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6)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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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6) - 윤창열
  • 승인 2004.03.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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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북성박물관의 曾侯乙墓 유물 (전호에 이어) □

① 빛나는 靑銅器 유물들

다음에 진열된 것이 靑銅器인데 2400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다양하여 모두들 찬탄을 금치 못했다.
靑銅器는 모두 6239개로 이 중 昇鼎, 蓋鼎, 확鼎(확정), 銅궤(동궤), 小銅鼎, 銅蓋豆 등의 食器가 73개, 尊盤(준반), 鑒缶(감부), 聯襟對壺, 大尊缶(대준부) 등의 酒器가 13개, 水器가 12개 등이 있었는데 우리들을 가장 감동시킨 것은 청동으로 만든 尊盤과 鑒缶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尊盤은 밀랍으로 모양을 조각해 놓고 진흙을 묽게 하여 겉을 한번 씌우고 난 뒤 열을 가하여 밀랍을 녹여서 제거한다고 한다.
그런 뒤에 청동을 부어넣고 밖의 흙을 제거하여 만든다고 했다.
이 尊盤은 증후을묘 청동기 제작수준을 대표하는 청동기로 모습의 우아함, 제작기술의 정교함, 장식의 세밀함 등은 출토된 어떤 청동기보다도 가장 복잡하고 정밀하며 아름다운 청동기로 여기에는 龍 84마리, 이무기 80마리가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鑒缶는 네모난 鑒과 네모난 尊缶로 구성되어 있다.
준부는 술을 담는 그릇이고 鑒은 본래 물그릇이지만 여기서는 缶와 조합되어 얼음으로 술을 냉장하는 역할을 한다. 준부에 술을 담아 鑒안에 놓고 鑒과 缶사이에는 얼음을 담아서 술이 부패하지 않게 한 것이다.
이는 제사를 지낼 때 시간이 오래되면 술이 酸化하기 때문에 얼음을 사용하여 술의 부패를 방지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2400여 년 전에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였다하니 놀라울 뿐이다.

靑銅器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증후을의 관의 동쪽에서 출토된 鹿角立鶴으로 이는 학의 몸체에 학의 다리, 그리고 사슴의 뿔로 조성되어 있는데 입술의 오른 쪽에 “曾侯乙作之用終”의 7자의 銘文이 새겨져 있다.
사슴과 학을 合體한 것은 일종의 상상의 상서로운 동물로 출토될 때 관의 동쪽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무덤주인의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에 올라가게 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과 귀신을 소통하는 靈媒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② 二十八宿圖와 세상을 놀라게 한 편종

무덤 안에서는 또 옻칠을 한 옷상자가 5개 출토되었다.
여기에는 《後예익射圖(후예익사도)》 옷상자, 《과父逐日圖(과부축일도)》 옷상자 등이 있지만 한의학을 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二十八宿圖》 옷상자이다.
뚜껑의 한 가운데 거칠고 큰 글씨로 “斗” 字가 쓰여져 있는데 이는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斗” 字를 빙 둘러서 순서에 따라 28宿의 명칭이 쓰여 있다. 또 양측에는 동방을 상징하는 靑龍과 서방을 상징하는 白虎가 그려져 있다.
28宿의 단편적인 명칭은 殷墟卜辭와 《尙書·堯典》 등에서 나타나지만 전체의 명칭은 B.C 239년에 성서된 《呂氏春秋》에 나타난다.
28수도 옷상자는 전국시대 초기에 이미 28수에 대한 완전한 명칭이 존재했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증후을묘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동기로 만든 編鐘이라고 할 것이다.
편종은 3층에 걸쳐 모두 65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총 중량이 2567kg이고 기타의 종틀, 기둥, 銅人 등이 1854kg으로 합하면 4421kg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로 여기에는 3755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증후을묘의 편종은 선진시대 音樂·律學·聲學·冶金術 등의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첫째 편종을 실제 연주해 보거나 종에 쓰여진 “變宮”, “變商” 등의 명칭을 통해 선진시대에 중국에 이미 7음계가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둘째 十二音律이 西周 초기 이전에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鐘에는 十二音律의 律名에 해당하는 것이 모두 28개의 각기 다른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셋째 선진시대에 律을 정하는 方法이 弦으로 律을 정하는 것인지 管으로 律을 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었고 천여년동안 管으로 律을 정한다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증후을의 鐘銘을 통해 弦으로서 律을 정한다는 증거를 확인하였다.

우리 일행은 짧은 시간에 그밖의 다양한 武器·수레와 말에 장식하던 靑銅器, 다채로운 金玉器·樂器 등을 훑어보았다.

박물관 입구의 좌측에서는 증후을 무덤에서 출토된 편종을 현대적으로 복원하여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음악과 현대의 음악 등을 연주하여 보여주는 홀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시간이 없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일정인 동호의 유람을 시작하였다. <계속>

필자약력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대전대 한의대 교수(1985~현) ▲중국 요령중의학원 연구교수(1993~4) ▲현 대전대 한의대 학장 ▲저서 : ‘증보 중국의학사’ ‘난경연구집성’ ‘詳解의학한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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