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公廉에 대한 三木榮의 오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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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公廉에 대한 三木榮의 오류 연구
  •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 승인 2020.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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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 황도연(58)

Ⅰ. 서론

玄公廉은 일제강점기의 전문 출판업자로서 구한말 역사학자인 玄采의 아들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그의 삶은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玄公廉의 生年은 연구자에 따라 1872년과 1874년, 1876년 이렇게 3가지 견해로 나뉘는데,1) 惠庵이 작고한 1884년에는 겨우 9살이나 13살이었다. 그렇다면 惠庵의 제자 중 1884년 당시 9살이나 13살인 제자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헌에서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거나 <證脈方藥合編>을 編述했다는 등, 오류가 만연해 있다.

이번 호에서는 玄公廉에 대한 이러한 오류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Ⅱ. 본론

1. 三木榮

그림 1. <朝鮮醫學史及疾病史>의 玄公廉

 

三木榮의 <朝鮮醫學史及疾病史> 1948년 초판에는 처음으로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고 나오는데,2) “玄公廉, 字は渼隱, 酉齋と號す, 度淵の弟子, 高宗古終古鐘姑に<方藥合編>を增訂した.(<增訂方藥合編>)”라고 되어 있다. 三木榮이 <朝鮮醫學史及疾病史>에서 언급한 <增訂方藥合編>은 大正 15(1926년)에 大山書林과 大昌書院이 공동으로 發行及發賣所로 되어 있는 책인데(그림 1), 이 책은 標題에 玄公廉 編輯이라 되어 있고, 판권지에는 著作兼發行者를 玄公廉이라 하였다(그림 2).3) 따라서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는 三木榮 논술의 근거가 되는 책은 <增訂方藥合編>인 것으로 보인다.

2. 오류의 확대재생산

三木榮 이후 “玄公廉 惠庵 제자설”을 또 주장한 책은 1977년 남산당편집국에서 간행한 <對譯證脈方藥合編>으로 玄公廉 小傳에 “惠庵 黃道淵先生의 首弟子로 字를 渼隱, 號를 酉齋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4) 三木榮과 똑같은 논술이면서 출전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玄公廉 小傳에는 이어서 “……계속 이의 增補를 꾀하여 西紀一八八七(高宗 二十四-丁亥)年에는) 證脈·方藥合編을 發刊하였다”라고 하여 <證脈方藥合編>의 發刊者로 기록하고 있다. 즉, 三木榮이 玄公廉을 惠庵의 弟子라고 한데서 한발 더 나아가 남산당편집국은 惠庵의 首弟子로 둔갑시켰고, <方藥合編>의 “增訂”을 <證脈方藥合編>의 “發刊”으로 오류를 확대시켰다.

 

Ⅲ. 고찰

三木榮은 <朝鮮醫學史及疾病史>에서 渼隱은 玄公廉의 字이고 酉齋는 그의 號라고 밝혔지만,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增訂方藥合編>과 “玄公廉…….度淵の弟子”는 무슨 관계가 있고, 三木榮은 어떻게 해서 저런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證脈方藥合編>은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나 <重訂方藥合編>과 달리 새로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가 增補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三木榮은 “增訂”方藥合編과 “新增”證脈方藥合編을 혼동한 것으로 보이고, <增訂方藥合編> 標題에 玄公廉 編輯이라고 나오므로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는 논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즉, 三木榮의 <朝鮮醫學史及疾病史> 원고는 1948년에 완성되었으나, 초판 간행은 1955년에서야 이뤄졌는데,5) 三木榮은 1926년의 <增訂方藥合編>을 보고서 <證脈方藥合編>의 “新增”이란 용어를 玄公廉의 “編輯”이란 용어와 동일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三木榮은 “高宗廿四年丁亥に<方藥合編>を增訂した”이라 하여 고종 24년 丁亥에 <方藥合編>을 增訂하였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丁亥는 <證脈方藥合編>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 “方藥書…….丁亥玄月受業渼隱生謹識”의 丁亥를 말하는 것으로 三木榮은 <證脈方藥合編>을 참고하고 <朝鮮醫學史及疾病史>를 저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三木榮의 이러한 오류는 玄公廉에 대한 고증이 없이 1977년 남산당편집국에서 <朝鮮醫學史及疾病史>과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 재생산되었다. 최근의 연구자들도 이러한 오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는데, 오재근6)은 “현공렴(玄公廉)이 신증증맥방약합편(新增證脈方藥合編)을 편찬하면서”라고 하였고, 이진철7)은 “1887年(高宗24年, 丁亥)『證脈方藥合編』玄公廉 編述”이라고 하였다. 특히 김남일8)은 “「중정방약합편重訂方藥合編」(현공렴玄公廉, 1885),「증맥방약합편證脈方藥合編」(현공렴玄公廉, 1887)”라고 하여 <重訂方藥合編>까지도 玄公廉이 편술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남산당편집국의 玄公廉 小傳에 ”…….黃泌秀 儒醫의 指示를 받아 重訂하여 西紀一八八五(高宗 二十二-乙酉)年 九月에 重訂·方藥合編을 板刊하였고…….”라고 기록된 것을 그대로 믿고 기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는 오류는 이후 玄公廉이 <證脈方藥合編>을 編述했다거나 <重訂方藥合編>도 玄公廉이 편술하였다는 등 오류가 재생산을 넘어 확대되고 말았는데, 마치 말의 전달과정에서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류의 확대 재생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학계에서 考證이 부재한 풍토 때문으로 보인다.

요컨대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는 오류는 三木榮의 <朝鮮醫學史及疾病史>부터 시작되었고 후대 연구자들이 이에 대한 확인이나 고증이 없이 오류를 퍼 나르게 된 것으로, 잘못된 기록을 叱正하지 않으면 誤謬가 定說이 될 수 있으므로 향후 철저한 고증을 기초로 惠庵과 관련된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림 2. <增訂方藥合編> 판권지
그림 3. <增訂方藥合編> 표제

 

Ⅳ. 결론

본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는 잘못된 기록은 三木榮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 三木榮은 1926년의 <增訂方藥合編>을 보고서 玄公廉이 惠庵의 제자라고 오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이러한 오류는 玄公廉이 <證脈方藥合編>을 編述했다는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참고문헌>

1. 전명, 애국계몽기 중역본 정치소설의 한국적 변용 양상:현공렴의 <회텬긔담(回天綺談)>과 <경국미담(經國美談)>을 중심으로, 2012, 인하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 三木榮, 朝鮮醫學史及疾病史, 大阪, 自家出版(再版), 1963:282.

3. 玄公廉 編輯, 增訂方藥合編, 大山書林, 大昌書院, 大正 15(1926).

4. 남산당편집국, 對譯證脈方藥合編, 남산당, 1977:5-1.

5. 김호, 醫史學者 三木榮의 생애와 朝鮮醫學史及疾病史, 의사학, 2005:14(2):101-122.

6. 오재근, 황도연(黃度淵)의 의학과 그의 또 다른 이름 황도순(黃道淳), 大韓韓醫學原典學會誌, 2017:30(3):11-40.

7. 이진철, 의종손익을 통해 살펴본 황도연의 의학사상 연구, 2017,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8. 김남일,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유의열전, 도서출판 들녘, 2011:240.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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