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안 된다는 그 한 마디에 모든 논의를 없었던 것으로 돌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의협의 건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국립서울대내 한의과대학 설립론은 여전히 정당성을 지니고 있고, 갈수록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설사 한의계의 건의가 아니더라도 객관적 상황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양의학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양의학은 화학약품으로 만든 치료제로 세계의약시장과 제3세계 사람의 의식까지 제패했지만 약물의 부작용이 날로 커져 그 대안으로 약물의 통제, 수술요법의 자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효율적인 치료방법을 모색하고자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성공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암치료를 위해 수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아직까지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진단의 정확성도 그리 높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가지 질환을 정복(?)하면 새로운 질병이 발현되어 서양의학을 한껏 조롱할 뿐이다.
서양의 한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겉으로는 태연하면서 내심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그들은 제3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그곳에서 서양인은 수많은 가치를 찾아냈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동양의학이다.
미국은 국립의료원에 대체의학연구소를 설립하여 기초연구를 끝내고 침과 한약재의 효능을 집중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의과대학만도 50개나 설치되었다. 유럽각국의 노력도 눈물겨울 정도다.
중국은 국립대학인 북경중의약대학을 위시하여 29개가 설립되어 있다. 국가적으로는 중의약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1차 중의약 개발계획인 '八五계획'이 성공함에 따라 2차 계획인 '九五계획'(1995∼2010년)이 시행 중에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립대학에 한의과대학 하나 없이 전부 사학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적 지원이 없는 사학은 아무리 잘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 익히 경험한 바다.
서양사학과에 대비한 동양사학과와 국사학과의 설립, 서양음악과에 대비한 국악학과의 설립과 마찬가지로 서양의학에 대비한 한의과대학의 설립은 한의학의 국가적 공인이나 다를 바 없다. 한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가 어찌 이뿐이랴!
21세기의 첫해를 시작한 이 시점에서 국립서울대에 한의과대학을 왜 설립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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