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0)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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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0)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
  • 승인 2020.10.23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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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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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나의 생각에 대한 관찰을 시작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특히 나의 생각이란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그 생각은 나에게 이로운 가 해로운 가? 앞으로는 생각과 어떻게 공존하며 사는 게 바람직할까?

생각의 시작 지점을 관찰했다. 생각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고 불현듯 떠올랐다. 마치 물속에서 기포가 훅 떠오르듯 그렇게. 멈추고 싶다고 단호하게 멈추어지지도 않았다. 한 번 일어난 생각은 꽤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고 멈추고자 노력하면 그 생각은 더 힘을 냈다. 모든 생각에는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이 제거되어야 생각은 멈추었다. 생각은 대체로 감정을 일으켰고 생각과 결합된 감정은 일상적인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보다는 걱정, 염려 등의 생각이 더 많았고 걱정이 심해지면 불안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생각은 한 번 길이 나면 점점 더 큰 길로 변했다. 걱정이 습관이 되면 일상의 많은 상황에서 최악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며, 그 과정에서 불안함을 만들곤 했다. 결국 어떤 생각이든 원인이 분명히 존재했고, 비슷한 생각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면 길이 나고 습관이 되어 다른 상황에서도 평소에 길이 난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은 명백히 득보다 실이 컸다. 약간의 이득에 비해 상당히 많은 손실을 일으켰다.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나 미래로 가버리고 만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생각이 미치다보면 결국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된다. 생각은 에너지 적 측면에서 분명 낭비였다.

꼭 필요한 순간, 깊이 있는 생각을 통해 통찰에 이르려면 일상 속 소모적인 생각은 줄여야 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부정적 생각은 현실화되지도 않고 대부분 걱정 수준에서 끝이 났으니까. 그럼에도 미리 생각, 걱정, 대비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신체 에너지는 소모되었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다보니 스트레스성 질환에도 많이 시달렸다. 결국 생각을 줄이고 줄여서 현재에 오롯이 머무는 것(存在)이 행복한 인생을 위해 필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년 말 즈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때부터 일상의 몇 가지를 바꾸기 시작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서 벗어나 10시에 자고 새벽 6시30분에 집에서 나와 2시간 정도 걷는다. 걷기에만 집중하면서 일체의 생각은 자제한다. 진료실에 오면 15분정도의 스트레칭을 통해 굳어있는 근육과 인대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5분 동안 나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명상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잡념이 제어되는 것은 아니지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물속의 기포가 떠오르듯 슬쩍 보기만 하고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생각이 많은 날은 많은 대로 내버려 둔다. 잡념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 하며 하던 명상을 끝까지 마친다. 명상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는 문장을 쓰고 읽는다. 그렇게 아침이 시작된다.

많던 생각이 꽤 줄었다. 불필요한 생각들로 소모적이었던 뇌가 ‘친환경 Eco-mode’로 조금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과정에 느낀 것들을 다이어리 첫 면에 적어두고 마음에 새겨보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어떤 순간에도 생각을 멈추어라 ●지혜는 관찰에서 나온다 ●어떤 것도 예측하지 마라. 오로지 대응할 뿐이다 ●피할 수 없는 일에 영향 받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Let It Be and Just do It ●빛을 쫓아다니지 말고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자(自發星)! 정도가 지금 현재 적혀 있는 문구들이다.

어느 순간 마음에서 떠오른 것들이다. 염(念)의 한자구성처럼 미래나 과거가 아닌 지금(今)에 마음을(心)두기 위한 노력이다.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보긴 하지만 완전히 몸에 베이기에는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읽고 다짐한다.

민족의학신문에 처음 칼럼을 기고한 날짜가 2011년 10월 27일이다. 10여년의 시간 동안 글을 쓰며 ‘나는 무엇이 변화 하였는가?’ 반문해 보았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이번 글이다. 생각을 줄였다. 특히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생각을 줄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대응하기로 마음을 바꿔 나갔다. 아끼고 절약한 모든 에너지는 현재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나의 오늘, 우리 네 식구의 오늘, 현재 나와 함께 있는 동료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 옆을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 우연히 흘러온 이곳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배울 것들에 마음을 둔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유난스런 걱정꺼리가 없다면 행복한 하루다. 고요하고 고마운 하루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분명한 것은 첫 칼럼이 나온 2011년 10월 27일보다 이글을 쓰고 있는 2020년 10월13일 지금, 나는 조금 더 가벼운 삶을 살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결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00호에 이르기까지 지면을 내어준 민족의학신문과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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