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6)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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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6) - 윤창열
  • 승인 2004.09.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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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皇天上帝께 天祭를 올리던 天壇 □

⑥ 祈年殿

우리는 단폐교를 지나 祈年殿으로 향해서 걸었다. 기년전의 입구의 문을 祈年門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물건을 파는 상점도 있고 더위와 피로에 지친 관람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번시로(燔柴爐)와 예갱(예坑), 요로(燎爐)등을 살펴보았다.

번시로는 皇天上帝에게 바친 또는 바칠 祭品을 태우기 위하여 설치한 것인데 녹색의 유리벽돌로 구성되어있다. 동, 서, 남쪽의 계단은 모두 9층이고 북쪽은 땔나무를 집어넣는 통로가 있었는데 꼭대기에는 한 마리의 흰 송아지를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이 번시로는 燔柴禮를 행하는 장소로 이 禮는 天祭에만 있는 특별한 禮라고 한다. 上帝는 높은 하늘에 거처하시므로 사람들이 上帝에게 바친 비단과 희생물 등을 번시로 안에 넣고 태우면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이 때 天神은 인간들이 받친 예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갱은 예감(예坎)이라고도 하며 번시로의 동쪽에 있는 구멍인데 제물로 쓴 희생물의 피, 털, 내장 등을 묻는 곳이라 한다. 또 燎爐는 쇠로 만든 발이 여섯 개 달린 구멍이 뻥뻥 뚫린 화로인데 요로의 개수는 皇天上帝이외의 配位와 縱位의 숫자에 따라서 결정되며 이들의 제단에 올린 제사용품을 불태우는 곳이라 한다.

이제 기년전을 살펴보자.
3단으로 되어 있는 漢白王, 기단 위에 세워진 기년전은 중국관광의 상징물로서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 쐐기를 써서 서로를 연결했다고 한다. 明나라 초기에는 大祀殿이라고 했고 明·嘉靖帝 때는 大享殿이라 했으며 淸·乾隆帝 때에 지금의 모습으로 改建하고 祈年殿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늘을 상징하여 올린 청유리 기와가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년전의 내부는 금박으로 장식한 4개의 기둥(通天柱 또는 龍井柱라고 한다)이 제일 안쪽에 있는데 春夏秋冬의 사계절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둥 하나의 높이는 18.5m, 직경은 1.2m나 된다. 中間(中環)에 있는 12개의 赤色기둥은 1년 12달을 상징하고 제일 밖(外環)의 처마기둥도 12개인데 하루 12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中環, 外環의 24개 기둥은 24절기를 상징하고 전체의 28개 기둥은 28宿를 상징하며 여기에 기둥 꼭대기 8개의 雷公柱를 합한 36은 36天강(강)星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배열법은 말없고 형체없는 하늘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하늘은 無形이지만 28宿로 體를 삼아 공간의 구조를 형성하고 24절기로 用을 삼아 시간의 질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년전의 천정 中心에는 龍과 鳳이 함께 어우러진 채색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고 역동적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와 마주하는 기년전 내부의 地面에도 원형대리석이 깔려 있는데 인공을 加하지 않은 자연의 文樣이 龍鳳의 모습을 띄고 있어 龍鳳石이라고 부른다. 이 원형의 대리석은 皇帝가 祈穀禮를 행할 때 황제가 절을 하는 장소로서 속칭 龍鳳呈祥石이라 한다고 한다. 龍과 鳳은 天地造化의 二大主體인 水火를 상징하고 日月을 상징한다. 龍은 水神으로 鱗蟲之長이고 鳳은 火鳥로써 羽蟲之長이다. 龍과 鳳은 吉祥의 상징으로서 天子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는 代表文樣이라 할 수 있다.

⑦ 東西配殿과 祭天 과정

祈年殿의 좌우에도 東西配殿이 있다. 본래 日, 月, 星, 辰과 雲, 雨, 風, 雷의 諸神의 위패를 모시던 장소였는데 지금의 東配殿은 祭天樂舞館이고 西配殿은 祭天禮儀館으로 祭天樂舞館에는 祭天행사때 연주하는 각종 악기를 전시하고 있고 아울러 祈穀祭天때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던 장면을 묘사해 놓은 것이 있다. 祭天禮儀館에는 관람객들을 위해서 祭天의식의 전과정을 전시해 놓고 있다. 몇가지 전시내용을 살펴보니 天祭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祭祀遺址만 하더라도 이미 30여곳이 넘는다고 한다. 淸代의 祭天儀式을 요약해 놓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⑴ 제사가 있기 전 3개월 전부터 예부의 당상관과 태상시의 관원들은 도성밖에 가서 제사에 쓸 소, 송아지 기타의 희생품 등을 골라온다.
⑵ 제사전 40일 樂舞生, 執事生들은 천단 神樂署의 凝禧殿에 가서 연습을 시작한다.
⑶ 제사전 5일 황제의 命을 받은 親王이 관련 人員들을 거느리고 犧牲所에 가서 제사에 쓸 희생물들을 살펴본다.
⑷ 제사 전 3일 장막을 치고 젯상을 설치한다. 이때 皇帝도 齋戒를 시작한다. 제사에 참여하는 百官들도 3일전부터 각자의 衙門에서 齋戒를 한다.
⑸ 제사전 2일 황제는 太和殿에서 祝文을 검토하고 玉, 帛, 香등의 祭品을 살핀다. 그런뒤 이를 天壇의 神庫에 보내 보관케 한다.
⑹ 제사전 1일 犧牲所의 나졸들이 희생물을 鬼門關의 통로를 통해 宰牲亭으로 몰고 가서 도살한다.
⑺ 제사전 1일 巳時 황제가 자금성에서 나와 천단의 齋宮으로 간다.
⑻ 夜半子時에 담당인원이 祭祀燈에 불을 붙인다. 神廚內의 祭需를 壇上으로 보낸다. 迎神亭(位牌를 옮길때 쓰는 도구)도 皇穹宇 양쪽에 진열하여 제사 지낼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⑼ 日出前七刻(새벽 4시 15분정도) 皇帝는 祭服으로 갈아입고 祭壇으로 나아간다. 황제가 재궁을 나가면 齋宮에서는 鐘을 울려서 제사에 참여하는 百官, 執事人員들이 각자 자리에 나아가 그 직책을 수행하게 하고 제사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 祭臺의 燎工은 재궁의 종소리를 들으면 燔柴爐에 불을 점화한다. 禮部의 堂上官은 皇天上帝의 神版과 先代皇帝의 位牌를 迎神亭 안에 놓고 담당자는 이 神亭을 원丘臺(祈穀大典때는 祈年殿)로 보내 봉안한다. 이 동안 황제는 具服臺에서 손을 씻고 기다린다.

祭天儀式은 아홉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燔柴迎帝神으로 贊引官이 燔柴迎帝神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燎工은 송아지 한 마리를 통째로 번시로 입구에 놓는다. 上帝께 공경스럽게 올리는 희생의 털과 피를 예감속에 묻는다. 唱樂官이 “樂秦始平之章”을 큰소리로 외친다. 73명으로 구성된 中和韶樂 樂隊가 음악의 연주를 시작하고 종과 북을 일제히 울린다. 이때 황제는 上帝의 位 앞에 나아가 香을 사르고 그런 뒤에 차례대로 조상들의 神位에 나아가 禮를 行한다.

둘째, 奠獻玉帛이다. 황제는 둥근 푸른 玉을 皇天上帝에게 올린다. 이것은 祭天儀式의 중요한 상징의 하나이다. 이어서 郊祀制帛을 皇天上帝에게 올리고 차례대로 奉先制帛을 선대황제에게 올린다.

셋째, 進俎(도마 조)이다. 有司가 송아지를 祭器안에 넣어서 신위의 앞에 갖다 놓는다. 요湯官(요탕관)이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송아지의 몸에 붓는다.

넷째, 初獻敬酒이다. 司爵官이 술을 황제에게 건내면 황제는 술을 황천상제에게 올린다. 이와 동시에 舞生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데 淸나라는 武로써 천하를 얻었다 하여 初獻을 올릴 때 武功舞를 먼저 추었다. 황제가 올리는 술이 제상에 놓여지면 음악과 춤을 그친다. 讀祝官이 祝文을 읽고 나면 음악이 연주되고 춤을 추며 황제는 선대황제에게 술을 올린다.

다섯째, 亞獻이다. 황제는 둘째 잔을 上帝에게 올리고 이어서 조상에게도 올린다. 아헌 時 64명의 文舞生이 손에 羽약(우약, 古代 文舞를 출 때 오른 손에 잡던 꿩의 깃털과 왼 손에 잡던 피리)을 잡고 文德舞를 춘다.

여섯째, 終獻敬酒인데 아헌과 동일하다.

일곱째, 撤饌이다. 有司들이 祭需를 거두어 燔柴爐 및 燎爐로 가져가 태울 준비를 한다.

여덟째, 送帝神이다. 有司가 玉, 帛, 祝文등을 거두어 번시로로 보낸다.

아홉째, 望燎이다. 황제가 望燎位에 가서 태우는 과정을 살펴본다. 上帝나 조상들에게 올린 모든 祭需들을 태우는 것은 경건함과 정성의 표시이다.

祭天의 예식은 淸의 건륭제 때 완비되고 가장 융성하였는데 역대황제 중에서 가장 지극 정성으로 上帝를 모신 임금이다. 그리고 그의 재위기간중은 太平盛世로써 가장 안정된 기간이었으며 그도 89세의 장수를 누렸다. 그는 신하나 자식들에게 항상 “敬天報本은 不可疏略”이라고 말했다 하며 후대의 황제들은 “郊禮各儀節은 悉遵高宗舊制라”하였다 한다. 기년전에서 황건전으로 가는 漢白玉난간의 중앙에는 雙龍山海, 雙鳳山海, 瑞雲山海의 三層의 浮雕가 장식되어 있어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계속>

윤 창 열
대전대 한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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