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原者에 대하여(01) 《구침십이원(영.01) 》은 왜《영추(靈樞)》의 첫 머리에 배치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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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原者에 대하여(01) 《구침십이원(영.01) 》은 왜《영추(靈樞)》의 첫 머리에 배치되었을까?
  • 승인 2019.1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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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모

김선모

mjmedi@mjmedi.com


지난 1년 반이란 긴 기간 동안 권건혁 박사님의 《동의사상운기병증》을 이정우 박사가 정(精)과 성(誠)을 다해 연재했다.

물론 처음 운기편(運氣編)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운기편(運氣編) 자체가 무척이나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주제였을테지만 평소 운기편(運氣編)에 관심있었던 이들에게는 이정우 박사의 세심하고 친절한 설명을 통해 이 책에 가득찬 충격과 놀라움을 발견한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이 《동의사상운기병증》은 운기9편이 기실(其實) 천지(天地)와 인물(人物)이 하나임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한의학의 정수(精髓)임을 설파함으로써 그 오랜 몰이해로 인한 경멸(輕蔑)의 누명을 벗겨주었다 확신한다.

그리하여 허무맹랑한 운세(運勢) 따위로 오염됐던 우리 한의사들의 임상현장을 정사상박(正邪相搏)의 생생한 전투를 지휘하는 박진감 넘치고 예측가능한 합리적 치료현장으로 만들어 줄 것을 가슴 벅차게 기대한다.

하지만 운기편(運氣編)의 내용이 무척이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내용이기에 한번에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오지랖 넓은 걱정도 든다. 임상적용을 위해 성기병(性氣病) 정기병(精氣病) 승복기(勝復氣) 심미허실사(甚微虛實邪)에 따른 병기(病機)들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다음 연재는 《동의사상운기병증》의 보다 심층적 이해를 다루는 것이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숨가쁜 질주후, 템포를 늦춘 여유가 필요하다 생각되어 부족한 필자가 연재의 소임을 맡아 《동의사상운기병증》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황제내경》의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독자들의 넓은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가 운기9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황제내경》이 어떤 책인가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즉, 《황제내경》의 저술 목적을 알아야 운기9편의 의미를 알 수 있단 말이다.

《황제내경》은 어떤 책일까?

“是故刺法有全神養眞之旨, 亦法有修眞之道, 非治疾也,” 〈자법론.소.72〉

"자법유전신양진지지(刺法有全神養眞之旨)"의 "자법(刺法)"은 《소문》의 72편에 해당하는 《자법론(刺法論)》을 말하며, 지(旨)는 '뜻, 속에 먹은 마음, 내용, 의의1)'라는 뜻이다. "역법유수진지도(亦法有修眞之道)"의 도(道)는 '이치, 도리. 방법, 술책(術策)2)'를 뜻한다. "비치질야(非治疾也)"의 비(非)는 '아니다, 등지다, 배반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본서(本書)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술된 의서(醫書)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다. "비치질야(非治疾也)"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서(醫書)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의 위기행. 권건혁 著》

처음 한의사가 되어 환자를 대할 때는 이 증(症)에는 무슨 방(方)을 써야할까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분명 한방병리도 배우고 진단학도 배웠는데 막상 환자를 대하고 진맥(診脈)을 하고 문진(問診)을 해봐도 이 ‘사람(身體)’의 내부사정을 알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환자의 ‘증상(症狀)’에 맞춰 처방을 찾게 되었다. 《방약합편》도 있고 《동의보감》도 있고 양약(洋藥)처럼 증상에 맞춰 탕방(湯方)이 적힌 책은 많았다. 어찌보면 너무 많아서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임상에 유용하다 소문난 이 학회 저 학회를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고방(古方)의 신속한 효과도 체험하고 추나 테이핑 등의 술기들도 접하며 임상의 노하우는 조금씩 쌓여갔지만 진리(眞理)에 대한 목마름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의학(醫學)의 정수(精髓)라는 《황제내경》을 당장 뒤적인다해서 환자의 병리(病理)를 한눈에 알아차릴 것이란 확신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학생 때 수진지도(修眞之道)라는 말을 들어나 보았을까? 들어보거나 읽어 보았던들 음... 도가(道家)의 색채가 강하군... 정도의 평가?나 던졌으리라. (가끔은 소주를 마시다 음 오늘따라 이 structured한 바디(body)감은 뭐지?라는 정신나간 평가를 할 때가 있듯이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 입력된 이해 없는 단어가 ‘음미(吟味)’를 거친 숙성(熟成)된 의미를 던질 리 만무(萬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방황의 끝에서 반룡학회를 통해 《황제내경》의 진면목을 접할 기회가 생기고 (그 전에도 부분!부분! 읽었던 적!이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숙성될 리! 없었을) 《황제내경》의 흥미진진한 내용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접한 〈자법론〉의 수진지도(修眞之道)는 혼란스러웠다.

한의학의 TEXT, 그것도 의학(醫學)의 종주(宗主)라 칭송받는 《황제내경》이 “비치질야(非治疾也), 질병을 치료하는 책이 아니라”니... 명상으로 열반(涅槃)이나 하라는 소리인가? 이런 단어들 때문에 한의학이 이 모양 이 꼴인거야...

내가 이해하고 있는 황제내경의 가치는 그 정도였기에 〈자법론〉의 저자를 질책했다.

나는 아마도 수진(修眞)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도가적(道家的) 색채(色彩)에서 질병(疾病)으로 고통받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종용(慫慂)한다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제내경》이 치료서(治療書)를 넘어 초월(超越)의 세계를 지향(指向)하는 수진서(修眞書)임은 〈자법론〉만의 생각이 아니다

이는 《황제내경》의 다른 편들을 해석하고 들여다 볼수록 명확해지는데 책의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가장 먼저, 가장 확실히 나타내고 있는 목차(目次)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도덕경(道德經) 1장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처럼 글쓴이의 저술(著述) 주제(主題)를 가장 첫 머리인 1편에 기술하는 것은 고문헌(古文獻)의 특징이다.

따라서 《소문》과 《영추》 각각의 1편이 〈상고천진론〉과 〈구침십이원〉임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문》의 1편 〈상고천진론〉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초월적(超越的) 존재(存在) 진인(眞人)을 기술하고 있으며 《영추》의 1편 〈구침십이원〉은 진인(眞人)에 이르기 위한 진식(眞息)을 실현할 수 있는 12원(原)의 메카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즉, 《황제내경》의 저자는 《소문》 《영추》의 1편(編)에 진인(眞人)과 12원(原)을 배치함으로써 12원(原)을 통한 진인(眞人)으로의 초월(超越)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내경》의 저자는 그 서술목적을 목차의 구성에서조차 일관되게 구성하고 있다. 사상(四象)도 아니오 오행(五行)도 아닌 음양(陰陽)의 《소문》과 《영추》 2권으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문》 1편과 《영추》 1편은 《황제내경》 한가지 주제를 설명하는 두가지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즉, 천도(天道)의 관점으로서의 주제인 《소문》 1편 〈상고천진론〉의 진인(眞人)과 인도(人道)의 관점으로서의 주제인 《영추》 1편 〈구침십이원〉의 12원(原)은 진식(眞息)의 존재 없이는 결코 12원(原)을 체험할 수 없음을 말함과 동시에 12원(原)의 실체없이 출삼입삼(出三入三)의 진식(眞息)에 도달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1편을 제외한 나머지 《소문》 80편 《영추》 80편을 모르고서 1편의 주제를 단박에 알아차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황제내경》이 전하는 의학(醫學)의 핵심(核心)이 건강(健康)은 하나요, 질병(疾病)은 다수(多數)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소문》 80편의 논지(論指)는 《소문》 1편 〈상고천진론〉의 진인(眞人)을 향하고 있음을, 《영추》 80편의 논지(論指)는 《영추》 1편 〈구침십이원〉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렵다고 용기를 잃지 말자. 《소문》 1편과 《영추》 1편의 대강(大綱)의 주제를 가슴에 안고 나머지 편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고 나머지 편을 읽는 것은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길 집을 찾아 가면서 휘황찬란한 등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처럼 멀고도 큰 차이니까.

앞서 말씀드린 그 모자란 한의사는 진인(眞人)의 독립수신(獨立守神)을 통한 수폐천지, 무유종시(壽敝天地, 無有終時)를 진시황(秦始皇)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욕심(慾心)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의 나머지 80편과 《영추》의 나머지 80편은 저자(著者)가 제시하는 진인(眞人)이 장풍을 쏘고 하늘을 날고 날씨를 바꾸는 요술(妖術)의 존재가 아님을 일관되게 증명하고 있다. 천지(天地)의 덕(德)과 기(氣)를 받아 존재(存在)하는 인간(人間)이기에 천지(天地)의 변화(變化)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나아가 천지(天地)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로 들어서는 방법만이 질병(疾病)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궁극의 목표임을 실체적(實體的)이고도 논리정연(論理整然)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고천진론〉의 진인(眞人)에 이르기 위해 〈구침십이원〉은 어떤 방법을 소개하고 있을까? 다음 몇 회는 〈구침십이원〉에서 말하고 있는 12원(原)의 메카니즘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다. 〈구침십이원〉은 단언한다. 어둡고 무서운 밤길 소중한 등불하나는 들려주겠다고.

 

김선모 / 반룡학회

 

각주

1)《동아한한대사전》, p.795

2)《동아한한대사전》, p.1854

3)《동아한한대사전》, p.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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