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탈린의 약초
상태바
에스토니아 탈린의 약초
  • 승인 2020.02.21 0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철

박종철

mjmedi@mjmedi.com


세계의 약용식물 여행스케치(55)
​​​​​​​ 박종철 교수 ·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박종철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우리에게 아직은 조금 낯선 이름인 에스토니아(Estonia)는 지도상에서 쉽게 위치가 떠오르지 않는 나라다. 북유럽이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두 나라가 있고 그 옆에 핀란드가 나란히 붙어 있다. 핀란드 바다 건너편에 있는 나라가 바로 에스토니아다. 면적은 남한의 절반도 안 되며 인구는 130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배로 2시간 남짓 거리에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Tallinn)이 있다. 탈린은 에스토니아 글자이며 덴마크의 도시(Danish-town)라는 뜻의 Taani-linn(a)에서 나왔다. 이곳은 중세도시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구시가지(올드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구시가지의 시청 광장은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처럼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시청 광장 한구석에서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자리 잡고 있다. 영어로 ‘Town Hall Pharmacy’라는 뜻의 레아프테크(Raeapteek) 약국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약국 중의 하나지만, 언제 개업했는지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역사학자들은 얘기한다. 15세기인 1422년 또는 1415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약국의 홈페이지에는 1422년으로 개업 연도를 소개하고 있다. 600년의 역사를 지닌 약국으로 같은 건물에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약국 내에는 작은 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탈린을 찾았다가 가이드가 이곳에 오래된 약국이 있다는 한마디에 모든 관광을 멈추고 즉시 약국으로 달려갔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 약국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다시 가이드를 찾아서 다른 일행의 시선은 아랑곳 없이 마구잡이로 그의 손을 이끌고 약국 찾으러 나섰다.

약국 입구에는 ‘1422년’ 개장했다는 표시를 해두었으며 유명한 약국이다보니 안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약을 사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약장에는 타임, 캐모마일, 월귤엽의 약재 표시가 보이고, 판매장에는 대마 씨, 마늘, 주니퍼 제품이 놓여져 있다. 전시장에는 예전부터 악국에서 팔던 사프란, 정향, 회향 약재도 진열되어 있다. 약국 옆에 건립된 작은 박물관에는 예전에 쓰던 약병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계피 약병도 보인다.

잠깐의 시간을 얻은 필자는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약국 내부의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촬영했고 눈에 보이는 약과 책도 급히 구입했다. 귀국 후 차분히 살펴보니 약재 하나는 주니퍼 열매였다. 약국 홈페이지에는 주니퍼 열매를 매일 한 개씩 먹으면 감기나 복통 치료에 좋고, 주니퍼 차는 신장과 방광 질환에 도움을 준다고 적혀 있다. 또 하나는 시계초, 쥐오줌풀, 홉, 세인트존스워트, 멜리사 허브가 섞여있는 진정 효능 약재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잠자기 전에 먹으면 안정 효능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쥐오줌풀(길초근)은 히스테리 치료 그리고 세인트존스워트(서양고추나물)는 우울증 치료에 좋은 약초다. 맥주의 향미료로 사용하는 홉도 불면증 치료에 도움된다.

같은 책을 두 권이나 샀던 ‘허브이야기’ 도서에는 레아프테크 약국에서 널리 사용했던 약초이자 향신료 식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는 유럽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는 세이지와 로즈마리도 보인다. 세이지는 위장장애, 소화불량 치료에 도움되며 항당뇨, 진경, 구풍 작용이 알려져 있다. 로즈마리는 담즙분비 촉진 작용과 진통, 소화 촉진 효능이 있는 향신료이다.

약국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는 1695년에 약국에서 판매했던 중세시대의 가격표를 소개하고 있다. 가격표에는 54종의 물, 지방 25건, 발삼 32건, 보존제 62건, 128종류의 오일, 팅크 20건, 연고 49건 및 약용차 71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불탄 꿀벌, 종마(種馬) 발굽, 탄 고슴도치, 지렁이 오일, 흰개의 대변 및 사람의 지방과 같은 독특한 제품의 이름도 보인다. 이 가격표는 중세 약초 연구의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중앙일간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영자지인 그 신문에서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는 기사가 되었다. 그 신문에 탈린 구시가지의 고지대에서 찍었던 필자의 얼굴 사진이 크게 실렸다. 탈린의 약국에서 급히 샀던 약재와 책자는 에스토니아의 귀한 약초 선물이 되어 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