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3) 일찍 철든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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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3) 일찍 철든 당신을 위해
  • 승인 2021.01.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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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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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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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다’의 어원이 뭘까? 문득 궁금했다. 초록 검색창을 보니 ‘철이 들다’는 말은 ‘철을 안 다’가 어원이었다. ‘철’이란 계절이었다. 농경사회에서 계절을 안다는 건 혼자서 먹고 살 준비가 되었단 말이다. 나는 엉뚱하게도 철이 든다는 말에서 무거운 금속 철(Fe)을 떠올렸다. 철이 든다는 건 ‘무거워진다’ ‘단단해진다’ ‘차가워지다’ ‘감성 보다 이성적으로 행동 한다’ 같은 느낌이 떠올랐다.

어릴 때 ‘점잖다,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좋은 말이고 칭찬인 줄 알았다. 주변의 많은 원장님들도 이런 얘기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이렇게 일찍 철든 우리들이 문득 짠하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가 왜 일찍 철이 들어야 했을까?

철든 아이는 어른을 편하게 해준다.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시킨 대로 행동하고 부모나 선생님의 눈에 어긋난 행동을 가급적 자제한다. 심지어 어른이 좋아할만한 일을 찾아내서 미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철든 아이를 좋아하고 칭찬한다. ‘우리 OO는 참 어른스럽다, 우리 OO는 장남(장녀)이라 듬직하다’ 이런 칭찬을 받은 아이는 그 기대에 더 부합하려고 애쓴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일찍 철이 드는 경우도 있다. 주 양육자인 부모가 철이 들지 않았거나 혹은 생업이 바빠 아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다. 어른을 대신해 동생들에게 부모 역할을 해주거나 스스로 알아서 커야 하는 경우도 일찍 어른이 된다.

봄을 건너 띈 여름은 없다. 봄은 봄다워야 여름이 여름다워진다. 그런데 사람은 봄이 생략된 채 여름 혹은 가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라진 계절은 평생에 걸쳐 <목마름>으로 나타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욕망, 욕구, 갈증>은 일찍 철든 ‘착한 어른’을 괴롭힌다.

그래서 일찍 철든 우리에겐 봄이 필요하다. 철부지 어린 아이 같은 숨은 목소리에 귀기울여야한다. ‘어른인데 이 정도는 이겨내야 하지 않나?’ 라는 꼰대스런 목소리를 무시해야 한다. 어른도 무섭고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정상이다. 짜증나고 화가 나는 것도 정상이다. 오히려 적극 환영이다. 나는 요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터질 때 일어나는 내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아무런 제약 없이 관찰하고 있다. 너무 다양할 때는 적어본다. 한 가지 반응이 반복될 때는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 내 마음은 이런 일을 겪을 때 이렇게 반응 하는구나!’라는 것을 경이롭고 호기심 가득하게 관찰한다.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한다고 착각하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마치 대통령이나 5스타 장군처럼 존중한다. 그래! 무슨 생각이든, 어떤 감정이든 괜찮다. 무엇이라도 괜찮다. 내가 나를 존중한다. 내가 나를 따스하게 바라본다.

어느 스님의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생각도 괜찮습니다. 억지로 누르고 자제하기보다 차라리 어떤 생각도 허용하세요. 그리고 참회하시면 됩니다. 누구라도 마음껏 원망하고 분노하십시오. 그리고 참회하시면 됩니다. 참는 게 더 잘못입니다.” 나는 그 동안 마음 속 목소리를 과하게 필터링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아들들에게는 아빠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표현할 심리적 공간을 주려고 노력중이다. ‘짜증내라, 숙제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아빠하고 생각이 다르면 얘기해라, 아빠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미리 하지 마라, 너 하고 싶은 대로 먼저 해라, 네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 이렇게 아들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모두 표현하게 하고,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때 알려주자고 다짐한다. 이제 10살 7살이 된 두 아들은 일찍 철들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인생의 봄 속에서 충분히 뛰어놀 때 까지.

우리는 누구나 부족했던 봄의 시기가 있다. 충분히 보내지 못한 <봄의 역사>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자기만의 부족한 봄을 찾는 방법은 열정과 사랑을 따라가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욘사마 배용준>을 찾아다니던 중년 일본 여성들처럼 연예인의 팬이 되어도 좋고,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취미생활도 좋다. 어떤 것이라도 찾아내면 다행이다. 내 마음이 저절로 가는 곳, 그곳에 내 인생의 사라진 봄이 있다. 거기서 충분히 뛰놀고 뒹굴다보면 나의 계절은 완성된다. 놀며 사랑하다가 철이 들고 진짜 어른이 된다.

나는 초봄이 참 좋다. 추운 겨울의 끝 즘 문득 느껴지는 봄 공기, 바로 그때가 좋다. ‘봄인가?’ 하는 그 순간! 건너 띈 우리의 봄도 그렇게 불현 듯 찾아오겠지?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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