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시평] 혼종으로서의 한의학, 그리고 그 구심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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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시평] 혼종으로서의 한의학, 그리고 그 구심점에 대하여
  • 이태형
  • 승인 2019.1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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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이태형한의원

의사학 전공자로서 필자는 한국 한의학의 특징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었다.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한국 한의학의 전통적 학술 흐름은 이후 광제비급, 제중신편, 방약합편, 동의수세보원, 의감중마 등과 같은 의서들로 전해졌고, 이는 현재의 다양한 한의학 학술유파로 이어졌다. 이 같은 학술 전통이 한국 한의학의 특징을 구성하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현대의 한국 한의학을 살펴봄에 있어서는 전통적 측면만 살펴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현대화 과정을 거쳤는가에 따라서도 동아시아 각국의 전통의학은 현재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한국 한의학의 특징을 단편적으로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필자가 과거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의사학교실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비슷한 맥락의 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다. 과학기술사 교실의 율리아 프루머 교수와 의사학 박사 과정에 있었던 제임스 플라워스 박사와 함께 동아시아 의학사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을 당시, 필자는 ‘한국 한의학의 특징’에 대해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 대비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하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도는 두 구성원에 의한 저항에 부딪치고 말았다. 한국 한의학의 학문적 특징은 독자적으로 혹은 단편적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 보다는 어떠한 요소들과 어떠한 관계들 속에서 한국 한의학의 특징이 형성되어 왔는지를 밝혀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것이 그들이 내게 해준 조언이었다.

현상 아래 내재되어 있는 관련성을 밝히려는 시도는 비단 한중일 전통의학 간 관계를 밝히려는 노력 뿐 아니라 한의학 현대화 과정에 대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에 한의학은 그 무엇보다도 과학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왔으며, 이로 인하여 한의학은 과학/양방의학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한의학이 존재하게 되었다. 어떤 한의사는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과 같은 의서를 토대로 한 전통적 관점 중심의 진료를 행하고 있는 반면, 어떤 한의사는 한의학을 생의학적 지식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진료를 행하고 있기도 하다. 혹은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하거나, 그 가운데 나름의 방식으로 절충하여 진료에 임하고 있는 한의사도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먼저 현대에 한의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학문의 확장으로 보고 무조건 긍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가져야 할 구심점, 혹은 학문적 기준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학문은 확장되지만 그 학문의 기준점이 모호해진다면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없을까? 

얼마 전 반갑게도 한의학 지식과 정체성이 한의학과 과학/양방의학 간의 관계를 통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재구성되는지에 대해 다룬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의 저서 『하이브리드 한의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 1999년에서 2003년에 이르기까지 5년에 걸쳐 경희대학교 한의학대학, 동서의학대학원, 그리고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가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창을 통해 한국 근대의 일면을 분석하고자 함에 있어서 ‘근대’라는 개념을 ‘억압’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근대라는 개념이 억압이 되는 것은 이 개념이 근대/전근대, 서구/동양, 과학/전통지식과 같은 이분법적 구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근대는 전근대를 부정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근대이기 때문에 과학은 전통지식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통지식은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때문에 저자는 이 같은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구별 방식이, 현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하고 역할하고 있는 한의학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시각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이분법적 근대 논의의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막스 베버를 꼽았다.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오직 서구에서만 현재 우리가 타당하다고 인식하는 과학이 존재한다”라고 선언하였으며, 이때의 과학을 ‘합리성’과 연결시켰다. 베버의 명제는 ‘우월한 서구’와 ‘열등한 동양’이라는 이항대립을 만들었고, 끝없는 이분법적 위계질서를 생산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서구의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비서구의 과학도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서구의 과학도 일관된 합리성을 담보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패러다임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였다.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을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과학혁명을 “하나의 세계관에서 다른 세계관으로의 변화”라고 설명하였으며, 이 세계관들 사이에는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지만, 과학을 통일된 전체로 본 점에 있어서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즉 과학을 ‘일관된 전체’(coherent whole)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학 분야에서의 여러 연구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구의 과학도 통일된 혹은 일관된 과학 개념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과학이 일관된 전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의학도 실상은 일관된 전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간의 의사학 연구들을 토대로 한의학의 학문 형성과정을 살펴보더라도 전통적으로 한의학은 다양한 의론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간에 경합하기도 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있어서도 한의학은 과학과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가지며 변화해왔기 때문에 일관된 전체로서의 학문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그는 한의학의 학문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 각각을 일관된 전체로 보려는 패러다임론 또한 극복해야 하며, 보다 다원적이고 내재적인 관점을 토대로 현대의 한의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한의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학문의 혼종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의 한의학은 분명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근대라는 폭력적이면서 생기 넘치는 권력 투쟁 과정에서 창조적으로 다시 태어났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에는 동시에 상당한 우려가 존재한다. 이는 곧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한의학이 혼종화 속에서도 분명한 학문적 구심점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구심점이 분명할 경우, 학문이 혼종화는 학문의 범주를 넓힐 뿐 아니라 학문의 역량도 증진시키는 과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구심점이 불분명할 경우에는 학문의 혼종화는 학문의 존재 가치를 희석시키는 과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관심을 모아야 할 것은 한의학의 ‘학문적 기준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무엇이 한의학의 학문적 기준점이 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의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통적 측면에서 무엇이 한의학의 학문적 기준점이 되어 왔는지를 보다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몸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무엇을 병으로 보았는지, 무엇을 병의 원인으로 보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진단해왔는지, 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떠한 치료 기술을 활용해왔는지, 또한 예후는 어떻게 판단하였는지 등의 질문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적 측면의 학문적 기준점을 현대에 있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논의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 같은 기준점이 현대의 환자 진료에도 유의미한 가치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이를 맹목적으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방향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구성원 간의 존중과, 상호 간에 열려있는 자세가 바탕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구태의연한 이분법적 구별을 이제는 극복하고, 부디 한의학이 지난 수천 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학문적 기준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의 다양한 학문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해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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