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가 바라는 2020년] “실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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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한의사가 바라는 2020년] “실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길”
  • 승인 2020.01.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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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산

김은산

mjmedi@mjmedi.com


어느 덧 모니터 앞에 있는지 4시간이 지났습니다. 일상의 글쓰기가 대부분 코딩이나 딱딱한 학술적 글쓰기다보니, 한 해를 기원하는 유들유들한 글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구하다 막히면 선행연구를 찾아보듯이, '선대(先代)의 칼럼니스트께서는 무엇을 하셨나?'를 찾아보니 정말로 많은 '이런 한해가 되기를 기대 한다.'는 칼럼들이 있었습니다. 이 쯤 되면 ‘기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칼럼’까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였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은 기대를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실에서 답답한 것이 있고 이에 대한 답이 불투명 할 때 기대를 합니다. 난데없이 무언가 나타나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기를, 생각거리를 줄여주고 오늘 밤은 편하게 잘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일상의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단번에 내릴 수 있는 답이 있을까요? 막상 그래 보이는 답도 열어보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여전히 제가 하고 있는 연구에서 최고의 근거는 무작위대조군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입니다. 그렇다면 RCT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막상 이것도 열어보면 대단히 힘든 상황이 많습니다. 단적으로 환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1주일에 1번 이상 주기적으로 오셔서, 선생님의 상태에 대해 많으면 100개까지 질문을 할 테니 모두 답해주셔야 하고, 1년간 저희를 잊을 법 하시면 다시 찾아오셔야 하는데, 그 때도 한 100개 정도 여쭤볼 것입니다.’ 이 모진 세상에서 이런 요청에 동의하는 환자를 적게는 수십 명에서부터 많으면 수백 명까지 모아야 합니다. 이는 상당한 인력과 자금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막상 데이터를 모으고 나서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의 경우, 일상에서 생긴 사건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민해야하는 지점은 더욱 많아집니다. 이런 점들을 고민하다보면 데이터 분석하는 사람들끼리 알 수 없는 용어로 설왕설래를 하게 되고, “저 사람들은 매일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글들을 쓰는데, 혼자서 갑자기 화내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웃고,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난 세상 문제의 모든 원인을 알고 있고, 내 말만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갈량이 농사를 지으면서도 천하삼분지계를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이런 분들은 꼭 내가 다 할 수 있었는데, 이 어리석은 사회가 날 방해한다고 합니다. 현실화 될 수 없는 전략은 원래부터 부족한 전략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석사논문 심사 날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 있게 생각했습니다. 권투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 방 맞기 까지는’이라고 말했는데, 운 없게도, 그날 교수님들이 마이크 타이슨이었습니다.

저는 올해는 실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모든 것이 기대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 올해도 여전히 그렇게 행복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무기력하게 분노하는 자의식을 키우기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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