말을 예전의 나도 체감했고 지금 그 아가들의 부모들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뱃속에 있을 때 편안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임신 출산 육아란 그야말로 부모의 피와 살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람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여기에 ‘그래도 편안한’ 것은 없다고 봐야 된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은 다음에는 그 사이에 생명이 있다. 주역의 세 번째 괘인 屯괘는 그래서 힘겹다. 중국 설화에는 반고라는 존재가 태초에 있어, 그가 하늘과 땅을 가르고 그의 시신으로부터 만물이 태어났다고 한다. 수뢰둔괘는 그 반고와 같은 괘다.

둔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候

彖曰 屯剛柔始交而難生 動乎險中 大亨貞 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宜建侯而不寧

알곡이 그 속을 채우는데는 거센 비바람도 필수라고 한다. 온화한 햇빛과 좋은 기후만 받고 자란 식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날씨를 겪으며 식물은 제 살길을 찾아 더 가지와 뿌리를 뻗고, 열매를 더 든든하게 만들며 그 속을 채운다. 둔괘의 시대는 ‘크게 형통하기 위해서’, 가는 바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하려 애쓰며 홀로 독불장군이 되지 말아야 하는 시대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한 극도의 혼란 시기이기 때문이다.

初九 磐桓 利居貞 利建侯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경우는 언제일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작동하고 있지만 한쪽이 고정되어 있거나 한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을때 물체는 빙글빙글 돌게 된다. 초구가 딱 그러한 상황이다. 초구는 내괘의 유일한 양효로 내괘중에는 가장 힘을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괜히 빙글빙글 돌며 힘을 낭비하지 말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내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일을 대신 도맡아 해줄 인물이 나타난다. 그 인물을 기다리고 있으며 힘을 비축하는 편이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한 것이다.

六二 屯如邅如 乘馬班如 匪寇 婚媾 女子 貞 不字 十年 乃字

상전에는 六二之難 乘剛也 十年乃字 反常也라 하였다. 말을 탔다는 것은 곧 강한 것인 초구 위에 육이가 있다는 뜻이다. 이전의 여러 괘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자기 짝과 음양응이 되지 않으면 바로 옆에 있는 효들과 짝을 지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생긴다. 초구와 육이도 바로 옆에 있으니 짝을 이룰 수 있긴 하지만, 초구에게는 육사가 정당한 짝이고 육이의 바른 짝은 구오다. 어지러운 자기장에 뱅뱅 돌던 나침반 바늘이 정지하려면 한쪽 방향으로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야 하듯이, 초구는 빨리 음효를 만나 안정하고 싶은 마음이 급할 것이다. 육이도 내괘와 외괘의 먼 거리를 넘어 구오와 짝을 맺는 것보다는 옆에 있는 초구와 합치는 편이 쉬울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난세다. 가는 길이 험난할 것임은 불보듯 뻔한 것이다. 그래도 육이는 초구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무려 십년이나 걸려서 구오와 맺어지는 것이다.

六三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不如舍 往 吝

사슴 사냥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의 스포츠이다. 逐鹿은 천하의 패권을 가지고 호걸들이 다툼을 하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사슴 사냥을 나가는데 몰이꾼이 없다는 것은 선거에 나가는데 참모와 지지자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사업을 하는데 일을 도와줄 직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혼자만 잘될것이라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자꾸 숲 속으로 들어가면 결국 조난당하게 된다. 군자는 일의 흐름을 읽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뜻을 품고 그 뜻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천시와 인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뜻은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게 된다. 그런데도 내 뜻이 올바르다며 굳이 강행한다면 인색해지는 결과 밖에는 낳지 못한다.

六四 乘馬班如 求婚媾往 吉 无不利

육이가 초구를 탔듯이, 육사는 바로 옆에 있는 구오와 합치는 편이 쉽다. 그러나 육사의 바른 짝은 초구이고, 구오는 역시 육이의 짝이다. 그러니 구오를 바라지 말고 초구에게 가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초구를 안정시키고 그의 일을 도맡아 하는 제후가 되어주어야 한다.

九五 屯其膏 小貞 吉 大貞 凶

상전에는 屯其膏 施未光也, 즉 베품이 빛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흙이 바짝 마른 밭에 물 한 컵을 붓는다고 땅이 촉촉해질리 만무하다. 수십억 빚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백만원을 준다고 해서 빚이 한순간에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현상황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뜻이다. 구오는 임금이고 마땅히 베풀어야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한쪽으로는 비축하며, 한쪽으로는 베풀어야 한다. 온 나라 안에 굶주리는 자가 없게 한다는 것이 왕의 궁극적 책무이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데 그 이상만을 좇아 무리수를 두거나, 정말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것을 모두에게 한입씩 먹이느라 아무도 배불릴 수 없게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니 크게 고집하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上六 乘馬班如 泣血漣如

둔괘의 다른 효들은 음양응이 되는 제 짝이 있지만 육삼과 상육은 그렇지 못하다. 육삼은 몰이꾼도 없이 사슴을 잡으려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은 판국이고, 상육은 아래에 있는 구오를 차지해보려고 하다가 낙마한 상황이다. 패자들끼리 서로 위안이라도 되면 좋을텐데 그마저도 어렵다. 그러니 피눈물이 줄줄 흐를 수밖에 없다.

산화비괘에서는 제 짝이 아니지만 음양응이 맞는 이웃한 효들끼리 합하는 것을 차라리 낫다고 본다. 그러나 수뢰둔괘에서는 반드시 자기 짝을 찾아 합하기를 권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산화비괘는 오히려 제 짝끼리 만났을 때 세상이 어지러우나, 수뢰둔괘는 제 짝끼리 만났을 때에만 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초구가 육사와, 육이가 구오와 만나서 힘을 합칠 때에 육삼과 상육을 제어할 힘이 생긴다. 초구가 육이와 합쳐져버리고, 구오가 육사와 합쳐져버리면 육삼과 상육은 그 느슨한 틈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초구는 유권자이며, 육사는 그들의 대표이다. 육이는 참모이며, 구오는 출마자이다. 육이는 초구의 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으며 그 마음을 달랠 방법을 고심하여 구오에게 전달하고, 육사는 구오를 따르기보다는 초구의 의견을 모아 부딪치고 갈등하고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참모가 유권자들에게만 휘둘려 정책적으로는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을 내밀거나, 유권자의 대표가 구오와 너무 친하여 구오가 잘못된 방향으로 그들을 이끄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니 각자의 올바른 짝을 만나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뭐가 되어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몰이꾼도 없이 축록전에 뛰어든 육삼 같은 사람이 어부지리로 권력을 얻고, 나중엔 모두가 상육처럼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시기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아수라장이며, 이 혼란한 판의 흩어진 힘을 한쪽으로 모으는 것이 이 판의 끝이며 또한 시작이다. 초구와 육사가, 육이와 구오가 버클처럼 결합하여 서로를 끌어당기듯, 출산이 임박한 산모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아이를 낳듯, 이 고통과 비명의 시간은 이로서 끝이 나고 또 새로 시작된다.

한의사협회장 선거가 최근 끝이 났다. 초구의 역할을 맡은 회원들은 이번에도 빙글빙글 돌게 될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짝을 만나 제후를 세워 이롭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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