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90년대생, 부모도 스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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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90년대생, 부모도 스펙이다
  • 승인 2020.08.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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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세습 중산층 사회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께는 효도하며 숱한 직장에서 모셔가고 싶어 한다는 내 또래사람이 있다. 일명 “엄마 친구 아들”. 그분의 어머님은 우리 어머니 말고도 수많은 벗이 있으시다. 그분은 어릴 때부터 김치만 있어도 밥을 뚝딱 다 먹더니 이젠 예쁜 손주도 안겨드린 모양이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거슬리는 분이다. 그러나 엄마 친구 아들의 비결은 엄마 친구 혹은 엄마 친구 남편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90년대생에서 두드러진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90년대생이 겪는 불평등이 86세대로부터 어떻게 세습되었는지 제시한다.

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출간

이 책의 주인공 90년대생은 고도성장의 한계를 맞이한 시대에 성인이 되었다. 이 시대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고용시장의 양극화이다. 고용시장의 한쪽 끝에는 관리직, 전문직, 기술직이 있다. 이런 고숙련 직군은 IT 기술 발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꾸준히 증가했다. 다른 쪽 끝에는 저숙련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경비직, 요식업, 청소업, 대인 돌봄 서비스 등이 있다. 이러한 직군은 요구 교육 수준과 급여가 높지 않으나 기계로 대체가 쉽지 않아 취업자가 증가하였다. 이 사이에는 특별한 기술은 필요로 하지 않는 범용사무직이나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숙련 직군이 위치하지만 기술발전의 영향으로 수요가 많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고소득과 안정된 지위가 보장된 ‘번듯한 일자리’는 2017년을 기준으로 11.4% 정도의 청년이 차지할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90년대생 여성의 대졸 비율이다. 과거보다 여성의 대졸비율이 높아졌고, ‘번듯한 일자리’의 경계에 해당하는 직군을 일부 가져가게 되었다. 번듯한 일자리의 최상층과 선배들은 여전히 남성 비율이 좀 더 높기에 ‘번듯한 일자리’ 지망생 여성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번듯한 일자리’ 지망생 남성은 자신들의 준거집단인 3, 4년 남자 선배들보다 더 경쟁해야 하기에 과거보다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물론 ‘번듯한 일자리’를 노리기에는 삶 자체가 만만치 않은 다른 90년대생들한테는 사회 자체가 불공정하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 10%와 그렇지 않은 90%를 나누는 가장 큰 변수는 이들의 부모이다. 고도성장시대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가진 인재는 기존의 인력을 재교육하는 거로는 충원할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80년대 학번을 가진 60년대생, 즉 86세대는 그 이전 세대나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던 동년배들보다 많은 기회를 차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IMF 금융위기에서 주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50년대생의 불운도 비껴가는 행운까지 겹친 이들은 경제력과 지식,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까지 갖춘 집단이 되었다.

60년대생 중 경제력과 지식,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를 가진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교육에 과감히 투자할 뿐 아니라 성실성이나 감정 제어능력, 커뮤니케이션 같은 비인지적 능력도 길러주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입시정보와 활동 기회까지 경영해준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90년대생이 느끼는 불공정 적폐의 스테레오타입은 ‘50대 초중반의 대기업 부장 또는 임원.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교육 투자를 해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체 인턴 기회를 알아봐 주는 등 사실상 경쟁자 적 관계. 불공정한 게임의 핵심 플레이어’라고 한다. 즉 경쟁상대가 엄마 친구의 아들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고 친구의 엄마 아빠인 꼴이다.

이 책은 스스로가 10% 이내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계속 고뇌하게 한다. 밀려날까 두렵고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싶어질까 두렵다. 분노하는 타인들도 두렵다.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고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를 안전하게 해주고 싶은 정상적이고 동물적인 본능과 급격한 사회의 변화가 만난 현상을 바라볼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덧. 자료가 매우 풍부하고 그래프로 제시해준 건 좋았는데 그래프를 구성하는 선들의 차이가 잘 안 보였다. 노안이 온 줄 알고 두려웠다. 재판하면 제발 좀 다시 그려 주면 좋겠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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