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43> - 『簡易辟瘟方』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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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43> - 『簡易辟瘟方』③
  • 승인 2020.12.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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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열병전염을 막아주는 歲時風俗

이제 이 책 『간이벽온방(언해)』본문에 기재된 내용을 중점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맨 먼저 역려병후에 이어 역병의 원인과 발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도랑이나 하수구(溝渠)에 쌓인 더러운 오물(穢惡)이 排泄되지 않은 채 薰蒸되어 생기거나, 땅속에 死氣가 울체되어 발생하거나 또는 관리들이 왜곡하고 억눌러(枉抑) 원망(怨讟)하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된 나머지 생긴다고도 하였다.

하수도의 쓰레기야 청소를 하거나 장마에 씻겨 내려갈 수 있겠지만 땅속의 사기와 포악한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어떻게 역병을 일으키는 것일까? 예컨대, 이상기온으로 빙하가 녹고 수만 년 전의 바이러스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니 땅속의 사기가 없다 하지 못할 것이요, 근대 산업문명이 땅과 바다에 버린 산업폐기물과 지구오염 또한 사기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국가경영이나 환경정책이 잘못되는 것 또한 지역사회에서의 집단감염을 방조한다거나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것이니 역병발생의 유인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그 종류로 獄溫, 傷溫, 墓溫, 廟溫, 社溫, 山溫, 海溫, 家溫, 竈溫, 歲溫, 天溫, 地溫 등을 들었으니, 각양각색의 돌림병이 존재했던 것이다.

역병의 발생과 전염도 중요하지만 백신의 존재도 몰랐을 시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돌림병의 전염에 대응하여 어떻게 예방하고자 하였을까 하는 점 또한 궁금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널리 쓰인 예방약은 소합향원이었다. 책에서는 소합향원 4알을 따듯한 물에 풀어먹으라고 하였는데, 성인은 따듯한 술도 좋다고 하였다.

또한 소합향원 1알을 탄자대로 만들어 밀랍을 바른 종이로 싸서 붉은 비단주머니에 넣어 가슴에 매달고 다니면, 일체 사악한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의원이 역병에 걸린 환자의 집에 들어갈 때에도 먼저 문을 활짝 열고 큰 솥에 물 2말을 담아 집안 가운데서 환약 20알을 넣고 달이면, 그 향이 집안 구석구석에 퍼져 병기를 막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 각기 1잔씩 마시게 한 뒤에 의원이 진맥을 하면 서로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전염을 막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석웅황을 갈아 물에 풀어 붓으로 찍어 코에 바르면 병든 사람과 한 곳에 앉아도 전염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온열병에 걸린 집에선 惡氣가 저절로 생겨 코로 맡으면 즉시 숨구멍으로 올라가서, 모든 혈관에 퍼져 서로 옮아 전염하게 된다. 만일 급히 약을 구하기 어렵거든 香油를 코끝에 바르고 종이심지로 코침을 놓아 재채기하는 것이 좋다했으니 호흡기로 감염되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집안에 역병에 감염된 사람이 생기거든 먼저 병자의 의복을 물에 빨아 시루에 넣고 찌면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지만 환자의 몸으로부터 병인을 막기 위해 의복을 세탁하고 멸균하는 방법을 인지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도소주나 호두살귀원이 예방 겸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오랫동안 세시풍속으로 알려져 왔던 귀밝이술[耳明酒]이 사실은 한 해 동안 역병으로부터 감염을 막고자 기원하는 의미에서 도소주를 나눠마시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정월대보름 부럼을 깨물어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던 固齒풍속도 호두가 병기를 물리친다[辟瘟]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동지팥죽이나 동치미국, 단오절에 창포물에 머리감는 풍속까지도 벽역에서 비롯된 풍습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단오날에는 집안에 쓰지 않고 남아 있던 雜藥을 모두 꺼내다 불에 태워 疫氣를 막으라 했으니 참으로 합리적인 조처가 아닌가.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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