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4)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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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4) - 윤창열
  • 승인 2004.03.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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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황학루

황학루의 제일 아래 현판은 “廉卷乾坤(주렴을 걷으니 천지가 드러난다)”이라고 題書되어 있는데 정말 황학루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四方이 확 트여 막히는 곳이 없다.

지금의 누각은 1985년에 콘크리트로 다시 지은 것으로 밖에서 보면 5층 누각이나 안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걸어서 9층까지 올라갔다. 날은 덥고 호흡은 가쁘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황색기와가 인상적이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漢水와 長江이 合流하는 것도 보이고 龜山의 끝자락에 위치한 晴天閣도 보인다.

앵무주에 대하서 물어보았더니 옛날의 앵무주는 漢陽과 합해져서 섬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의 지도를 보면 白沙洲 건너편의 漢陽에 앵무제(鸚鵡堤)가 있는데 이곳이 그 옛날의 앵무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황학루의 四方에는 거대한 편액이 있는데 正面에는 黃鶴樓, 반대편에는 楚天極目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는 南維高拱, 北斗平臨 등의 글씨가 호방하게 씌여져 있다. 동쪽의 楚天極目을 제외하고는 모두 原樓에 있던 글이라 한다.

우리는 밖의 조망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제5층으로서 황학루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長江이 東流하는 모습을 환상적인 그림으로 그려놓았고 그 아래에는 八仙過海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거북이와 뱀 위에 두 마리의 학이 조각되어 있는데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龜山과 蛇山을 상징한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고 禹임금의 말만 듣는데 우임금이 물길이 바뀌지 않도록 두 동물을 보고 지키게 하여 수 천년동안 물길이 바뀌지 않았다고 하는 전설을 형상화 해 놓은 것이다.

4층의 홀은 황학루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있었다는 향나무 병풍이 놓여져 있는데 두 마리의 봉황이 춤추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병풍이다. 가이드는 이곳 호북성은 옛날의 초나라 땅으로 초나라의 상징은 용이 아닌 봉황을 神物로 삼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전부터 용보다는 봉황과 더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초문화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듯 하여 묘한 느낌을 받았다. 향나무 뿌리에다 새들을 조각해 놓았는데 그 수를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또 옛날의 황학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지금의 황학루는 1956년에 불에 타서 소실이 되자 1985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원래 3층보다 2층이 더 높아진 것 외에도 강 쪽에 있던 것이 철도건설 때문에 더 안쪽으로 옮겨서 건축했다고 한다.

3층은 황학루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밑에는 거문고가 있고 위에는 황학루를 읊었던 시인들의 모습을 도자기벽화로 장식하고 있는데 가운데 이백, 좌측에 최호·왕유, 오른쪽에 맹호연·송지문, 다시 우측에 악비·육유·범성대 그리고 죄측에 유우석·백거이·두목 등이 그려져 있는데 통계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청나라까지 황학루에 와서 시를 읊은 사람이 212명이고 쓰여진 시가 339首에 이른다고 한다.

2층은 황학루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매 시대의 황학루를 모조품으로 만들어놓았는데 들어가면서 왼쪽의 목조건물이 당나라 때의 황학루로 기교가 뛰어났었다고 한다. 송나라 때의 황학루는 2층이었고 이어 원·명·청의 황학루 모형도 잘 만들어 놓았다. 청대는 3층의 건물이었는데 꼭대기의 寶頂만 불에 타지 않아 이것을 입구의 맞은 편에다가 전시해 놓았다 한다. 또 여기에는 당나라때 閻伯理가 지은 《黃鶴樓記》의 碑刻이 새겨져 있는데 이 앞에 현재의 황학루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또 碑記 양쪽에는 三國時代의 역사사실을 도자기벽돌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나는 《孫權築城》으로 손권이 성을 쌓고 望樓를 지었던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황학루가 실용적인 軍事哨所에서 점차 유람하는 명승지로 바뀐 역사적인 사실을 묘술하고 있다.

다른 한 폭은 《周瑜設宴》으로 元代의 《三國平話》에서 내용을 따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주유가 황학루에서 연회를 베풀어 유비를 죽일려고 도모했는데 제갈량이 계교를 써서 유비를 위험에서 구했다는 고사를 묘술하고 있다. <계속>

필자약력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대전대 한의대 교수(1985~현) ▲중국 요령중의학원 연구교수(1993~4) ▲현 대전대 한의대 학장 ▲저서 : ‘증보 중국의학사’ ‘난경연구집성’ ‘詳解의학한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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