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7)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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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7) - 윤창열
  • 승인 2004.06.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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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성 南陽 □

(2) 천재 과학자 張衡 博物館

점심을 먹고 우리는 南陽市의 북쪽 石橋鎭에 있는 張衡博物館을 향하여 출발했다. 張衡의 무덤은 方城縣의 博望鎭(제갈량이 초려에서 나가 처음으로 用兵하여 조조군의 장수 하후돈 등을 대파한 곳이다)에 있고 博物館은 그가 태어난 곳에 세웠다고 한다. 박물관과 그의 무덤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張衡(A.D. 78~139)의 字는 平子이고 后漢시대 南陽사람이다. 그는 저명한 科學者이자 發明家이며 文學家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張衡의 像이 있고 여기에 “不恥祿之不과(과) 而恥智之不博”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이는 봉록이 많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 말고 지혜가 넓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그의 정신을 대변하는 말인데 그는 “一物不知 實以爲恥”의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는 16세에 집을 나가 賈逵(가규, 字 景伯)에게서 天文學을 배우고 王充(字 仲任, 論衡의 저자), 班固(字 孟堅, 漢書의 저자) 등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張衡은 天文·陰陽·曆算 등에 통달하였고, 《地形圖》, 《渾儀圖注》, 《靈憲》, 《靈憲圖》, 《算罔論》 등의 저작을 남겼다. 이중 《靈憲》은 중국에서 최초의 天文學 理論著書로 天體의 形成및 運行秩序에 대하여 氣를 기초로 하는 宇宙形成 이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創造와 發明의 분야에서도 탁월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세계에서 첫 번째로 스스로 움직이는 天文기구인 渾天儀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地震의 방향을 측량하는 기구인 地動儀를 만들었다. 또 기상을 측량하는 候風儀, 자동으로 방향을 지시하는 指南車, 자동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計里鼓車, 자동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 등을 발명하였다.

그의 친한 친구 崔援은 일찍이 그의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를 평하기를 “道德漫流, 文章雲浮, 數學窮天地, 制作모造化(도덕은 충만하였고 문장은 탁월하였으며 수학은 천지의 이치를 다하였고 제작기술은 조화를 극진히 하였다)”라 하였다. 곽말약도 그를 찬양하는 題詞에서 “이와 같은 종합적인 인물은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드물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라 하였다. 밖에는 地動儀와 渾天儀가 전시되어 있는데 地動儀를 보면 위에는 용이 구슬을 물고 있고 아래에는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구슬이 떨어진 방향에서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도구라 한다.

(3) 玄妙觀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獨山의 산록에 있는 현묘관을 방문하였다. 독산은 玉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독산의 玉은 全國四大名玉중의 하나라고 한다.
玄妙觀은 北京의 白雲觀, 濟南의 長淸觀, 西安의 八仙庵과 병칭하여 全國道敎四大名觀에 속했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묘관은 옛 자리를 南陽市 宛城區政府에 양보를 하고 이곳 獨山으로 1997년에 옮겨 지은 것이라 한다.

(4) 仲景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醫聖祠

① 入口에서 照壁까지

南陽시에서 마지막으로 溫량河가에 있는 醫聖祠를 방문하였다. 醫聖祠로 가는 남북으로 뻗은 길은 仲景路라고 명명되어 있었고 동서로 뻗은 입구의 길은 醫聖祠街로 되어 있었다.
의성사의 입구 앞에는 雙闕(母子闕)이 양쪽에 서 있는데, 漢나라 때의 건축을 모방하여 근자에 중건한 것이다.
금빛 찬란한 궐벽에는 한 마리의 주작이 허공을 날아오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大門에는 곽말약이 쓴 醫聖祠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대문을 걸어 들어가면 거대한 大理石照壁이 세워져 있는데 前面에는 黃竹齊가 지은 “醫聖張仲景傳”이 있고 우측과 좌측에 “陰陽有三하니 辨病還須辨證이요 醫相無二니 活國在于活人이라(陰陽에 三陰三陽이 있으니 병을 구별하려면 마땅히 증을 구별해야만 하고 의사와 재상은 둘이 아니니 나라를 살리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는 대련이 걸려 있는데 1982년 北京中醫學院의 任應秋 교수가 쓴 글이다.

照壁 뒷면에는 傷寒雜病論 서문이 쓰여져 있고 좌우에 “法崇仲聖思常沛 醫學長沙自有眞(의법은 중경을 숭상하면 생각이 항상 넘쳐나고 의술은 중경을 배우면 스스로 참됨이 있다)”가 쓰여져 있는데 중의 연구원의 硏究員인 岳美中이 쓴 것이다.

② 張仲景의 一生組畵 24幅

조벽을 지나면 중앙에 張仲景 塑像을 中心으로 醫和, 華타, 扁鵲, 岐伯, 王淑和, 孫思邈, 李時珍 등 十大名醫의 塑像이 세워져 있다. 이를지나 東長廊은 먼저 24幅의 石刻畵가 그려져 있는데 장중경이 의술을 배우고 질병을 치료한 그의 一生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 중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戰爭을 하는 그림. 張仲景이 태어난 당시가 亂世였음을 설명
△ 伏羲의 상을 보면서 백성을 질병에서 구제하겠다는 맹세의 장면
△ 같은 郡의 張伯祖에게서 醫術을 전수 받는 장면
△ 당뇨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지 못할 때 矛山의 도사가 당뇨병을 치료했다는 소식을 듣고 矛山을 찾아가는 張仲景
△ 길에서 王粲(字 仲宣)을 만나 내가 주는 약 50貼을 쓰면 당신의 병이 낫는데 만약 안 쓰면 40세에 눈썹이 빠지고 눈썹이 빠진지 半年만에 죽는다고 알려주고 그 후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이 준 약을 먹었느냐고 묻는 장면
△ 仲景이 사람을 많이 치료하여 孝廉으로 천거되어 벼슬에 나아감
△ 張仲景이 堂 아래서 병을 보는 그림
△ 중경이 벼슬을 내놓고 숭산의 少室山에 은거함
△ 인공호흡, 침구요법으로 병을 치료함
△ 仲景이 《傷寒雜病論》을 著述함.
△ 마지막 그림은 가운데 중경, 左右에는 달과 태양이 그려져 있고 각각 두꺼비와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는 중경의 傷寒雜病論이 日月처럼 인류를 밝히고 영원히 유전될 것임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계속>

필 자 약 력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대전대 한의대 교수(1985~현)
▲중국 요령중의학원 연구교수(1993~4)
▲현 대전대 한의대 학장, 대한한의학원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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