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첩약 없는 첩약 건보, 이름(名)​부터 바로 잡아야
상태바
[제준태 시평] 첩약 없는 첩약 건보, 이름(名)​부터 바로 잡아야
  • 제준태
  • 승인 2020.07.02 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우여곡절 끝에 한약의 건강보험 급여화에 대한 시범사업안에 대한 투표는 찬성 63.2%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우선 결정된 부분을 따르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부분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애초에 첩약이라는 말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첩약이란 용어는 애초에 '첩'이라는 단위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첩약을 국어사전에는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지어서 약봉지에 싼 약'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약재를 그대로 두면 초제, 그것을 1회분씩 소분하여 약지로 싸서 묶은 단위를 1첩이라고 하고, 그 과정을 분첩, 그렇게 분첩한 약을 첩약이라고 불렀습니다. 대개 1990년대 초까지는 첩약의 형태로 한약을 처방했습니다. 한의원에서 약지로 초제를 일일이 싸서 첩약으로 만들어 주면 그 첩약을 집으로 가져 가 하루에 2첩을 아침에 한 번, 점심 때 한 번 각각 달여서 먹고 저녁에는 그 2첩을 한 데 모아 재탕하여 먹었습니다. 처방한 첩약을 빠르고 단단하게 포장하는 것이 기술이었습니다. 한 제에 20첩이었기 때문에 환자 한 명이 약을 지으면 20번의 약재를 일일이 저울로 무게를 달아야 했고 또 약지로 한 첩씩 싸야 했습니다. 이 시대에 활약한 혁신적인 상품이 가정용 전기 약탕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약관이나 옹기, 심지어 냄비로도 약을 달였습니다. 1990년대에 탕약용 자동 포장기가 보급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달이던 한약의 탕전과정을 한의원에서 수행하고 1회분씩 팩에 포장된 탕약의 형태로 환자가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혁신적이었죠. 환자들의 편의도 크게 증진되었습니다. 약지로 첩약을 싸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첩약이 탕약에 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도 탕약을 첩약이라고 잘 못 부르고 있는 명칭 오류가 시작된 이유는 90년대 자동 포장기 이전에 용어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처방한 한약은 첩약이라고 인식했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원의 원내 탕전이 보편화 된 시점의 세대들이 교육 받을 때는 첩약은 약지에 싼 약으로 전탕을 한 탕약은 탕약, 탕액, 전탕액, 전제 등의 용어로 불러야 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용어가 아닌 남들이 쓰는 용어라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보면 스스로가 갖고 있는 정의조차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약의 전문가가 한약의 제형에 대한 명칭의 정의조차 무시하고 엉뚱한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전문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늦었다 싶어도 용어를 명확하게 사용하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자는 '엉뚱한 술잔을 가져와서는 다리 달린 큰 술잔이라고 한다. 이게 다리 달린 큰 술잔이라니(觚不觚 觚哉 觚哉)'라고 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리를 판다(羊頭狗肉)거나 하면 이름(名)과 실제(實)가 맞지 않을 뿐입니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라고 했습니다. 정치는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지만 권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너무 쉽게 휘두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말은 분명해야 하며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의 말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제가 부합해야만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치인이 스스로가 한 말이 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사기를 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협회가 정책이나 회원들에게 하는 말 역시 무엇보다 명확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중에 말을 바꾸거나 스스로 이 정도면 잘 했다고 평가해 버리면 황당하게 됩니다. 즉 처음 말할 때부터 분명한 정의(definition)를 해야 정의(justice)를 논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보험 정책에서 용어를 엉터리로 쓰고 있습니다. 첩약 건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첩약이 없습니다. 애초에 탕전료를 따지고 있는 이상 이것은 첩약을 위주로 한 디자인 자체가 아닙니다. 탕약을 직접 끓일 때는 애초에 첩약을 만들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습니다. 전체 달일 약을 한 번에 넣고 달이지 누가 한 첩씩 분첩을 했다가 다시 그걸 풀어서 달이겠습니까. 첩약이 없는 첩약 건보. 정말 잘못된 이름입니다. 탕약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약의 건강보험 급여화라고 하거나 탕전약을 기준으로 하는 명확한 말이 있어야 합니다. 첩약이라고 쓰고 탕약을 이야기 하는 것은 첩약과 탕약이 포함관계에 있지 않은 용어이므로 다른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틀린 것입니다. 한약의 전문가는 한의사인데 이런 기본적인 용어조차 잘못 쓰고 있으니 남들도 그저 따라서 죄다 탕약을 첩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의료보험이 건강보험으로 통합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첩약의보라고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실수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나마 의보라는 단어 대신 최근에는 건강보험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을 보면 첩약이라고 잘못 부르는 것 역시도 수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업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에 첩약 건보라는 잘못된 명칭을 반드시 고쳐 주시길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