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인터뷰] “한의학 고유 이론,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도록 과학적 연구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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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인터뷰] “한의학 고유 이론,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도록 과학적 연구하고 싶어”
  • 승인 2020.07.09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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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이사람: 해외에서 연구하는 한의사①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서 일하는 김명호 박사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한의대 졸업 후 전문의 과정까지 밟고 카이스트에 진학, 그 후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명호 한의사. 그는 간 연구 분야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기로 결심하고 미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김 박사에게 지금의 길을 택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동국한의대 05학번으로 입학해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에서 한방내과 전공의 과정,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현재는 미국 보스턴에서 하버드 의대 부속 병원인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GH)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개의학의 관점에서 지방간, 간섬유화, 바이러스성 간염 등의 간질환을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COVID-19과 관련된 연구도 하고 있다.

 

▶한의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자라오면서 나의 의료적인 부분에 한의학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매년 한, 두 번씩 한의원에서 진찰을 받아 한약을 복용했었고,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지거나 발목을 접질리거나 했을 때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곤 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이미 한의학의 전일론적 관점에 익숙해졌나 보다. 내가 취미로 체스를 즐겨하는데(한의학과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 어렸을 때 만들어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아이디가check8x8이다. 가로 8칸, 세로 8칸으로 이루어진 체스판 전체를 잘 살피자는 의미다.

한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한의학 공부는 재미있었다. 동양 철학적인 가치관이 개인적인 성향에도 잘 맞았고, 기존에 배워왔던 생명과학과는 결이 다른 학문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동의보감 중심의 후세방, 사상체질, 사암침 등의 이론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전공의 과정에서도 한방내과를 선택하게 됐다.

 

▶한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도 밟았다. 진학한 계기는 무엇이고 어떤 것을 공부했나.

원래는 전공의 과정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남자 한의대생의 일반적인 진학절차처럼 학부 졸업 후에 공보의로 병역을 마치고, 부원장으로 경험을 쌓은 후에 한의원을 개원하는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공의 과정에 지원하는 시기가 되어서, 그때까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선택지를 따져보게 됐다. 바로 로컬로 나가는 경우와 비교하면 전공의 과정에서 다양한 환자군을 접하고, 특히 중증의 입원환자를 담당하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은 한방-양방 협진이 잘 이루어지고, 의무기록 전산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의학적 진료를 배울 뿐만 아니라 양의학적 진료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전공의 과정 동안 석사과정으로 주증황련의 위십이지장염 억제 효능에 대한 실험 연구를 병행했다. 실험 연구를 맛보기만 한 정도라서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본격적인 기초 연구를 해보고 싶어졌다.

전공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알게 됐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동안에는 간질환 연구실 소속으로 알코올성/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에서 간 내 면역세포들의 역할과 그 작용 기전에 대한 연구를 했다. 간 분야에서 기초 연구 경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의과학 연구에 대한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현재 보스턴에서 Post-doc를 하고 있다. 떠난 계기와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박사과정이 끝나갈 무렵, 졸업 후에 한방병원으로 돌아가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거나 한의학연구원과 같은 연구기관에서 연구에 전념하는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기초 연구 분야에서 경력을 더 쌓고 싶어졌다. 박사과정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제야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의계로 돌아가게 될 터이니, 간 연구 분야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 외국에 3~4년 정도 살면서 경력 외적으로도 견문을 넓힐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졸업 후 약 1년간 박사후연구원 모집 공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를 몇 차례 겪고 나서야, MGH에서 일하게 됐다.

내가 박사후연구원으로서 하는 주된 일은 세포 실험, 동물 실험, 환자 유래 샘플 분석이다. 실험 연구를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논문들을 찾아보고 연구 계획서를 쓰기도 한다. 임상(연구)에서 얻은 새로운 발견을 기초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기초 과학이 임상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중개의학 연구를 하고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이 간섬유화 및 간암을 억제한다는 후향적 임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그 작용 기전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큰 문제가 되고있는 SARS-CoV-2가 간내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COVID-19 환자에서 Interferon의 조절 장애를 연구하기 위해 환자 유래 샘플을 분석하고 있다.

 

▶그곳에서 동료들은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 경험에 한정해서, 주변 동료들은 한의학을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전통 의학들 중 하나로 인식한다. 전통 의학에서 사용되는 약재들의 구체적인 성분과 작용 기전이 잘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침술이나 추나요법에 대해서는 흥미있어 한다. MGH 통증 관리 센터에서도 침술을 활용하고 있고, 미국에서 침술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료 중에 가나에서 약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 의대를 다니며 나와 함께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가나 출신인 샘 오취리가 한국에서 유명인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 했다). 가나에도 전통 의학이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의료인이 전통 의학을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동료는 약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전통 의학에서 사용되는 약재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는 입학 후에 관심이 있는 연구실에서의 생활을 직접 겪어보고, 본인에게 맞는 연구실을 선택하도록 하는 절차가 있다. 석사과정 연구 분야였던 비계내과와 관련하여 장내미생물에 대한 관심으로 면역학 연구실과, 대사 질환에 대한 관심으로 간질환 연구실에서 로테이션을 했다. 지도교수와의 관계, 연구실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긴 했지만, 마침 간질환 연구실에서 인삼의 성분 중 하나인 Ginsenoside F2의 작용 기전과 간질환에 대한 보호 효능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그 곳에서 간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에서 일부 양의사들이 한약을 먹으면 간손상이 온다고하는데 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달라.

한의사에 의해 처방되는 한약은 간독성을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는 신뢰할만한 논문들이 나와있다. 세계적으로는 herbal medicin들이 한국만큼 잘 관리되지 않기 때문인지 간독성을 나타내는 herbal medicine들이 존재하기에 그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된다. 또한 한국에서도 한의사에 의해 안전성이 검증된 한약재가 아니라, 식품용 한약재가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간손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안전한 한약조차 폄훼받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요즘은 양약과 건강기능식품 등을 많이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예상치 못한 약물 상호작용으로 간손상이 유발될 수도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하겠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약과 양약의 병용 투여 중에 경미한 간손상이 발생했을 때, 한약 투여는 유지하면서 간독성이 보고된 몇몇 양약의 투여를 중지하면 호전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면, 한약 구성을 바꿔 해결 된 경우도 있다. 아직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혈액검사를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

 

▶카이스트 및 보스턴에서 습득한 업무지식으로 향후 한의학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가.

한의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서 임상 연구를 통해 한의학적 치료의 유효성을 입증하고 싶다. 동시에 한약에 존재하는 매우 다양한 성분들 중 주요한 활성 성분과 그 작용 기전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최근 중국에서 COVID-19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 치료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보다 질 높은 임상 시험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복합 성분인 한약이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효과, 항염증 효과를 나타낸다 하더라도 활성 성분의 실체와 작용 기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최근의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네트워크 약리학이나 AI 신약개발 플랫폼 등을 활용한다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의학 고유의 이론이 새로운 의학적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 일주기 리듬(circardian rhythm)이 신경계 질환, 대사 질환 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 약물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시간 생물학이 주목받고 있다. 일주기 리듬에서 한걸음 나아가 사기조신(四氣調神)이나 한열(寒熱), 허실보사 (虛實補寫) 등의 한의학적 이론이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선후배들에게 제언 또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알음알음이나 SNS를 통해 보면 각자의 방식대로 한의학의 발전에 일조하는 분들이 많다. 로컬에서 치료를 잘 하는 분들도 많고, 학계에서 한의학을 현대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많다. 학계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분들도 많고 스타트업, 유튜버, 해외진출 등으로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는 분들도 많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들이 각개전투에 그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한의학의 발전에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진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시고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기 마련이라 도전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도움과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부모님, 은사님과 같은 인생 선배님들에게 ‘인생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한때 나는 그 인생의 불확실성에 불안해 했지만, 이제는 도전이 가져다 줄 생각지도 못한 미래를 생각하면 설렌다. 도전하시는 분들이 잘 성장하여 자리잡으면 그 또한 한의학의 발전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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