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知體質而知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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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知體質而知天命
  • 승인 2019.12.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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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6

 ‘자신의 체질을 알게 되면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된다’는 말과 ‘너 자신을 알라’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해서 알고(知己)난 연후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知人), 또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治人)도 가능해진다고 나는 믿는다. 체질론을 공부하는데 자신의 체질도 올바로 모르면서, 체질의학 진료(診療)을 하는 임상의들이 많다. 이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그건 당사자에겐 몹시 부끄러운 것인데 도대체 그것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1) 체질이란 한계(限界)

  자신의 체질을 알면,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즉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반대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알 수 있다. 그 일은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잘 하는 남이 하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는 걸 말한다. 그것은 그에게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을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체질이란 다름인데, 다름은 체질마다 각각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장기(長技)이지만 그가 잘 해낼 수 없는 것은 한계가 된다. 그래서 다른 표현으로 하면 ‘체질이란 한계’이다. 

  그런데 체질론을 공부하고, 또 남들 앞에서 열심히 강의도 하고 두꺼운 저술도 여러 권 남긴 분이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모든 방면(方面)의 도(道)에 통한 만능인(萬能人)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는 일은 참 민망(憫惘)하다. 홀로 자기 속으로 너무 빠지면 한계를 잊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체질적 한계를 잊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판타지(fantasy)가 된다.

  금양체질(金陽體質)은 본디 비현실적인 생각에 몰두하므로 자신에게 취약한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반면에 목양체질(木陽體質)은 평소에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므로 때로 생각의 굴레를 벗고 방향을 전환시켜볼 필요가 있다.

  나는 신(神)의 계시(啓示)를 받았어. 나는 환상(幻想)을 보았어. 그걸 통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했어. 이건 금양체질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판타지다. 목음체질(木陰體質)의 판타지는 아주 질서정연하다. 갖가지 원리와 방법론이 망라되고 체계 있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니 책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길(방법)을 찾으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핵심이 무언지를 알려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어려운 말을 많이 들었는데 무엇을 들었는지 하나도 남지 않는 강연과 같다. 

  체질을 알면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것은 체질이 바로 명령이라는 것이다. 체질이란 명령에는 조건(條件)이 걸려 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의무(當爲)도 있다. 또 자유(自由)를 제한하고 속박하는 구속(拘束)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체질적 한계는 그의 몸이 할 수 있고, 다다를 수 있는 경계이다. 그래서 체질적 구속이란, 불가능(不可能)한 것을 향한 몸과 마음의 헛된 시도(試圖)와 망상(妄想)을 제한한다. 또 그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들 여러 가지 나쁜 행태(行態)와 습성(習性)과 관계로 나아가려는 그의 욕망(慾望)을 속박(束縛)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녹색 원(圓)이 목음체질의 영역이고, 연보라색 원이 금음체질의 영역이라고 생각해보자. 두 체질은 내장구조(內臟構造)가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두 체질이 나타내는 체질적인 특성은 상대적(相對的)으로 정반대이다. 그리고 두 원이 서로 겹치지 않듯이 두 체질 사이에는 교집합이 전혀 없다. 두 체질에서 한계란 원의 둘레를 생각하면 된다. 내가 나의 끝까지 이른다고 해도 내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그것이 바로 한계이다. 

  나는 악기(樂器)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이 아주 부럽다. 간혹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나의 한계인 것을 이제 잘 알기 때문에 쉽게 수긍이 된다. 그리고 호흡(呼吸)은 짧지만 내가 스스로 취(醉)해서 부르는 노래가 그나마 남을 흥겹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2) 달팽이의 길은 더디다  

  태양인(太陽人)1)은 하늘(天) 지향이고 태음인(太陰人)2)은 땅(地)에 발이 붙어 있다.

  목양체질이나 목음체질은 현실이란 땅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목체질에게 건너뛰기는 없다. 1에서 2를 지나 3을 통과하고 4에 이르면 비로소 5로 가는 길이 보인다. 그것을 2와 3을 뛰어넘어 4로 바로 갈 수는 없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저 하나를 알 뿐이다. 하나를 통해서 2부터 10까지를 알아내지는 못한다. 그것이 바로 이 체질이 지닌 한계이다.  

  내가 스스로 달팽이(蝸牛)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달팽이에게 점프란 없다. 매 순간 바닥에 닿는 온몸으로 밀며 나가야만 한다. 내가 향하는 곳에 이르는 길의 바닥면을 모두 체험해야만 바로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생각난다. 대기란 큰 항아리다. 작은 항아리는 점토(粘土)로 흙 판(板)을 만들고 이것을 둥글게 말아 붙여서 항아리 형태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큰 항아리를 만들 때는 흙을 떡가래처럼 만들어 그것을 항아리의 둥근 형태로 돌려 쌓아가며 만든다. 그러니 큰 항아리는 크기도 크지만 그것을 만드는 공정도 더디고 느리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에 하나를 보태며 열(十)이 되어야지 결코 하나가 단번에 열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가 열이 되기까지는 그만큼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큰 항아리가 된다. 대기만성은 태음인, 그 중에서도 목음체질보다는 더 듬직한 목양체질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3) 속담(俗談)으로 체질 알기

  속담이나 사자성어에서도 체질을 읽을 수 있다.

  ‘미꾸라지 먹고 용트림 한다.’는 격식과 체면을 내세우려는 목양체질의 성향을 보여준다.

  ‘걱정도 팔자’, ‘모기 보고 칼 빼기’, ‘침소봉대(針小棒大)’는 서로 비슷한데, 감수성이 예민하여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은 걱정거리도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 응대하는 목음체질의 특성을 잘 표현했다.

  ‘가랑잎에 불붙기’, ‘시집도 가기 전에 기저귀 마련한다.’는 토양체질의 경박하고 급한 성격을 표현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는 빠르고 외향적이며 호기심 많은 성품을 나타냈다. 그리고 실천보다는 말이 앞서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태도를 빗대어 ‘말로 온 동네를 다 겪는다.’라고 쓴다. 호기심이 과하고 말이 앞서니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자신의 집 안을 챙기는 것은 소홀히 하면서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니 ‘개 못된 것은 들에 나가 짖는다.’는 핀잔을 듣게 되고, 호기심 때문에 험한 꼴을 겪게 되면 굉장히 소심해져서 ‘몹시 데면 회도 불어 먹는다.’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핵심을 꿰뚫는 직관(直觀)과 통찰력(洞察力)을 지닌 금양체질에게 어울린다.

  ‘망건 쓰자 파장된다.’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살피느라 너무 과도하게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금음체질은 입 바른 소리는 꼭 해야 하고 시시비비를 반드시 가려내야 하는 철저한 태도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주의를 주었고,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는 이런 태도가 극단에 이른 정도일 것이다.  

  ‘간에 기별도 아니 갔다.’는 수음체질이 한번 먹는 양이 지극히 적음을 아주 적절하게 나타낸 것이다.
 

  속담과 사자성어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평소 회의적(懷疑的)인 수양체질의 특이한 행동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진천 농다리는 돌다리이다. 돌다리는 돌을 쌓아서 만든 것으로 외형만으로도 제법 튼튼해 보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저런 멀쩡한 돌다리를 만나자, 바로 건너가지도 않고 돌다리를 발로 먼저 툭툭 두드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속담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영특(英特)함을 타고 난 특정한 체질이 있다는 뜻이며, 대기만성은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뜻한다기보다는, 단번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차차 단계를 밟아서 늦게 성취하는 인물의 체질을 비유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속담이나 사자성어에 빗대어 자신을 관찰하여 본다면 자기의 체질을 아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4) 체질이란 개성(個性)

  권도원 선생은 “체질은 혈통이나 인종의 구분이 아니며, 형태나 인지(人智)의 구분도 아닌 개성의 구분이다. 개성이란 같은 종(種)에서 구별되게 나타나는 본성적 구분을 말한다.”고 썼다.3) 그리고 8체질의 특징은 인간의 모든 면에서 표현된다면서, “체형, 체취, 음성, 성품, 기호, 취미, 행동, 업적, 필적, 재능 등 어디서나 체질의 특징들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4)

  8체질의학에서 ‘체질’이라고 쓸 때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은 ‘8’이다. 즉 ‘체질’이라고 쓰면 당연히 ‘8체질’이라고 쓴 것과 같다. 아울러 체질에는 다름, 개성, 구조, 조직, 독립의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 참고 문헌
1) 8체질의학은 8상의학이 아니다 『빛과 소금』 141호 두란노서원 1996. 12.
2) 체질에 맞는 음식법이 건강비결이다 『빛과 소금』 143호 두란노서원 1997. 2.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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