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현대'를 만든 농촌청년 일대기
상태바
[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현대'를 만든 농촌청년 일대기
  • 승인 2021.02.05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효

이현효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이 땅에 태어나서

아산재단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독후감 대회를 한다고 하여, 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어보 았다. 98년 초판이 출간 되었을 때 초독을 했는데, 20년 만에 읽어보니 새롭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정주영 지음, 솔 출간
정주영 지음, 솔 출간

그의 시작도 가난이었다.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죽도록 일해도 배불리 밥 한 번 못 먹는 농부로 인생을 끝내지 않고자 그는 서울로 상경했다. 현대의 태동은 분명 현대건설이었다. 6.25전쟁이 터지고 미8군 발주공사를 독점하던 현대는 정부발주공사에도 뛰어든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 공사를 착공하나 공사기간의 인플레로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해 얻은 신용으로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정부공사를 수주한다. 57년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 59년 인천 제1도크 공사가 그것이다. 건설공사의 쌀인 시멘트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음에 착안, 단양시멘트공장을 세운다. 64년 준공, 가동됨으로써 시멘트 공급부족은 해소되어 60년대 사회간접자본 및 국가 기간사업 건설에 도움이 되었다. 60년대 근대화를 주도한 사업은 분명 건설업이었다. 하지만 정부공사와 군납공사가 벽에 부딪힐 것임을 예감하고 해외진출을 선언하며,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를 짓는다. 그 때의 경험으로 68년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도 착공했다. 연평균 8.5%로 빠르게 성장하던 한국은 팽창된 수송화물로 철도운송 외에 자동차운송이 필연적임을 내다본 정주영은 현대자동차를 세운다. 포항제철에서 생산된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연관사업이 필요했던 정부의 김학렬 부총리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대조선이다. 73년 오일쇼크가 터지며 세계경기가 침체에 빠지며 교역의 위축은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이어진다. 선주들의 잇따른 계약해지로 떠안게 된 유조선들을 ‘우리가 쓰는 기름, 우리가 운송하겠다’는 신념으로 현대상선을 설립한다. 동시에 오일쇼크로 위기에 빠진 현대조선을 구하기 위해 중동으로 가기로 한다. 월남전 특수도 끝나고, 당시 돈이 넘치던 중동이었다. 그리고 따낸 공사가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였다. 픝랜트 및 건설 기자재의 제작과 수송능력을 갖춘 현대조선이 현대건설의 후방기지역할을 해준 덕이었다.

80년대 접어들어 자동차의 전자화가 자동차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것이라고 내다본 정주영은 83년 ‘현대전자’를 설립한다. 한국의 생산능력과 미국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결합, 최단기간내에 일본을 제압하고, 라이프싸이클이 짧은 반도체사업의 특성상 시장성이 큰 소수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성장한 것이 오늘날 SK하이닉스다.

그 외에도 소소하지만 혜안이 돋보이는 사업도 있었다. 쌀 시장개방에 맞서 식량자급은 반드시 지켜야하고, 때문에 최소인원으로 최대의 생산량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제성 있는 간척사업으로 농토를 넓혀 기계화된 농업을 해야 한다고 만든 서산농장. 일본이 훗카이도 위쪽의 섬4개를 소련에서 되찾기 위해 애쓰는 사이, 시베리아를 잡아 놓아야 한다고 보고 한소 국교정상화로 소련의 영향력과 도움을 통해 남북통일의 지름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 것 등은 무릎을 쳤다. 야쿠츠크에 매장된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북한을 경유에 남한으로 들어오게 만들면 소련에서 싼값에 가스를 사 쓰면 된다고 본 것, 미국 일변도 시장으로 장벽에 부딪힐 것이므로 무역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본 점 등은 정치적 수교이면에 경제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책속에 번득이는 혜안과 도전정신은 종교에는 기적이 있어도,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이현효 / 활천경희한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