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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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
  • 승인 2021.02.1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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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면역에 관하여

이제 곧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한다고 한다. 백신이 나올 것이고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의료진이라고 빨리 맞으라고 하면 어쩌지?’였다. 평생 백신이라는 걸 맞고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나도 한참을 자연주의 육아 까페 같은데 들락거렸고,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그 나이 때에 맞추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백신의 유해성과 불필요함에 대해서 자료들을 찾고 읽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온 엄마가 썼고, 그런 시절을 거쳐 온 엄마가 읽어보면 좋을 책이 이 <면역에 관하여>이다.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출간

이 책을 친구가 권해주었을 때, 나는 무심코 이 책이 백신을 맞지 말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권해준 친구에 대한 이미지도 있었을 것이고, 전공 도서가 아닌 작가가 쓴 이런 책은 정부 시책이나 의학적 지침을 따른다기보다 그 반대쪽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심코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다. 여하간 나는 별 근거 없이 이 책이 백신을 맞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논리일 것이라고 생각 했고, 몇 달을 책장에 방치하다가, 얼마전 코로나 19 백신을 맞기 싫다는 생각을 할 때 문득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무의식의 작용이었던 것 같다.

역시 이 책의 저자 율라 비스는 아이를 낳고 백신에 첨가물이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백신을 맞고 자폐증이 발생한다던데, 하는 얘기라든지, 아이의 천명이 아이 침대 매트리스의 어떤 성분 때문에 발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트리스를 바꾼다든지, 하는 엄마였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런 과정을 겪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백신이나 집단면역에 대해서 갖게 되는 불신이나 부정적 생각들에 대해 반박하는 글이었다. 그럴 줄 몰랐는데! 뜻밖이었다!

책의 초반부에서 작가는 집단 면역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2004년의 데이터에 따르면 백신 미접종 아이들은 주로 백인, 대학 교육을 받은, 비교적 나이 많은 어머니와 충분한 소득을 가진 가정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미접종 아이들이 병에 걸리면 쉽게 전파가 되고 유행이 돌아서 불완전 접종 아이들에게 전달된 확률이 높은데, 불완전 접종이란 예방접종을 맞았지만 전부 다 맞진 않은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주로 흑인이고, 나이가 어린 미혼의 어머니를 두었고, 주 경계를 넘어 이사 다니고 가난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여성이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는 것이, 독신인 어머니가 최근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접종을 하지 못한 일부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동참하는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단락이 이 책의 전부 내용도 아니고, 꼭 이 내용이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구절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 지식과 정보를 통해 어떤 선택을 했는데, 그런 지식과 정보와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사실 이것이 집단 면역의 개념인데. 백신 접종을 통해 어떤 질환의 취약 계층이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다. 하지만 그런 질병의 관점에서 취약 계층이 아니라, 단지 좀 더 가난하거나 정보나 지식을 얻을 기회가 없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 이것 또한 공동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는 유려한 문장과 시적인 표현들을 곳곳에서 쓰고 있는데, 어떤 구절에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 예를 들어 순수한 자연이, 합성되고 인공적인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생각 – 들에 대해서도 우아한 문체로 반박하고 있다. 인문학적이고 시적인 자아가 백신과 면역에 대해 자료를 찾고, 조사하고, 조용히 반박하며 <백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이 책은 내용 전달 뿐 아니라 문장이 아름다운 글로도 읽을 만 한 책이었다.

여러 챕터를 거쳐 작가는, 면역이 공동체의 문제라는 얘기로 마무리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는 면역이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고 말한다. 정원의 은유는 우리가 많은 미생물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좋고 나쁘고가 없고, 가시와 장미가 섞여 있으며, 서로에게 환경이 되어주는 정원. 생명은 혼자 따로 존재하지 않고, 결국은 <서로의 환경>이 되어 준다는 것. 이것이 면역에 대한 율라 비스의 관점이고 내가 새롭게 동의하게 된 관점이다. 생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 개인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의 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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