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수화기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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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수화기제②
  • 승인 2020.02.0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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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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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장기한의원
박혜원
장기한의원

六四 繻 有衣袽 終日戒 육사는 물이 새는데 천을 가지고 종일토록 경계한다.

물이 샌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균열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게 집이든, 배든, 댐이든 간에 지금은 조금 새는 것에 그칠지는 몰라도, 결국은 그 균열로서 큰 사고가 벌어지게 된다. 그러니 천으로 막아둔 그 자리를 계속 바라보며 천이 젖는 속도가 어떤지, 다른 곳에서 물이 더 새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수압이 너무 강해 천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인지 하루 종일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집이나 댐이나 배나 모두 이미 완성된 것이었으나 결함이 생겼고, 이것으로 인한 재해는 오로지 이렇게 아주 작은 사건일 때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으로만 막을 수 있다.

 

九五 東隣殺牛 不如 西隣之禴祭 實受其福 구오는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음이 서쪽 이웃에서 간략한 제사를 지내어 알차게 복을 받음만 못하다.

기제괘의 구오는 외괘의 중앙을 차지하는 양효이니 길해야 마땅한데,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데도 간략하게 제사를 지내는 곳보다 받는 복도 적다. 대체 왜 그럴까?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낼 수 있을 정도의 풍족함은 이미 구오가 그동안 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 많은 사람은 계속해서 복이 많을 것 같지만 세상사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큰 복이라 해도 그 기쁨이 덜할 수 밖에 없다. 이미 20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천만원을 더 준다고 한들 그렇게 많이 기쁠까? 그러나 백만원을 소망한 사람에게 천만원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기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작은 것은 실망스럽고, 내가 가진 것이 적으면 조금의 덤에도 희망을 얻는다.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낸 사람은 소값 이상의 무언가를 바랄 것이고, 간략한 제사를 지낸 사람은 이런 제사에도 응답해준 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러니 복의 절대적인 양은 오히려 동쪽 이웃이 많이 받았더라도, 상대적인 복의 양은 서쪽 이웃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上六 濡其首 厲 상육은 그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

초효에 나왔던 여우가 결국은 강을 건너기로 했나보다. 그런데 머리를 적셨다고 하니 이제 강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수영에 능통한 여우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여우라면 이제 거센 물살에 떠밀려 발도 닿지 않는 강물 속에서 허우적대게 될 것이다. 여우가 초효에서처럼 꼬리를 적셨을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강 건너의 무언가, 여우를 결국 건너게 만든 그 무언가에 닿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 위험을 불렀다.

일년을 마무리하다 보면 이런 저런 상념이 들게 마련이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어’ 하는 일들과 인간관계,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싶은 것들, ‘누군 잘되고 나는 왜 이 꼴이지’ 싶은 자괴감을 주는 사건들과 ‘그때 그거 참 좋았지’ 싶은 일들, ‘그 사람 알게 되어 다행이야’ 싶은 사람, ‘이만하면 괜찮았다’ 싶은 마음들이 한데 뒤섞여 2019년이라는 거대한 무늬를 그려내었다. 내가 원래 그리려던 모양이 아니었더라도 이제는 실을 끊고 마무리를 지어야할 때다. 지나간 시간들이 그린 무늬들을 찬찬히 훑어보다 보면 역시 나의 생각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 누구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결국 결정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고, 가치 역시 내가 정하는 것이며, 맺어지고 끊어지고 얻고 잃는 것은 많은 경우 내가 결정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탓할 것도 남을 탓할 것도 없이 그저 나 자신과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자.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은 한 해였을테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가득했을테지만 이제는 전부 끝이 났다. 이미 나온 성적표에는 너무 연연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또다시 2020년이라는 미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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