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파견 국제협력의 체류기 - 김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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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파견 국제협력의 체류기 - 김중길
  • 승인 2004.06.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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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전통의학속에 한의학 씨 뿌리다

다음 글은 2001년 5월부터 3년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한·몽친선한방병원에서 국제협력의로 지냈던 김중길 씨(32·원광대 순천한방병원 과장)의 체류기이다. <편집자주>

몽골에서의 지난 3년은 당시엔 문화차이에 의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었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보니 이제는 그저 하나의 일상들로 기억될 뿐이다. 새로운 것들을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과 어려움들이 차츰 습관으로 변해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몽골에서는 2001년 5월에 입국해서 2004년 3월까지 약 3년간 국제협력의로 지냈다.
몽골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처음 활동한 한국 한의사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게 활동의 전부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내가 국제협력의사 제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에서 수련의로 지낼 때였다. 지도교수이셨던 송봉근 선생님께서 한의학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셨다.

한의사라고 한다면 한자로 된 고서나 열심히 읽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서 환자를 위해 인술을 써야 된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 한국 환자만이 환자가 아니고 세상에는 우리의 특별한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나눠야 할 60억의 (우리와)다른 말을 하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 후 해외의료봉사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자연스레 해외에 파견되어 의료봉사하는 국제협력의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제협력의사의 장점은 한국정부에서 지위를 보장해주고, 활동에 필요한 물품 제공과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물론, 39개월간의 군복무를 해외 봉사활동으로 대체해 주면서 한국의 한의학을 세상에 알리고, 보다 넓은 세상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선진국이 아닌 여러 가지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후진국에 가서 외로움을 극복하며 우리와는 너무 다른 문화를 처음부터 배워야한다는 것과 그동안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지위와 경력은 잊고 다시 처음부터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한의사들이 느끼고 있을 외로움이었다.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의료기술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양방의학과 인류의 시초부터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온 전통의학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지식뿐만 아니라 인력도 쉽게 교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보편(양방의학)과 특수(전통의학)라고 대비시켜도 될 것 같다.

나와 같이 몽골에 파견되어 활동하던 양방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몽골의사들과 곧바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초기에 몽골 의료진들과 그것이 불가능했다.
이미 양방은 세상 어디를 가든지 의학영어로 검사·진단·치료 등에 대해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지만, 한의학적인 진단법·침술·한약 등을 설명할 때 상대방이 한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본적인 공감대를 가질 수가 없다.

나의 몽골에서의 활동은 몽골 전통의학이라는 특수 속에 한의학이라는 문화적 씨를 뿌리는 작업이었다.
그 씨앗이 발아하여 나무가 되는 것은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걸리는 과정이고 또 그것이 열매를 맺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 파종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1년 5월 몽골에 입국해 그해 12월까지 한·몽친선한방병원 건설 현장의 소장으로서 병원 건축의 관리 감독을 맡으며 병원 개원식과 진료를 준비했다.
그해 12월부터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몽골환자나 몽골 의료진들에게 한국 한의학의 존재 이유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보여주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있었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 한의학에 관한 서적도 부족했고, 의사소통 또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의사와 중국 전통의학을 배운 외국인이 쓴 영문 서적으로 침술에 대해 교육을 해보려 했지만 그 역시 잘되지 않았다.

이듬해 10월부터 2003년 4월까지는 제1차 몽골 의료진들의 교육기간이었다. 이때 ‘The Language of Medicine’이라는 책으로 의학영어에 대해 교육을 실시했다.
이 기간동안 한국 한의학에 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도했고 차츰 몽골 의료진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같은 해 11월부터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몽골의사들을 위해 몽골에서의 진료기록들을 정리해 진료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진료실 매뉴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임기가 만료되어 마무리짓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동안 우리는 한의학의 우수성을 치료부분에서 많이 입증시켜왔다. 그러나 그러한 치료 효과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보편’이 아닌 ‘특수’를 얼마나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한국의 한의학을 세계화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세상은 우리만 문을 잠궈 놓는다고 해서 살 수가 없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만 외치면서 지구라는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의 이웃들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뒤 처지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이 진리에 가장 접근한 학문일 것이다.

침이나 한약 등 한의학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지난 이야기다.
그것을 진료실에서 어떻게 환자들에게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느냐가 진료실 의사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가 한의학을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무기다. 3천원짜리 침을 맞기 위해서 한의원을 찾는 한국 환자들에게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100불 짜리 침을 맞기 위해서 한의원을 찾는 외국 환자들은 항상 ‘왜?’를 외친다. 100불 짜리 침을 놓기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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