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의료인 인력 수급 계획, 지역의 의료 공공성 확대에 정말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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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의료인 인력 수급 계획, 지역의 의료 공공성 확대에 정말 도움이 될까?
  • 승인 2020.08.05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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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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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정부가 2022년부터 10년간 4000명의 의사를 추가 배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후, 의사협회는 8월 12일 정오까지 이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8월 14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현재 의과대학의 신입생 정원은 연간 3,058명으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3458명으로 400명의 정원을 늘리고 2032년부터는 다시 3058명으로 정원을 되돌리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렇게 늘어난 400명의 정원은 해당 지역에서 300명, 중증 외상 및 역학조사관 등의 특수 분야에 50명, 의과학 등 기초분야에 50명을 배치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합니다.

이 발표를 듣고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연 의무 배치의 의미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강제로 근무지를 할당하고 전공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부품이 아니고 사기와 열정, 피로도 등 근로의욕에 따라 수행하는 작업의 퍼포먼스는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일 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의무로 데려다 놓은 사람과 스스로 온 사람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그냥 일하라고 해서 낮은 임금 체계에서 강제로 일하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일하고 업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사람이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예상입니다. 개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숫자가 많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임상분야는 그렇다 치더라도 추가 배출되는 의학 및 약학의 기초 연구자 50명이 어떻게 운영될 지는 꽤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필수적인 분야가 있고 그 분야를 육성하려면 그만큼의 보상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상식적인 해법입니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지방의 의사가 부족한 것입니다. 서울에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기준은 OECD 국가의 인구당 의사수를 기준으로 합니다.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감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로의 과도한 집중 현상 때문입니다.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 되면서 지방과의 격차가 더 커지다 보니 지방에선 결국 필수 인력을 돈이라도 더 줘서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수가가 낮으니 생산성에는 한계가 있고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선 그 정도 수가에서 줄 수 있는 인건비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임금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의 병원들이 계속되는 구인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의료수가를 OECD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주거나 아니면 지방에 대한 지원을 더 늘릴 계획은 없어 보입니다.

지방에 의사를 더 많이 공급하면 해당 지역에 한해서 당장 의사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의료는 대단히 고도화되고 전문화된 전문영역일 뿐 아니라 수많은 전문가들의 협업에 의해 이뤄집니다. 의사를 늘려도 그에 상응하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기사, 약학전문가, 행정인력 등에 이르기까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만큼 지원이 되어야 효율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정책으로 의사를 더 배출해서 지방에서 10년간 의무 복무를 시킨다고 한들 일시적으로 지방 병원들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군복무를 대체해 시골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 인력의 감소를 조금 완화시키는 정도의 효과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줄어드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방에서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지만,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한 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의사를 늘릴 것이 아니라 의사를 지원하는 인력까지 모두 공급되는 공공의료기관이 도입되어야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의 의료공급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례적일 정도로 공공의료기관 보다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는 의료 공급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였으면 민간의료기관과의 비용 차이로 공공의료기관의 수요가 유지 되고 경쟁관계에 있었어야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으로 인해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해도 비용 부담이 낮아서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가인상률, 인건비 등에 비해 수가인상율이 낮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의료기관의 수익성을 위해 비급여 비용을 높여 비용부담이 커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하겠다는 문재인 케어가 도입 중이고, 건강보험 재정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던 초기의 상황과 달리 수가 인상율은 건강보험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매번 최저임금 인상율과 물가인상율에 밑도는 수준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이 충분하다는 주장은 애초에 물가인상율이나 최저임금 상승폭에 밑도는 수가 인상을 전제로 했던 계획이었던 겁니다. 현재 같은 저수가 정책이 지속되면 지방 병의원의 경쟁력은 더 빠르게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지방의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대 정원을 늘려 지역에 한정된 의사를 더 공급하는 것 보다 공공의료기관이 더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싶을만한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최근 10년 사이 오히려 지방의 공공의료기관은 문을 닫았습니다. 공공의료기관은 지속적인 재정이 투입이 되어야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대개 수익성이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인력을 늘려 이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발상은 애초에 의사의 임금 수준을 군의관, 공중보건의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해당 인력들의 근무형태가 행정기관에서 배정하는 것인지 자유로운 근무와 고용 형태를 지향할 것인지, 그리고 임금 수준이나 근무 형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지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발표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당장 고등학교 2학년의 입시부터 적용되는 사안인 만큼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여 혼란을 줄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작용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논의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 면허 취득 후, 지방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만 5년입니다. 수련의 과정이 10년 의무복무에 포함이 되는지 불포함 되는지, 같은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근무지를 이동할 자유가 있는지 아니면 공중보건의처럼 아예 배치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남자들의 경우 군 복무 문제 역시 고려되어야 할 숙제입니다. 군복무를 기간에 산입하지 않을 경우 의무복무는 사실 13년이나 되는 기간이 됩니다. 의무복무를 포기하면 교육비용 환수 외에도 의사면허가 즉시 취소되고 해당 지역의 근무 이력이 없으면 재취득이 불가능하게 하는 등의 명확한 조치를 먼저 정해 놓지 않는다면 결국 서울에서 의사를 할 수 있는 면허를 지방 의사 전형으로 교육을 받은 후 돈을 주고 사는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의무복무 기간 동안 병원과의 협의 하에 지방에서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근무하고 서울에서 나머지 요일은 쉬면서 시간만 보내는 경우나 지방에서 개원을 하고 실제로 진료를 거의 하지 않는 꼼수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들입니다. 다양한 부분에서의 정리된 결론이 없다면 그저 의사로 10년 정도 일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해당 전형에 응시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부작용을 고려하면 10년 후에 어디서나 의료행위가 가능한 제도 보다는, 아예 지방 의대에서 일정 정원에 대해 해당 지역에서만 의료행위가 가능한 한지의사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구 감소, 고령화의 진행으로 지방의 인구가 더 줄어들고, 인프라는 더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고령화는 지방에서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의료수요는 지방에서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의료 인프라는 지방에서 더 빠르게 사라질 것입니다. 한지의사나 지방의 행정단위별 의료 수가의 추가 보장이나 지원금 등의 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지방 의료의 위축은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특히 이런 논의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의사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서 진행되는 데는 상당한 유감이 듭니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을 때 역학조사, 검체 채취 등 한의사가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지원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섰던 한의사들이 있었음에도 의료인이 충분하니 한의사는 필요 없다고 했던 정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인력이 부족하긴 했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추가로 늘리겠다고 하는 의대정원 역시 해당 정원을 모두 공중보건의사로 언제든지 정부가 임의로 배치를 이동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코로나 감염증과 상당히 무관한 정책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정책은 지방의 의료 인프라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일차의료라는 구상 때문에 시행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지방 의료 인프라는 의사의 배출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의료 자원의 재배치 문제입니다. 지방의 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고 기존 의사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 대신 강제성을 띤 의무복무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확실히 예측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10년의 의무복무 인력이 지역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의 경험과 전문적인 인력의 지원이 필요한 전문적인 의료는 결국 서울로 가야 하는 문제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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