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웃으면서 계속 걸으면 되려나 보다
상태바
[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웃으면서 계속 걸으면 되려나 보다
  • 승인 2020.02.28 0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팩트풀니스

세상은 변화한다.

5년 전 한 단체를 통해 해외의 아이와 결연을 맺었다. 그 아이가 있는 지역사회의 교육과 보건사업을 후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작년 말, 학교도 이제 자립 가능하고 보건소도 입원시설까지 완성되었고 예방접종 비율도 100%를 달성했으며 조혼하는 아이들도 크게 줄었으니 이제 다른 동네로 후원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축하할 일이 맞는데 놀람과 의심이 먼저였다. 정말? 그 마을이 정말 자립했단 말이야? (*세이브더칠드런의 네팔 카필바스투 자립마을 사례)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출판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출판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범주에 들어간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놀랐던 걸까? 후원을 하면서 전혀 변화를 상상해보지 못했나 보다. 가난으로 생존이 위협받고 아이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약자의 인권은 존중 받지 못하는 그들의 세계와, 괜찮게 살면서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어서 우리들끼리의 리그 속에 경쟁하는 세계라는 ‘둘로 나눠진’, 의식하지 못했던 내 세계관이 살짝 흔들렸다. 그런데 이 세계관은 흔한 세계관이라고 한다. 91%의 사람이 중간소득이상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61%가 세계인구 다수가 저소득국가나 고소득국가에 살 거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미국인의 64%가, 일본인의 76%가, 독일인의 83%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세상은 정말 좋아지고 있다

팩트풀니스에서는 삶을 4단계로 나눈다. 하루하루 생존이 위협받는 수준의 1단계(10억의 인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전기도 들어오지만 몸이 아프면 자칫 삶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2단계(30억의 인구), 전기가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공장에 나가 일할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3단계(20억의 인구), 교육을 12년 넘게 받고 휴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온수를 편안히 쓰는 4단계(10억의 인구)이다. 이 4개의 단계는 이제 세계은행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분류대신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20년 전에는 29%가 1단계의 삶을 살았지만 2017년에는 9%만이 1단계의 삶을 살고 있다.

좋아지는데도 왜 별로 기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특이한 사건이나 좋지 않은 소식에 집중되는 언론보도, 언론보도 자체의 폭증, 과거의 비참함을 잊고 미화하는 경향 등을 우리가 세상을 비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았다. 또 현실을 분류할 때 양극단으로 가르거나 너무 큰 덩어리를 한꺼번에 같은 범주로 이해하는 것(예: 후진국 대 선진국으로 나뉘는 세계관), 사람은 각자가 가진 관점에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단일관점의 한계(특히 전문가 집단은 더할 수도 있다), “비난할 대상”을 찾는데 몰입하는 본능, 과도한 공포감에 의해 다급하게 결정하려는 경향 등을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원인으로 보았다. 이런 내용들을 적용하면 우린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아졌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좋고 더 좋아지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2단계가 중간소득의 인생이라고?”, “4단계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냐? 이 정도에 만족하라는 건가?”, “비난할 대상을 찾지 말고 원인과 시스템을 찾으라니. 잘못하고 있는 사람의 책임을 너무 축소하는 거 아냐? 분노를 무시하는 거 아냐?” 등등.

우리의 일상은 무의미하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이 반발심 어린 생각들은 이 저자들이 하지 않은 주장에 대한 비난이다. 이 책 어디에도 그러니 만족하라는 식의 내용은 없다. 또 1단계 삶과 2단계 삶 사이의 큰 간극과, 그 비율의 변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난 아기가 죽고 사는 간극, 하루 종일 생존 그 자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간극이니까. 분노하지 말란 말도 하지 않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생각하기 위한 방법이라 하였을 뿐이다.

이 책의 주장은 말미에 요약된다. 사실에 근거한 시각으로 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이런 시각으로 세계를 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적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일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분리수거를 하면 세상이 더 깨끗해질 거고,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면 전염병도 덜 퍼질 거고, 틈틈이 기부도 하다 보면 가난한 마을도 자립할거라 믿어도 되나 보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도 나오겠지.

 

김린애 / 상쾌한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