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09> - 『靈素鍼灸經』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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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09> - 『靈素鍼灸經』②
  • 승인 2020.03.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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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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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瀉手法을 강조한 鳳岡침구학

본문에 앞서 별지로 삽입된 전신경혈도 다음에 짤막한 서문이 붙어 있다. 이 서문의 작성자는 鳳岡 田光玉(1871~1945)이라고 밝혀져 있다. 전광옥은 일찌기 고종의 어의를 지낸 洪哲普가 건의하여 1904년에 설립한 同濟醫學校에서 청강 김영훈과 함께 교수로 선발되어 근현대 한의학 교육의 빗장을 열었던 선구자이다.

◇ 『영소침구경』
◇ 『영소침구경』

그는 또 일제가 헤이그밀사사건을 트집삼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면서 3년 만에 의학교가 폐교 당하자 八家一志會 동료들과 함께 사설강습소를 열어 한의학 교육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1909년 전국에 퍼져 있는 한의사들을 결집하여 대한의사총합소라는 단체를 결성하였으며, 1915년에는 全鮮醫會를 구성하는 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동서의학연구회 등 학술단체에서 활동하면서 『東醫報鑑』,『忠南醫藥』같은 학술지에 기고를 통해 한의를 계몽하는 한편 한의학 부흥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의 아들인 田錫鵬(1911~1993)도 또한 경기도 한의사회를 설립하여 초대회장으로부터 내리 3대를 연임하였으며, 대한한의사협회의 부회장을 지내면서 ‘醫權守護에 앞장선 鬪士’로 활약한 한의계 지도자였으니 명실 공히 대표적인 한의사 가계라 하겠다.

『근현대한의학인물실록』에는 전광옥의 저서로『醫學通俗法要義』와 『古今良方集』을 소개하였다. 전자는 1933년 의생 교육용 강의록으로 배포된 것이고 후자는 평생의 학술경험을 집적한 유고집으로서, 저자 사후인 1959년 학술잡지『東醫藥界』를 통해 일부가 연재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 전모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실물이 전하는 『醫學通俗法要義』는 靈素匯通과 醫海寶筏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앞의 영소회통은 의경인『영추』와 『소문』의 요점을 근간으로 삼고 역대 의가들의 경험과 침구치료법을 엮어 만들었다고 밝혀져 있다. 또 이 책에는 경맥기지, 영수해석, 오전오후론, 영수보사법, 침구론, 호흡출침론 등 침구보사법에 대해 자세히 기술했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면면들을 감안해 볼 때, 본서의 취지와 기본 방향이 일치하고 있어 전광옥과 이 책이 불가분의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서문 말미에는 ‘於月山醫院 鳳岡 田光玉 自序’라고 밝혀져 있으니 그가 이 책의 저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판권부에는 분명히 저자가 ‘대한침구학회 권영준’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다. 전호에서 이 책의 표지에 ‘東隱先生 著’라고만 표기되어 있고 저자의 실명이 밝혀져 있지 않아 곧바로 알기 어렵다고 한 점을 상기한다면 이 자리에서 원작자를 밝히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까닭을 십분 이해하리라 본다.

아울러 서문의 끝에 ‘甲申年正月二十日’이라고 작성시기가 밝혀져 있는데, 갑신년이라면 아직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기 전인 1944년, 일제의 강압이 최고조였던 시점이다. 다른 자료에서 전광옥은 광복 후 10일 만에 돌아갔다 하였으니, 결국 이 책은 그의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유작으로 남겨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서문은 순한문으로 되어 있지만 매우 평이하고 짤막한 언급에 불과하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병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침구만한 것이 없으므로 옛적 선배들이 침구로 당대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묘법은 補瀉手法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으니 의학을 공부하는 자가 힘써 익혀야만 한다. 내가 하찮은 학문(斗筲之學)을 가지고 감히 책 한편을 엮었으니 靈素의 보사침법 및 여러 의가들의 경험과 보사수법, 영수법을 모아 ‘영소침구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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