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식물에게 전하는 조심스러운 애정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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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식물에게 전하는 조심스러운 애정고백
  • 안세영
  • 승인 2020.06.1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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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식물의 책

큰 불은 잡았건만 잔불 정리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요? 코로나19바이러스의 지역사회감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절이 하수상할 때의 야외나들이는 무증상 감염 위험이 있는 3밀(밀폐·밀집·밀접) 환경에서의 활동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위축되기 마련이지요. 저 또한 초봄 무렵부터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로 했습니다. 출퇴근길에서 흔히 마주하면서도 그동안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던 꽃들을 완상(玩賞)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식물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한다는 것! ㅠ.ㅜ

이소영 지음, 책읽는수요일 출간
이소영 지음, 책읽는수요일 출간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 식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식물의 책』은 생전 처음 겪는 코로나 사태 극복책의 일환으로 구독했습니다. 원행(遠行)이 쉽지 않으니 아파트 단지 곳곳을 장식한 조경 식물, 베란다 화분에서 키우는 다육 식물의 생태를 알아보는 재미, 이른바 ‘소확행’을 추구한 게지요. 한의사인지라 이왕이면 약용식물, 우리말(?!)로 본초(本草)만을 다룬 책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동료 선후배가 상재(上梓)하기는 쉽지 않겠죠.

저자는 스스로를 ‘식물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그림으로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풀꽃’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으세요? 해서, 이 책은 식물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의 내밀한 애정 고백인 셈입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사랑하면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도시에서 쉽게 접하는 여러 식물들을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본 뒤 그들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 놓은 것입니다.

책은 민들레·쑥·제비꽃 등의 풀, 소나무·은행나무·동백나무 등의 나무, 딸기·포도·토마토 등의 과채 등 모두 42종의 도시 식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학명’으로 전 세계에서 통용하는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밝힌 뒤, 정성 가득한 세밀화와 함께 그 식물 관련 이야기를 덧붙이는 형식입니다. 가령, “감·사과·배 등은 꽃의 씨방이 자란 참열매이지만, 딸기는 꽃 턱이 부풀며 자란 것이다”,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 하는 논쟁이 법원 판결까지 이어진 적이 있다”, “대개 잎이 두 개면 소나무이고 다섯 개면 잣나무이다” 등등의 이야기가 자세한 그림과 함께 실려 있는 것이지요. 특히 저자가 문자 그대로 식물을 자세히 그리는 화가라서 각 식물의 뿌리·줄기·잎·꽃·씨앗 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해 놓았는데, 사진보다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더군요.

존경하는 선배님 한 분이 언젠가 “우리 한의사들은 자신만의 멋들어진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을 부수적으로 누릴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약통 속 여러 한약재들을 한 번씩 꺼내볼 때면, 형형색색의 꽃들이 머릿속 정원에서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잡화엄식(雜花嚴飾), 곧 화엄(華嚴)의 세계가 황홀하게 펼쳐진다는 말씀이었지요.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약장을 비치하는 한의원이 점점 줄어든다던데, 저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약장이 있으나 없으나 상상하는 건 매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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