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21> - 『古方選註』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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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21> - 『古方選註』①
  • 승인 2020.06.27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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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색동옷 차려 입은 다문화 의서

근간에 조우한 선본 1종을 만나보기로 한다. 겉표지에는 ‘고본선주’라고 굵은 글씨로 書籤이 적혀 있고 그 아래 ‘全’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선 한 책안에 모두 갖춰져 있다는 뜻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책등 쪽 모서리 하단에는 ‘共四’라고 책 수가 밝혀져 있다. 앞뒤 표기가 서로 부합하지 않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 『고방선주』
◇ 『고방선주』

또 표지에는 책안에 들어있는 주요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주요 목차를 모두 기재해 놓았는데, 마치 篇目을 정리해 놓듯이 위아래로 빼곡히 적혀 있다. 다만 본문에선 별도 목차가 없이 곧바로 시작하며, 각 편목별로 방제 목차가 수록되어 다소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한 책에 담겨있는 전체 내용을 단번에 개괄해 놓은 셈인데, 수록된 내용의 개요를 살피면 아래와 같다.

첫 편은 痘疹科(附幼科 14方)로부터 시작하여, 안과(附耳鼻 8방), 咽喉科(內附口齒 6방), 折傷科(4방), 金簇科(2방), 祝由科(9法), 符禁科(9법)로 이어지며, 맨 마지막에는 본초편이 실려 있다. 이 본초편에는 ‘上中下三品藥’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마 서제도 생소하고 수록 내용도 다소 이채롭기에 대체 어떤 책인지 절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표지를 들추고 보니 권수에 『絳雪園古方選註』란 정식 서명이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古吳 王子接晉三註’라고 적혀 있고 아울러 그와 나란히 ‘葉桂天士校’라고 편저자와 교정자가 함께 밝혀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종이가 아주 얇고 背面이 비춰 보일 정도로 매끈한 것을 보니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죽지가 분명해 보인다. 판형이나 지질, 4침안을 쓴 장책방법 등이 모두 청대 목판본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권차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上口에 ‘고방선주’란 약서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上魚尾만 인쇄된 판심에는 각각 편제가 나뉘어져 들어가 있다. 그 아래에 다시 장차가 편별로 별도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어 검색하기에 그리 용이한 편이 아니다.

다만 각 편마다 소장자가 제목 옆에 朱點을 찍어놓고 상단 여백에 다시 소제목을 朱書로 적어놓았기에, 그나마 독자가 열람하기에 낫다. 소장자가 스스로 자신의 책에 일종의 편리기능을 추가해 놓은 셈이다. 그러니 이 책에는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주인의 손길에 의해 각양각색의 옷과 빛깔이 입혀진 셈이 아니겠는가.

첫머리에는 3가지 종류의 크고 작은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으며, 권미에도 원형의 아름다운 인장이 찍혀 있다. 안타깝게도 古籒文으로 새겨진 인문이 흐려서 읽어내기는 용이하지 않지만 그 가운데 하나에 ‘姜氏〇〇家藏’이란 글씨가 일부 판독되어 아마도 조선조에 중국으로부터 입수하여 가전된 傳本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그간 경희한의대 학장과 한방병원장을 지낸 김병운 교수님이 소장해 오다가 후학들의 학술연구를 위해 제공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래된 책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古記가 秘藏된 서책왕국으로 알려져 송이나 거란, 왜국으로부터 잃어버린 책을 찾는 사신이 자주 왕래할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에서 가져간『鍼經』을 토대로 북송의 校正醫書局에서 오래 전에 이미 중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황제내경영추』를 복원해낸 것은 국제학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에서도 국초부터 통치 사실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본보기를 남기고자 애썼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오늘날 한국을 세계기록유산에 관한 문화부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웃한 나라에서 들여온 책이라도 선조의 노력과 애정이 깃들여져있다면 당연히 우리에게 상속된 문화유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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