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그래도 봐야한다면 이유는 ‘소피아 로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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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그래도 봐야한다면 이유는 ‘소피아 로렌’
  • 승인 2020.11.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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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자기 앞의 생

특이하지만 익숙한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에밀 아자르의 유명한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유명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비밀리에 발표해 콩쿠르 문학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드라마틱한 일화를 제외하더라도 원작은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특별한 줄거리가 있기보다는 모모라는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외계층의 이야기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유대감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 한 편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 이 원작의 가장 대단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감독: 에도아르도 폰티출연: 소피아 로렌, 이브라히마 게예, 레나토 카펜티에리
감독: 에도아르도 폰티
출연: 소피아 로렌, 이브라히마 게예, 레나토 카펜티에리

이 영화는 프랑스어 소설을 이탈리아 감독이 미국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사실 필자에게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영화는 원작만 못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대체로 평범하다는 선입견이 있음을 고백한다. 물론 ‘라이프 오브 파이’나 ‘아이리시맨’을 비롯해 예외는 많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 ‘자기 앞의 생’은 그런 선입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를 꼽자면 그것은 단연 ‘로자 아줌마’ 역을 맡은 소피아 로렌이다.

소피아 로렌은 이 영화의 감독인 에도아르도 폰티의 모친이자 이탈리아에서는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의 배우다. 그래서인지 포스터만 해도 영화는 모모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소피아 로렌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가 로자 아줌마 역할에 어울리는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의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아주 많고, 매우 뚱뚱하고, 못생겼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로자 아줌마가 못생겼고 뚱뚱하다는 묘사가 반복된다. 그러나 소피아 로렌은 이 시각적인 문제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영화 시작 30분 즈음에 등장하는 빨래터에서의 공허한 눈빛은 로자 아줌마가 아닐 수 없었다. 실상 이 리메이크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소피아 로렌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대목이었다.

문제는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이 영화가 너무나 평범하고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소피아 로렌이라는 배우를 내세웠을 뿐, 모모라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자기 앞의 생’은 모모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모모라는 인물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모모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얌전한 소년은 아니다. 그럼에도 원작에서 독자들이 모모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모모가 지속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외로워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섬세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세상의 전부’라고 하면서도 그 강아지에게 ‘더 멋진 삶을 주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소년을 어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모모의 그런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단편적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로자 아줌마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 약간 되바라진 소년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관계성은 어리둥절한 구석이 있다. 사실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흔히 우리나라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다정한 사이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원작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매몰차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 세월 함께 해오면서 쌓아온 ‘가족’이기에 가지고 있는 유대감이 존재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함께 지낸 것이 두 달이 채 안되고, 첫 만남도 좋지를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서로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애틋해진다. 계기랄 것도 별로 없어서 관객들은 저 두 사람이 왜 애틋한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실수다.

그런 애매한 감정선을 가지고 진행하다보니 결말도 싱거웠다. 원작의 결말은 충격적이면서도 왜 모모가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이해가 돼서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반면 영화는 결말부가 충격적이다보니 이를 순화시킨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물 탄 카페라떼가 되어버렸다.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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