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5)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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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5) - 윤창열
  • 승인 2004.09.0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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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皇天上帝께 天祭를 올리던 天壇 □

③ 皇穹宇

황궁우는 明 嘉靖 9年(1530년)에 지어진 圓形의 건물이다. 지붕의 꼭대기에는 金으로 도금한 寶頂이 있고 남색의 유리기와로 지붕을 덮고 있는데 원구단에서 祭天行事를 마친 후 皇天上帝와 先代皇帝의 神主를 보관해 두는 장소이다.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 정문(瑠璃門)을 통과해 三音石을 지나고 須彌座의 돌층계를 오르니 바로 皇穹宇다. 殿안의 正面에 漢白玉으로 만든 둥근 石座가 있고 신감(神龕)안에 “皇天上帝”라 쓴 푸른색의 位牌가 있었는데 만주어도 함께 倂記되어 있었다.

또 殿內에는 8개의 金色으로 장식한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으며 左右에는 皇帝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었다.
계단의 中央은 丹陛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한 마리는 위로, 한 마리는 아래로 향하며 생동감 있고 정밀하게 새겨 놓았다.

三音石은 황궁우에서 유리문에 이르는 中央에 있는 石板으로 황궁우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石板을 말한다. 첫 번째 石板의 중앙에 서서 殿內를 향해 손뼉을 한번 치면 낭낭한 메아리를 한번 들을 수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石板에서 똑같이 하면 각각 두 번, 세 번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는 上帝를 모셔두는 건물에서 나오는데다 메아리가 아주 크므로 “人間偶語라도 天聞若雷라(사람들의 사소한 대화라도 하느님이 듣는 것은 천둥소리와 같다)”라는 말이 생겼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皇穹宇의 특수한 담으로 인한 것으로 담은 원형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강한 音波의 반사작용이 있다.

三音石은 둥근 담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어느 石板에서 손뼉을 쳐도 반드시 그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데 단지 音波가 둥근 담 벽에서 반사되어 오는 거리가 각각 다르므로 각기 다른 回數의 메아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황궁우의 안 左右에는 東配殿과 西配殿이 있다. 東配殿은 東殿이라고도 하는데 左側의 수미좌 위에는 붉은색으로 大明之神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太陽神의 위패이다.

그리고 이 오른쪽 옆에는 하나의 수미좌 위에 왼쪽부터 木火土金水之神, 二十八宿之神, 周天星辰之神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중국 고대에 木火土金水의 벼슬이 있어 木正, 火正, 土正, 金正, 水正의 관직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木神, 火神, 土神, 金神, 水神의 위패를 보니 五行에 대한 신비감과 절대성이 가슴속에 刻印된다.

西配殿에는 제일 오른쪽에 하나의 수미좌 위에 흰색으로 夜明之神이란 위패가 있는데 太陰神의 위패이다. 이 왼쪽에는 하나의 수미좌 위에 모두 붉은 색으로 雨師之神, 雲師之神, 風伯之神, 雷師之神의 위패가 있었다. 東日西月, 日紅月白등의 철학적 含意가 모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황궁우의 담 내벽을 回音壁이라고 하는데 이는 벽면이 원형이고 벽돌을 잘 다듬어 빈틈없이 쌓았으며 표면이 반질반질하여 音波의 반사가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실지로 두 사람이 동서배전 뒤의 담 벽에 서서 얼굴을 북쪽으로 하고 벽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하면 전화하는 것처럼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傳聲壁이라고도 하는데 天人感應의 神秘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④ 九龍柏과 측백나무 숲

황궁우를 나와 왼쪽으로 돌면 음식과 음료수를 파는 상점이 나오고 다시 북쪽으로 가면 九龍柏이 있다. 이 측백나무는 명나라 永樂年間에 심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마치 아홉 마리의 龍이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천단은 옛날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오륙백 년이 넘는 수천 그루의 오래된 측백나무가 장관을 이루는데 이들 모두는 천단을 건축할 때 함께 심어진 것들이라 한다. 이들은 조경뿐만 아니라 잡귀를 막고 蒼生들이 하늘에 禮를 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한다.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여러번 천단을 방문하여 천단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천단의 3천여 그루가 넘는 오래된 측백나무의 숲을 보고는 “미국의 실력으로 쉽게 원래의 모습대로 천단을 다시 지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들도 이러한 나무숲들은 다시 조성할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나무들마다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쇠로 만든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파란 표지판은 수령이 300~500년 된 것이라 하고 빨간 표지판은 이를 넘는 古樹라고 한다.

⑤ 丹陛橋와 鬼門關, 具服臺

이 곳을 지나 成貞門을 지나면 丹陛橋가 나온다. 丹陛란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을 일컫는 말이지만 앞의 황궁우에서도 正殿 앞의 돌계단 가운데의 “雙龍戱珠”의 돌 조각을 丹陛라고 했듯이 上帝나 皇帝를 알현하러 가는 앞길이나 계단을 모두 丹陛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丹陛橋는 海만大道라고도 하는데 海만이란 城門안의 出入口에 돌을 깐 곳을 지칭하는 말이라 한다. 이 길은 길이가 360m에 이르고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점점 높아지는데 이는 天高地低를 상징하며 걸어서 上帝가 계시는 天堂에 들어가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단폐교를 걸으면서 左右를 보면 측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이 길은 天壇의 남쪽의 건물과 북쪽의 건물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中心線으로 가운데 대리석이 깔린 길은 神道이고 神道의 동쪽(기년전으로 가면서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御道이고 神道의 서쪽(기년전으로 가면서 왼쪽, 齋宮쪽)은 王道로써 황제의 친인척인 親王이나 大臣들이 사용하던 길이라 한다.

단폐교를 다리(橋)라고 부른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길에서 東西天門으로 연결되는 길 직전 아래에 단폐교를 가로지르는 지하터널이 있기 때문에 다리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 터널은 天祭를 올릴 때 사용하는 희생물들을 몰고 가는 통로로써 走牲道, 또는 進牲門이라고 불렀다. 희생물들은 천단의 서남쪽에 있는 犧牲所에서 기른 것들로 제삿날 전에 犧牲所의 관원들은 소, 양, 사슴, 토끼등을 몰아 이 통로를 지나 宰牲亭에서 도살을 한다.
이를 進牲이라고 하는데 進牲을 할 때는 龍旗를 날리고 북을 치면서 길을 열고 짐승들을 황색의 밧줄로 이끌고 가는데 宰牲亭에 이르면 반나절을 못 넘기고 모두 죽게 되므로 몰이꾼들은 이곳을 鬼門關이라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이 속에는 江西省 龍虎山의 張天師가 한 마리의 귀신을 잡아 가지고 와서 이곳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王公大臣이나 관리, 나졸, 잡부에 이르기까지 이 통로로 드나들기를 몹시 무서워했고 구멍의 좌우측에도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난 동물들이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피를 흘리고 죽고 단 한 마리도 살아서 나오지 못했으니 그들에게는 이곳이 저승문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단폐교가 東天門으로 이어지는 곳에 具服臺가 있다. 구복대는 황제가 祈穀祭를 지낼 때 이곳에 와서 세수를 하고 곤룡포를 벗고 祭服으로 갈아입는 곳이다. 그래서 更衣臺라고도 불렀다 한다.

제사는 정월 上辛日 해뜨기 전 7각(1각이 약 15분이므로 7각은 약 1시간 45분 정도 된다. 해뜨기 전 1시간 45분이면 새벽 5시 이전에 해당된다)이므로 날씨가 추워 숫불화로를 서너개 설치하여 임금의 몸을 녹여주었다고 한다. <계속>

윤 창 열 (대전대 한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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