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94> - 『醫書針穴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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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94> - 『醫書針穴謌』①
  • 안상우
  • 승인 2019.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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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갈래 강물도 물길 따라 흐른다

조선 후기 사본류 침구의서로 刊本이 아니기에 서명은 물론 작성자가 자작으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복잡한 의미도 부여할 새 없이 그저 의서에서 채록한 침구경혈가란 의미로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본문 가운데서는 그저 의서라고만 쓴 곳도 있어 혼자 베껴서 곁에 두고 자주 읽어볼 셈이었던 듯하다. 일체 형식요건을 배제한 채 오랜 세월의 두께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종이옷을 표지로 걸친 겉모양은 마치 남루한 누더기처럼 변해 버린 모습이다.

◇ 『의서침혈가』

본문도 군데군데 헐거나 갉혀서 여기저기 손상된 상태이지만 그나마 다행한 것은 통째로 낙장이 되었거나 찢겨나간 곳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저자나 시대배경을 말해 줄 단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저 보존 상태나 기재내용을 감안해 볼 때 대략 150~200년 정도 세월이 느껴질 뿐이다. 목록도 없이 풍한부터 시작하여 각 병증별로 주치요혈을 기록해 놨는데, 항목마다 朱點을 찍어 구분하고 중요 구절에는 세로줄을 그어 강조해 놓은 걸 보면 애초에는 꽤나 공들여 작성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본문 가운데 생경한 단어나 이상한 경혈명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띤다. 예컨대, 大抵, 肺類, 厥陰類, 膈類, 考缸類 등이다. 혈명 아래 기재된 경혈 위치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니 혈명의 한자가 다수 뒤바뀐 것이다. 즉, 위에서 말한 이름들은 각기 大椎, 肺兪, 厥陰兪, 膈兪, 膏肓兪를 표시한 것이다. 또 池倉, 强簡, 殿庭, 丹中, 酷中, 神奉, 保囊, 故房, 延腋, 大布, 花陰, 天溪, 泉池, 息肚 등 경혈명의 한자가 뒤섞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글자를 혼동하여 잘못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 자주 등장하고 또 바뀐 글자로 반복 사용하였기에 단순 오자로 써서 그런 것은 아닌듯하며, 의도적으로 글자를 바꿔 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개 인체 부위별로 나누어 해당 부위의 주요 경혈을 기재하고 있는데, 경혈명 아래 혈수를 큰 글자로 적고 그 아래 위치와 주치, 그리고 자침심도, 금침금구 등에 대한 사항을 2줄의 작은 글씨로 기재하였다. 또 하나 눈여겨 볼만한 특색은 필사본으로선 보기 드물게 경혈위치를 표시한 그림을 여러 장 그려 둔 점이다. 그림들은 전문 화가의 솜씨가 아닐 뿐더러 단순히 붓으로 외곽선만 서툴게 그려진 것인지라 다소 우스꽝스럽고 투박하기 그지없다.

본문 첫 장에는 큰대자로 양팔과 두 다리를 벌린 채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얼굴과 가슴, 손발의 주요 혈위 등 몇 가지만 표시해 두었는데, 아무런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작성자가 평소 자주 쓰던 치료혈이거나 무척 찾기가 불편한 몇 가지사항만을 잊지 않기 위해 표시해 둔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또 본문에는 手背부와 手掌부, 족장, 족배로 나누어 그린 경혈위치도와 아울러 수족의 내측과 외측을 따로 구분하여 도합 4장의 그림을 그렸고 다음으로는 인체전면의 경맥흐름과 경락의 연접순행을 표시한 그림, 그리고 측면의 장부도가 함께 그려져 있다. 장부도는 전체적인 외형뿐만 아니라 표시된 부위명칭에 이르기까지 『동의보감』신형장부도를 그대로 베낀 것이어서 확실히 이 책에 드러난 경혈과 본문의 기재 내용이 주로 『동의보감』침구편에 기반을 두고 작성된 것임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눈길을 끄는 것은 12경맥혈가에 앞서 溝分이라는 소제목 아래 써 있는 1줄의 문구이다. “水萬派而定溝路, 百重而必分” 말인즉, 강물이 만 갈래 갈라져 있어도 물길이 정해져 있으니 수없이 겹쳐져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니 경맥 분간의 중요성을 설파한 말로 보인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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