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8)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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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8) - 윤창열
  • 승인 2004.07.0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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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성 南陽 □

(4) 仲景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醫聖祠

③ 仲景頌辭

24폭 석각화를 지나면 역대의 名醫 및 현대의 中醫學者들이 중경을 평가하고 찬양하는 글들이 쓰여져 있는데 총 45개의 글 가운데 日本 사람의 글이 7개, 미국사람의 글도 2개나 있었다. 이중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李東垣曰 易水張先生云 仲景藥은 爲萬世法이요 號群方之祖니 治病若神이라 后之醫者가 學內經法하고 學仲景心하면 可以爲師矣리라.
朱丹溪曰 仲景諸方은 實萬世醫門之規矩準繩也라 后之欲爲方圓平直者는 必於是而取則焉이라.
方中行曰 昔人論醫에 謂前乎仲景은 有法無方하고 後乎仲景은 有方無法하며 方法具備는 惟仲景此書라 하니라. 然則此書者는 盡斯道體用之全하고 得聖人之經而時出者也니 後有作者 終莫能比德焉이라(比德은 仲景과 功德을 나란히 할 만한 사람).

끝으로 筆者와도 잘 알고 있으며 대전대학교와 자매대학인 武漢의 湖北中醫學院 교수로 있었던 李今庸 교수 評贊을 소개한다. 이 글은 1985년에 쓴 글로 敬題南陽醫聖祠라 했고 法垂後世千年頌 方傳異國萬里가(변증의 大法을 후세에 드리우니 천년에 걸쳐 찬양하고 상한의 처방을 타국에까지 전해주니 만리에 걸쳐 노래부르네)라 하였다.

歷代名醫評贊을 지나면 百壽亭이 나온다. 여기에는 왕희지부터 안진경, 柳公權, 구양순, 저수량, 소식, 황정견, 미불, 채양, 조맹부, 王鐸, 吳昌碩, 정판교등의 대가들이 쓴 “壽”자를 15개 모아 놓았는데 안내인은 오창석의 글씨를 최고로 친다고 설명해 주었다.

④ 山門에서 仲聖殿까지

長廊을 지나면 山門이 있고 山門의 동쪽에는 春臺亭이, 서쪽에는 秋風閣이 있는데 仲景이 의술을 연마하고 著書立說하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仲景이 지은 《傷寒論》과 《金궤要略》을 孔子가 지은 《春秋》에 비교하여 醫學春秋라고 稱하므로 春臺亭과 秋風閣을 지어서 이를 기념한 것이다. 春臺亭은 1982년에, 秋風閣은 1990년에 重建한 것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醫聖祠가 나온다. 이곳은 장중경의 무덤으로 萬世醫宗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무덤앞에는 “東漢長沙太守醫聖張仲景之暮”라고 刻字되어 있는데 淸나라 順治 13년 南陽府丞 張三異가 쓴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西晉시기의 墓碑(晉 咸和 5년에 세운 漢長沙太守張仲景墓라고 쓴 碑)를 발견하고 한나라 때의 무덤을 모방하여 벽돌로 쌓아 올렸는데 네 모퉁이에는 羊의 머리를 두어 吉祥의 뜻을 나타내었고 위에는 연꽃무늬를 넣어 그의 깨끗한 일생을 상징하였다. 무덤의 앞에는 拜殿이 있고 무덤의 뒤에는 墓亭이 있어 각종 참배와 제사등은 모두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拜殿에는 衛生部中醫司司長을 지낸 呂炳奎의 對聯이 걸려 있는데 그 내용은 “勤求古訓하고 探素索靈하야 創辨證論治之基礎하고 博采衆方하고 闡幽發微하야 立六經傳變之準繩이라”이다. 勤求古訓과 博采衆方은 상한론 自序中에 나오는 말로 仲景이 古代醫書를 부지런히 연구했고 널리 여러 처방들을 收集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探素索靈은 素問과 靈樞를 깊이 연구했다는 것이고 闡幽發微는 깊고 은미한 학술의 진수를 闡發했다는 뜻이다. 準은 수평을 잡는 수준기이고 繩은 먹줄을 뜻하므로 이는 곧 準則과 法度의 뜻이니 六經의 傳變規律을 연구하여 辨證論治를 확립한 중경의 공덕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中國에는 역대로 한사람의 무덤이 여러 곳에 전해지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仲景의 무덤만은 이곳 이외에는 전해오는 곳이 없어 진짜 중경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이의가 없는 확실한 무덤이라고 한다.

墓亭의 좌우에는 行方齋, 智圓齋, 仁術館, 廣濟館등의 건물이 있다. 行方齋에는 벽마다 靑龍, 白虎, 朱雀, 玄武의 四神圖가 조상되어 있고 仲景이 診脈하는 像이 조성되어 있다.
智圓齋에는 上海中醫學院敎授이며 유명한 中醫學者인 張贊臣(1904~1993)이 기증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醫聖祠를 단장할 것을 발의한 사람이기도 하며 1992년 의서와 의학간행물 2200餘冊, 醫藥文物 81種 122개를 醫聖祠에 기증하였다.

맨 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仲聖殿(大殿)이다. 中央에는 장중경의 像이 세워져 있고 左右에는 손사막과 王淑和의 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두 사람이 傷寒論을 후세에 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인 듯 하다.

大殿에는 두개의 對聯이 걸려 있는데 하나는 “善德善心善行은 尤緣善醫至善하고 名山名水名勝은 更因名人而名이라(고상한 品德, 선량한 마음, 아름다운 행실은 더욱 仲景같은 훌륭한 의사를 통해 3가지의 선에 도달할 수 있고, 名山, 名水, 名勝地는 다시 그 곳을 빛낸 名人에 의해서 명성이 자자해진다)”이고 다른 하나는 “博採衆方하고 攻陽補陰하야 拯救病患逸前하고 勤求古訓하고 辨證論治하야 選述醫書傳後라(널리 각가의 처방을 수집하고 陰陽을 조화하여 환자를 구제한 것이 과거의 사람들을 초월하고 부지런히 옛 의서를 연구하고 변증논치하여 의서를 지어서 후세에 전하여 주었다)”이다.

앞의 것은 任毅가 지은 것을 南陽의 서예가 賀國鈞이 쓴 것이고, 뒤의 것은 하남성의 서예가협회 이사인 周濟人이 쓴 글이다.
大殿의 左右에는 중경의 무덤을 발굴할 때 출토된 유물, 상한잡병론에 대한 주석서 등이 진열되어 있다. 仲聖殿 앞에는 능소화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 나무는 다른 큰 나무에 기대야만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우리는 行方齋, 智圓齋를 지나 다시 長廊으로 나왔는데 서쪽의 長廊은 醫聖林으로 이곳에는 복희씨부터 신농씨, 黃帝 岐伯을 거쳐 민국시기까지 117명의 역대 명의의 石刻畵像이 진열되어 있다.

나오면서 만나는 六角의 碑亭에는 모택동, 호요방, 譚震材, 李德全, 주은래등의 중국의 국가 영도자들이 仲景을 찬양한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국가차원에서 中醫學을 발전시키고, 관심을 가져주는 그들의 풍토가 대단히 부러웠다.

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호텔앞에 한 마리의 황소를 조상하여 놓은 것이 특이하였다. 궁금하여 물어보니 南陽의 黃牛는 전국에서 으뜸으로 평가받아 이곳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南陽의 黃牛는 南陽四寶 중의 하나인데 나머지 셋은 烙畵{烙花·탕書(탕서)·火筆畵}·南陽玉雕(옥조)·南陽絲綢(사주)이다. <계속>

윤 창 열
대전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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