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12> - 『尾陽唱和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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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12> - 『尾陽唱和錄』②
  • 승인 2020.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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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萍水相逢, 온밤을 지새운 귀한 인연

지난주에는 『尾陽唱和錄』이 작성된 계기와 등장인물, 그리고 그 의의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쳤기에 이 책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는데 다소 미진한 감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 수록된 문답내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 『미양창화록』
◇ 『미양창화록』

그에 앞서 이 고전자료에 대해 나고야 출신 요시무라 미카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원본 소장처인 호샤분코(逢左文庫)에는 책 이름이 ‘尾陽倡和錄’으로 글자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현행 번역본에는 모두 唱으로 되어 있고 본문 안에서는 서제가 드러난 적이 없어 당장 考訂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감염병 유행이 풀리는 대로 원본을 대조해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본문의 첫 머리에는 큼지막한 정방형 장서인이 찍혀져 있는데, 역본에 흑백으로 영인된 원문 이미지 상에는 본문 글자와 겹쳐져 있어 판독이 용이하지 않다. 이 역시 소장처로 印文에 대해 문의한 바, ‘尾府內庫圖書’라는 답변을 받았다. 尾府란 尾張藩이 위치한 지역의 관아 즉, 藩廳 안의 書庫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묘사행에 참여한 의관으로는 良醫 奇斗文을 비롯하여, 玄萬奎, 李渭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실제 문답이나 酬唱에 참여한 것은 대부분 수석의관격인 기두문에게 집중되어 있다. 기두문은 『桑韓醫談』에서도 조선을 대표하는 의관으로서 많은 문답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펼친 바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기서는 실제 의학 관련 문답의 내용을 일일이 적시하지 않고 별도로 기재한다는 말로 생략해서 상세한 전모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일인 학사 倪弘 竹田三益은 통신사 일행과 여러 차례 문답과 함께 시문을 주고받았는데, 이와 관련해 “仲冬 그믐날 통신사 賓堂 위에서 良醫 기두문과 필담으로 의술을 논한 뒤, …”라든가, “의관 奇公에게 올리다(呈醫官奇公)”라는 글이 실려 있다.

또한 湍水軒 橫田宗益이란 의원은 기두문에게 “일찍이 선생이 國手라는 명성을 듣고, 뵙기를 바란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접견을 하니 흡사 오랜 가뭄 중에 첫 비를 만난 듯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저는 瘡科를 본업으로 삼고 있지만, 재주가 부족해 빼어난 효험을 얻지 못하였습니다.”라며 비방을 부탁하였다.

이런 요청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치료술과 약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필담에서는 내용이 생략되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의약문답 대신 그가 기두문과 주고받은 시문과 찬사만이 실려 있다.(奉嘗百軒奇先生)

그러나 정작 수많은 일인들과의 끊임없는 문답과 줄 이은 시문 요청에 일일이 응해야하는 조선사절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한 게 아니었던 듯하다. 기두문은 “고달픈 사행길 여가에 … 종이를 들고 글을 청탁하러 오는 사람들 발걸음이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는 것처럼 어지러워 정신이 산란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부평초가 물에 떠다니듯 우연히 再會하길 기약하기 어렵다며, 强請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먼 거리를 여러 날 동안 오가느라 정신이 피곤해진 나머지 이르는 곳마다 의약을 강론하거나 혹은 병든 이를 진찰한 것이 백여 사람에 달하니 한 가닥 정신마저 혼미해져서 …”라고 하며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행사절과 일인 의원, 문사들의 사이에 벌어진 문답과 시문창수는 그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때로는 조선 관원에게 자신들의 館閣을 장식할 편액과 휘호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나고야 의원 大田東作의 택호인 ‘宜春堂’이란 글씨는 이렇게 남겨진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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