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수화기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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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수화기제①
  • 승인 2020.01.3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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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장기한의원
박혜원
장기한의원

벌써 2019년 한 해가 저물고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완결을 종용한다. 해의 구분이야 사람이 만들어낸 숫자에 불과할지는 몰라도, 새해를 시작하면서는 아무래도 지난 해의 과오를 되짚어보게 된다.

수화기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들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내는 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꼭 내가 목표하던 것을 이루었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수화기제의 괘사는 이렇다.

旣濟 亨小 利貞 初吉 終亂 기제는 형통함은 적으니 바르게 함이 이롭고 처음은 길하나 마지막은 혼란하다.

기제의 괘사를 보면 나는 항상 수능 시험장을 떠올린다. 이미 그 장소까지 왔으면 12년동안 학교 다니면서 쌓아왔던 것들을 보여주고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이지만 누구에게나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운이 찾아드는 것도 아니고, 불안한 마음에 부정을 저질러서도 안되며, 처음 기분에는 다 잘될거라는 희망을 갖고 고사장에 들어가지만 마지막 시험지를 내고 난 다음에는 시원한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시험을 보고 난 다음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점수가 더 잘 나와서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큰 폭으로 떨어져서 절망하는 친구도 있고, 생각보다 눈치 작전이 잘 먹혀 원래 실력으로는 갈 수 없는 학교에 문닫고 들어가는 친구도 있다.

형통함이 적다는 건 그만큼 유동성이 없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고 더 발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른바 마킹 실수로 한두개 정도 더 맞아 점수가 소폭 오른 것 정도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도 점수는 변하지 않는다. 편법을 써서 그 점수로 갈 수 없는 대학을 간다고 하더라도 정유라처럼 나중에 모든 것이 들통나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러니 그냥 받아들이고, 남들처럼 정해진 길을 가는 수 밖에 없다.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났고 마무리지어졌으나 그 끝은 정돈되기보다는 혼란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결과값은 고정되어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初九 曳其輪 濡其尾 无咎 초구는 그 수레바퀴를 당기며 그 꼬리를 적시면 허물이 없다.

수레를 끌어야 바퀴가 굴러가며 전진할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선 수레바퀴를 당긴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굴러갈 수 없다. 게다가 꼬리를 적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미제괘와 마찬가지로 기제괘에서는 여우 한 마리가 등장한다. 여우는 개나 고양이와는 달리 꼬리를 아래로 내려놓고 걷는 습성이 있다. 이 여우가 강을 건너려 하는데, 꼬리가 물에 젖는다. 그말은 곧 강변의 물 깊이가 여우의 다리를 절반 이상 적실 만큼 높은 것이고, 당연히 강 중간의 수심은 훨씬 깊을 것이다. 더 이상 전진해서는 안되는 곳에서 수레를 몰아 앞으로 가면 벽에 부딪치거나 쳐박힐 수 밖에 없다. 깊을 것이 뻔한 물에 뛰어들어야 오도가도 못하고 결국은 물에 빠질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수레도 멈추고, 똑똑한 여우는 강 건너기를 포기한다. 길 끝과 강은 결과다. 이미 내 눈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와 다다른 곳이다. 그러니 이제 마칠 때임을 알고 멈춰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二 婦喪其茀 勿逐 七日 得 육이는 지어미가 그 포장을 잃음이니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칠일만에 얻는다.

육이는 음효이니 여성이다. 옛날 여인들은 부르카처럼 얼굴을 가리는 쓰개를 입지 않으면 밖에 나가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없으니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육이는 구오와 음양응을 이루는 정당한 짝인데, 구오를 만나러 나갈 수 없으니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억지로 가리개를 찾으러 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이미 구오의 짝이란 것을 확실히 알고 구오가 자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이 때가 아니라도 훗날 정당한 내 것은 결국 내 손에 들어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놓친 것이 있더라도 안달복달하기보다는 이미 이룬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九三 高宗 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 구삼은 고종이 귀방을 정벌하는데 삼년이 걸려서야 정복하니 소인을 쓰지 말라.

고종은 은나라의 역대 왕 중 하나이다. 당대의 은나라는 강대국이었을 것이고, 굳이 오랑캐가 살고 있는 귀방을 정복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었는지 고종은 귀방을 정벌하러 갔고, 몇 달이 걸려도 모두가 피폐해지는 전쟁이 3년이 지나서야 끝났다. 애초에 정벌을 생각한 것도, 정복의 야욕을 접고 그만두지 않았던 것도, ‘조금만 더’라고 속삭이는 소인배들의 영향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인지도 모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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