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原者에 대하여(15)-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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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原者에 대하여(15)-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④
  • 김선모
  • 승인 2020.07.2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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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의 유주주체(流注主體)

우리는 지난시간 폐출어소상과 종폐계횡출액하(從肺系橫出腋下)를 통해 《황제내경》의 저자가 경맥(經脈)의 맥중(脈中)/맥외(脈外) 복곽(複廓)구조와 오장(五臟)/외각(外殼) 2중(重)구조를 염두에 두고 경맥을 서술하였음을 공부하였다.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의 ‘폐(肺)’가 유주(流注)하는 공간(空間)을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空間)을 유주(流注)하는 주인공인 ‘폐(肺)’는 무엇인가?

 

2. 유주주체(流注主體)에 대한 구체적 해석의 부재

지난 시간 언급하였듯이 폐출어소상의 폐가 오장(五臟)의 폐(肺)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가정하에 제가들은 ‘폐맥기(肺脈氣)’ 정도로 해석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楊: 井者는 古者에 以泉源出水之處로 爲井也라 …… 人之血氣는 出於四支 故로 脈出處以爲井也라...

 

물론 장경악선생은 ‘폐경맥기(肺經脈氣)’라고 했다가 ‘방광경(膀胱經)’이라 하기도 한다.

 

景岳: 少商穴은 乃肺經脈氣所出爲井也니 其氣屬木이라 此下凡五藏之井은 皆屬陰木故로 六十四難에 謂之陰井木也라하니라

景岳: 此는 膀胱經所出爲井也라 以下凡六府之井은 皆屬陽金故로 六十四難에 謂之陽井金也라하니라

 

즉, 일관되지는 않지만 ‘경맥(經脈)이 나오는 곳’처럼 공간(空間) 자체로 해석하거나 ‘맥’이나 ‘경맥기’와 같이 그 공간의 유주주체(流注主體)로 해석하는 두가지 경우가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유주주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제가들의 논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이미 공부하였듯이 오수혈의 출(出)은 ‘출류주행입’의 시간적 운행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경맥이 나오는 곳’과 같은 ‘공간적 해석’은 제외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공간의 유주주체’를 맥기(脈氣)라 해석한 근거는 필자의 개인적인 추정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제가들은 경맥이라는 입체적인 공간과 그 길을 유행출입하는 유주주체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공간과 유주주체(流注主體)를 구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한의학적 개념의 확장성에 기댄 안일함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의 ‘폐(肺)’는 무엇인지 한번 되돌아 보자.

 

肺는 出於少商(9)하니 少商者는 手大指端內側也(10)니 爲井木(11)[12]이요 溜於魚際(12)[13]하니 魚際者는 手魚也니 爲滎2)이요 注於太淵(13)하니 太淵(14)은 魚後一寸(15)陷者中也니 爲腧요 行於經渠하니 經渠는 寸口中也(16) 動而不居[14]니 爲經이요 入於尺澤하니 尺澤은 肘中之動脈也니 爲合이요 手太陰經也라

【直譯】

肺는 少商에서 出하는데, 少商은 手大指 末端 內側으로써 井木이 되고, 魚際로 溜하는데, 魚際는 손바닥의 魚腹으로써 滎이 되며, 太淵으로 注하는데, 太淵은 魚後 一寸의 함몰된 가운데로써 腧가 되고, 經渠로 行하는데, 經渠는 寸口의 한가운데로써 搏動하고 멈추지 않으니 經이 되며, 尺澤으로 入하는데, 尺澤은 肘關節의 動脈으로써 合이 됩니다. (이상이) 手太陰經입니다.

《본수.영2.영추연구집성》

 

한의학적 개념은 보통 ‘확장성’을 내포한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의 ‘폐’는 ‘lung’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폐’와 관련된 기능계 즉 ‘폐계(肺系)’로 확장하여 이해하는 경우다. 이러한 한의학적 확장성은 그 내용의 풍부함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여기 저기 뭉뚱그려 갖다 붙여 쓰더라도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통용될 수 있다는 과도한 안일함을 심어줄 위험성 또한 매우 크다. 어쩌면 안일함이라기보다 무책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바로 위와 같은 해석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역대제가들 역시 확장성에 기댄 두리뭉실하고 불명확한 해석을 해왔기 때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경맥을 흐르는 주체에 대한 다른 편에서의 제가들의 해석은 어떠할까?

 

4. 《경맥.영10》과 《본수. 영02》의 유주방향 차이

[4]肺手太陰之脈 起于中焦 下絡大腸 還循胃口 上膈屬肺 從肺系 橫出腋下 下循臑內 行少陰心主之前 下肘中 循臂內上骨下廉 入寸口 上魚 循魚際 出大指之端 其支者 從腕後 直出次指內廉 出其端

【直譯】

肺手太陰經脈은 中脘에서 起始하여 下行하여 大腸에 絡하고 다시 되돌아와 胃口를 循行하고 橫膈膜을 上行하여 肺에 屬하고 氣管으로부터 옆으로 走行하여 겨드랑이 아래로 나와 上膊 內側을 따라 下行하고 手少陰心經과 手厥陰心包經의 앞을 走行하여 팔꿈치 안으로 下行하고 下膊의 內側, 橈骨의 下廉을 循行하여 寸關尺의 搏動부위로 들어가고, 魚를 上行하여 魚際를 循行하고 엄지손가락의 끝으로 나온다. 그 支脈은 손목 뒤로부터 갈라져 나와 똑바로 집게손가락의 內廉을 지나 집게손가락 끝으로 나온다.

《경맥.영10.영추연구집성》

 

이는 《경맥.영10》의 수태음지맥에 대한 기록이다. 제가들은 폐수태음지맥(肺手太陰之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馬: 言肺者 則手太陰經之脈也

景岳: 十二經脈所屬肺는 爲手太陰經也라

張: 曰肺曰脈者는 乃有形之藏府經脈이요

 

이처럼 경맥의 유주주체에 대해 누구는 맥(脈)이라하고 누구는 경(經)이라하고 누구는 장부경맥(藏府經脈)이라 하였다. 일관되지도 않고 제가마다 통일된 표현을 쓰지도 않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본수. 영02》에서는 맥기나 폐맥기처럼 유주주체인 ‘기(氣)’라는 개념을 덧붙였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제가들이 대단한 해석의 차이를 두고 구분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뉘앙스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로 유주방향에 있다. 《경맥.영10》의 수태음폐경 유주노선과 《본수. 영02》의 오수혈 유주방향은 정반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경맥.영10》의 수태음폐경의 유주노선이 「종흉주수(從胸走手)」인 반면 《본수. 영02》의 오수혈의 운동방향은 「종수향심(從手向心)」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경맥.영10》 수족음경과 수족양경의 유주방향은 ‘향심성(向心性)’이냐 ‘향외성(向外性)’이냐 구분이 있는 반면 《본수. 영02》의 오수혈의 유주방향은 수족음양경(手足陰陽經)을 불문하고 모두 ‘향심성(向心性)’인 것이다. 유주방향이 정반대라는 말은 그 유주주체 즉, 《경맥.영10》의 유주주체와 오수혈의 유주주체가 별개의 기(氣)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인 것이다. 역대제가들 해석의 약간의 뉘앙스 차이도 이에서 발원한 것이 아닐까?

 

5. 유주방향(流注方向) 차이에 대한 해석(解釋) 부재(不在)

『靈樞』는 『鍼經』이라고도 하는데, 經穴, 經絡 및 鍼灸에 關한 內容을 主로 다루고 있으며, 특히 「本輸篇」은 『靈樞』 第二篇으로 臟腑精氣의 基礎가 되는 經脈의 氣와 그것이 肘膝關節以下에서 “出入流注하는 部位”에 대해 論述하고, 各 經絡의 井,滎,腧,經,合 各各의 “特定 穴位의 名稱과 具體的 位置를” 提示하고 있다. ...중략...

즉, 本輸는 臟腑經氣가 轉輸流注되는 基本部位와 兪穴을 가리키는 것으로 本篇에서는 井・滎・兪・經・合의 “五輸穴의 特徵的 部位 名稱, 구체적인 位置와 治療機能을” 論述하였다.

《본수.영추02.영추연구집성.영추연구집성간행위원회》

 

이는 《영추연구집성》의 논문저자가 제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론이다. 보시다시피 《본수. 영02》의 오수혈의 운행(運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며 주로 정,형,수,경,합(井,滎,腧,經,合) 오수혈(五輸穴)의 혈위와 명칭 구체적 위치에 치중하고 있음을 평가하고 있다.

제가들을 옹호하고 싶은 필자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유주주체(流注主體)에 대한 구분이 있었다고 확신하기에는 아무런 근거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다.

《경맥.영10》의 경맥유주와 전혀 다른 오수혈의 유주방향에 대해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과연 제가들에게 경맥의 공간적 개념과 유주주체에 대한 일말의 개념이라도 있었을까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한의학의 확장성에 기대어 다른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으로 남겨놓는 동시에 비판의 여지 또한 최대한으로 줄인 하나마나한 해석을 달았을 뿐인 것이다.

 

6. 근후(謹厚)

사실 동양의학사 수천년동안 어떠한 제가도 그 유주주체(流注主體)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 다투는 이도 없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한다 근거를 제시하는 이도 없었기 때문에 경맥 유주주체에 대한 제가들의 해석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일견 의미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여파가 후학들의 경맥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재고 되어야한다.

물론 《황제내경》을 의학의 종주(宗主)로 삼고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피땀흘려 해석한 역대제가들의 공(功)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자만심에 심취하여 당연히 궁구(窮究)하여야할 의리(醫理)를 가볍게 여기어 무시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꿰뚫은 듯 단언(斷言)함으로 인해 경전을 읽는 후학들의 눈을 흐리게 하였다면 작금의 현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김선모 / 반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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