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눈 내리는 겨울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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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눈 내리는 겨울의 첫사랑
  • 승인 2019.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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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윤희에게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연말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마 겨울인데도 겨울 같지 않은, 특히 12월말인 지금까지 제대로 된 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은 날씨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하루에도 여러 번 강아지 산책을 가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지만 뭔가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자와 같은 아쉬움이 있는 관객들을 위해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윤희에게>를 소개하고자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김희애)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김소혜)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출연 : 김희애, 김소혜, 나카무라 유코, 성유빈, 키노 하나

무슨 내용일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제목의 영화인 <윤희에게>는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주인공이 어느 날 첫사랑이었던 사람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틀은 20년 전 멋진 설경과 함께 ‘오겡끼데스까’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를 떠올리게 한다. 편지, 첫사랑,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등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차별성을 갖는다. 특히 아무런 정보 없이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결말 부분에서 밝혀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소통하면서 주인공들이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성장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정도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감정의 기복 없이 매우 평범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독립영화로서는 많은 편인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조용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윤희에게>는 자칫 자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요소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주인공 윤희가 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서서히 풀어가며 무기력하고 무표정했던 그녀의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도 과잉된 감정 표현 대신 덤덤하게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며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관록의 배우인 김희애가 너무나 훌륭히 소화시켜 내며 영화의 클래스를 한층 높이고 있다. 그리고 뭔가 축 처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딸 역할을 한 아이돌 가수 출신의 김소혜가 발랄하게 연기하며 전체 밸런스를 잘 유지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가 꽤 불편한 관객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떠나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여타의 사정으로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에게>처럼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일상의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가득한 곳에서 펼쳐지는 담담한 영화를 통해 겨울을 간접 경험하며 2019년을 잘 마무리하고, 건강한 즐거운 2020년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한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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