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원격의료 찬성'이란 말 이전에 협회장 발언의 무게를 알아야
상태바
[제준태 시평] '원격의료 찬성'이란 말 이전에 협회장 발언의 무게를 알아야
  • 승인 2020.06.03 0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준태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제 준 태
산돌한의원 원장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 2020514일 정부의 원격의료 허용에 찬성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 발언이 있기 전까지 한의사협회의 입장은 2010, 2014, 2016년 모두 반대 의견을 명확히 표명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환자 쏠림으로 인한 지역 의료의 약화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우려가 크기 때문을 명분으로 한 바 있습니다. 기존의 의견과 다른 의견이라면 그 전에 어느 정도 의견수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최 협회장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반대가 러다이트 운동과 다를 게 없다거나 의사들의 기득권 유지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주장의 논리적 성립 여부를 떠나 마지막에 단서로 붙인 '이사회를 통과한 협회 입장이 아니'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협회장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습니다. 협회장의 발언은 한의사 전체를 대표하여 하는 말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확실한 답을 할 상황이 아닌 이상 유보적 입장을 취하거나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적절합니다. 게다가 돌출적인 찬성 발언은 대부분 의약단체 협회장들이 굳이 반대 의견을 낸 것이 아니라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거나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답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게다가 그 발언의 말미에 자신의 발언이 협회의 입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발언 행태입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협회장은 그 자체로 협회를 대표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이미 공식적인 발언을 내놓았다면 그 발언을 뒤집을 기회에 대한 말을 구성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협회장 스스로 발언의 신뢰와 대표성을 약화시키고, 절차적으로도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발언을 성급하게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답변할 이유가 없다면 하지 않고 따로 기자회견을 하든 인터뷰 형태로 발표를 하든 했어도 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의견표명을 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는 모든 대표들이 지켜야 할 룰입니다. 회원들이 눈 앞에 없고 혼자 있다고 하더라도 회원들과 항상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언행과 태도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회원들을 대표하는 자리기 때문입니다.

무엇 보다 찬성의 이유로 든 원격의료가 정말 의사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는 정책인가 하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기득권이 해체된다는 말에는 한의사가 권한을 어느 정도 가질 것이라는 기대가 느껴지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그 어떤 것도 한 것이 없을 뿐더러 정부도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원격의료로 지방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은 분명하지만 대형 병원이 그 이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현재 단계에서 원격의료를 한다고 해서 한의사나 한방의료기관이 더 중요해질 이유는 찾기 어렵습니다. 단지 더 큰 규모를 갖고 있고, 더 높은 인지도를 가진 병원이나 특화된 진료를 제공하는 곳이 더 많은 환자와 서비스 제공 기회를 가지게 될 뿐입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지방 소멸은 현실 단계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지방소멸의 위기에 놓인 곳들의 의료접근성은 점점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원격의료는 그런 배경에서 지방의 보건의료 수준 유지를 위해 연구가 필요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의료접근성을 해소하는 결과 이상으로 지역의 보건의료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기술로 이용되어야 합니다. 지역 의료에서의 보건의료 자원의 유지와 보건의료 서비스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의 보건의료 인력과 병의원이 공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공병원, 보건의료원, 공중보건의사 같은 공적 자원 투입 외에도 개인병의원 등이 필요합니다. 원격의료로 더 많은 환자를 대형병원이 관리하게 되고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수익을 유지하기 어려우면 개인병의원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시작하게 되고 공공의료 자원만으로는 지역의 의료 환경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역설적으로 지방의 보건의료 여건 악화에 대한 대응인 원격의료가 오히려 지방의 보건의료 자체를 소멸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갖는 희망만큼이나 신중하게 논의가 필요한 단계에서 어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안도 없습니다. 논의 자체를 막기 위해 반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직은 찬성이나 반대를 말하기엔 너무 이른 때입니다.

현 상황에서 한의사 회원들의 혼란만 부추기는 상황이 된 협회장의 발언에 대해 협회의 의견을 명확히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협회장이 스스로 찬성이라고 말하면서도 협회 구성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고 한 발언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협회장이 했던 찬성이 한의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인지, 아니면 협회장만의 생각일 뿐이었고 협회는 반대가 공식적인 입장인지. 그도 아니라면 협회는 판단 유보인데 한 개인의 돌출적 발언이었을 뿐인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말은 믿음직해야 합니다(言必信 行必果). 그 말을 한 사람이 협회를 대표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더욱 그래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당 발언에 대한 정리와 입장 표명이 있길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