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1) Saf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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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1) Safe Room
  • 승인 2020.11.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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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1.

동네 의원에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의원이든 한의원이든 다녀오면 한의사인 나에게 그 후일담을 얘기하고 싶은가보다. “얼마 전에 다녀온 곳인데, 원장이 그렇게 친절해. 젊고 친절해서 설명도 30분씩이나 해주고, 간호사한테 물어보는 것도 원장실에서 바로 나와서 자기가 답을 해주더라고. 주차권 얘기였는데도 원장이 그렇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대.”라며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며 말을 덧붙인다. “그렇게 친절한데 환자가 많이 없어. 새로 개업했는가 싶어서 간호사한테 물어보니 1년이 넘었다네. 이상하지? 그렇게 친절한데 왜 환자가 없을까?”

2.

이번엔 친구의 얘기다. 정말 좋은 공부가 있다며, 혹은 너무너무 좋은 종교가 있다며 같이 하자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 공부(종교)가 너무 좋아서 권하는 거라며, 직접 해보니 너무 좋아서 권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이 공부(종교)를 접하고 나서 마음도 편안해지고, 하는 일도 잘 되고 매사에 의욕적으로 변했다며 썩 친하지 않은 사이임에도 자주 연락하고 심지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불편함을 토로한다.

3.

마지막 얘기다. 후배 한명이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몇 명 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런데 집 앞까지 꽃으로 길을 만드는 남자도 있고, 매일 매일 커피와 케익을 배달시켜 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아침마다 카톡을 보내고 전화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고민이었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니 닮은 점이 있다. 혹시 벌써 눈치 채셨는가? 상대와의 사이에 편안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어에서 가장 적당한 단어를 떠올려보니 ‘room’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물건을 둘 공간, 혹은 남겨두는 공간’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인데 요즘 이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우리와 모든 타인과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room)이 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일방적으로 매워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 공간이 적절히 확보되면 편안하고, 다음이 기다려지지만 이곳이 일방적으로 채워지면, 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는 그만큼 혹은 더 많이 뒤로 물러서게 된다.

주식도 주가가 더 올라갈 room이 필요하다. 그래서 CEO들은 회사의 미래비전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어느 정도 상승한 주가는 시장의 적절한 조정을 통해 가격이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한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의 힘’이 줄어들지 않도록 회사와 시장은 끊임없이 대응한다. 반대로 지금이 가장 꼭대기(頂點)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 아무리 좋은 회사고 이익이 많이 나는 회사라도 주가는 떨어진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되는 부동산 가격이 연일 상승하는 이유도 바로 ‘기대의 힘’ 때문이다. 첫 에피소드의 친절한 원장도 매일 처음처럼 친절하기 어렵고 모든 직원이 친절하기도 어렵다. 두 번째 내원부터는 감동하기보다 실망하기 더 쉽다. 사람들은 현재 가장 좋은 것 보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기대감에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환대(Hospitality)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특히 앞에 ‘편안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더 좋다. ‘편안한 환대’라는 말만 들어도 참 좋다.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환대’는 무엇일까. ‘불편한 환대’를 먼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손님을 위해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계속 많이 먹으라고 권하며,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자는 적극적 환대는 나에게 불편한 환대다.

내가 생각하는 환대란 <편안함>이다. 어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환대(Hospitality)라는 단어 속에 병원(Hospital)이 들어있는 것처럼, 마치 환자를 대하듯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불안하지 않고 안정감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환대가 아닐까 싶다. 나와 상대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며 함께 그곳을 채워나가는 느낌, 그래서 긴 시간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마음에 찝찝함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 그것이 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무조건적 배려도 아니고, 내 생각대로만 관계를 끌어가는 것도 아닌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때?”처럼 격이 없는 교류가 되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Safe Room이 필요하다. 이 공간에서 나와 상대 모두가 두려움 없이 편히 얘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음’을 기대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너는 나를 숨 쉬게 해” 라고 했던 어느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편안한 환대로 가득한 Safe Room에서 우리가 함께 숨 쉴 수 있길.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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